
미국 정가를 뒤흔드는 성범죄 스캔들의 중심에 선 제프리 엡스타인(2019년 사망) 관련 수사 파일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여러 차례 거론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팸 본디 법무장관과 참모들은 지난 5월 백악관에서 열린 정례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본디 장관은 엡스타인 파일에 트럼프 대통령 외에도 다수의 고위 인사들이 언급돼 있다고 설명했다.
WSJ은 본디 장관 등은 이 회의에서 엡스타인과 어울린 사람들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소문들이 적시돼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본디 장관 측은 해당 파일에 피해자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추가 공개 계획은 없다고 밝혔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법무부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파일에 언급된 사실을 다른 행정부 관계자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알렸다고 WSJ는 전했다. 다만, 트럼프의 이름이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본디 장관은 앞서 본디 장관은 지난 2월 "엡스타인의 고객 명단이 지금 내 책상 위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지난 7일 법무부는 엡스타인 '접대 리스트'는 없으며, 추가 공개할 문서도, 새롭게 수사할 사항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사실상 본디 장관의 발언을 뒤집은 셈으로, 트럼프 지지층 내부에서 강한 반발이 일었다.
이번 보도에 백악관은 즉각 반박했다.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은 성명을 통해 "이것은 민주당원들과 자유주의 언론이 지어낸 가짜뉴스의 연장 선상에 있을 뿐"이라며 WSJ 보도를 부인했다.
그러나 보도가 사실이라면, 법무부가 엡스타인 파일에서 트럼프의 이름을 확인하고도 이를 비공개로 처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인 '러시아 게이트'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반(反)트럼프 정치공작'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수사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필리핀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 자리에서 기자들의 엡스타인 관련 질문에 돌연 러시아 게이트 조작 의혹을 언급하며 오바마 전 대통령을 '조작을 주도한 사람'으로 지목했다.
미국의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도 오바마 행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2016년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취지로 정보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개버드 국장은 "우리는 이 모든 자료를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에 넘겨 범죄에 해당하는지 조사하게 할 것"이라며 "우리가 발견하고, 공개한 증거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관련) 정보 평가를 만드는 것을 주도했다고 지목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논란이 미국 정계를 집어삼켰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법무부는 엡스타인 파일 내 트럼프 언급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FBI 요원 약 1000명을 투입했고, 이로 인해 마약·강력범죄 수사 등 주요 현장 업무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또한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엡스타인 사건 관련 자료 공개를 막기 위해 여름 휴회를 하루 앞당기면서 입법 기능 역시 마비 상태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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