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6시, A 전자의 스마트폰 생산라인이 가동을 시작한다. 인공지능(AI)가 전날 밤전 세계 온라인 쇼핑몰의 주문 데이터를 분석해 오늘 생산할 모델과 수량을 결정했다. 생산 도중 주요 부품 공급사에서 품질 이상 신호가 감지된다. AI는 즉시 대체 공급사의 재고를 확인하고 생산 일정을 재조정해, 고객사에 배송 지연을 통보한다.
우리가 꿈꾸는 '자율제조 공장'의 모습이다.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대다수 국내 제조 현장은 여전히 엑셀과 전사적자원관리(ERP)에 의존한다. 20년 넘도록 가동 중인 구형 설비에서는 데이터 수집조차 어렵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AI 기반 자율제조 공장을 즉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답은 단계적 접근에 있다.
먼저 기존 설비에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부착하고 데이터 수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다음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지털 트윈을 구현해야 한다.
제조 현장에 제대로 된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표준화가 필수다. 앤스로픽의 MCP(Model Context Protocol)가 작년 말 출시 후 6개월 만에 사실상의 표준이 된 것처럼, 제조업에도 '플러그 & 플레이' 방식의 산업 데이터 표준이 절실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으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주도해 개발한 MDT(Manufacturing Digital Twin) 표준은 AAS(Asset Administration Shell) 기반 확장 표준으로 생산 데이터 수집 및 가시화, AI 기반 불량 예측, 이기종 시스템 간 데이터 연동 등 자율제조 인프라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산업 데이터 표준 기반 디지털 트윈 구축에 대한 투자 가치는 명확하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트윈 도입 기업은 평균적으로 계획되지 않은 가동 중단을 30% 줄이고 유지보수 비용을 20% 절감하며, 제품 출시 기간을 25% 단축시킨다. 투자 회수 기간은 평균 2~3년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력과 IT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정부-대기업-중소기업 간 긴밀한 협력 체계,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 등 ‘자율제조 공장’ 조기 실현을 위한 여러 강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제조 혁신에 대한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 데이터 보안과 기업 기밀 보호 문제, AI 전문 인력 부족이라는 과제도 안고 있다.
대기업은 협력사와의 데이터 표준을 통일하고 단계별 디지털 전환 로드맵을 수립하며, 성공 사례 공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정부 지원사업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핵심 공정부터 단계적으로 디지털화하며 직원 재교육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자율제조 공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첫걸음을 떼지 않으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 2~3년 후 글로벌 제조업의 판도가 바뀔 때,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선택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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