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후난사범대 의과대학 임상의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장번제 씨는 어엿한 링링허우(2000년대생) 창업자다. 후난성 정부가 내놓은 대학생 창업지원 정책이 의사로 진로를 결정하려던 그에게 창업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 덕분이다.
장씨는 대학생 창업 프로젝트에 지원해 후난성 전통 찻잎 '톈차'를 건강음료로 상업화하고, 톈차에서 추출한 플로리진 성분으로 혈당을 낮추는 치료제 개발에도 나섰다.
올해 3월 대학 선·후배들과 ‘샹즈톈과기'라는 회사를 공동 창업한 그는 창사 샹장신구 대학생 혁신 창업단지(이하 창업단지)에 입주했다. 3년간 사무실을 무료로 임대하는 것은 물론, 현지 정부로부터 25만 위안(약 4870만원)의 지분 투자 지금도 지원 받았다. 취재진과 만난 장 창업자는 “현지 정부의 정책 지원 없이는 창업은 꿈도 못 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리학의 고장, 마오쩌둥의 고향 등으로 잘 알려진 중국 후난성 성도 창사는 최근 청년 창업 열기가 뜨겁다. 해외화문매체협력조직의 초청으로 본지 기자는 지난 8월 말 후난성 창사의 샹장신구를 방문해 창업 열기와 기술 굴기 현장을 둘러봤다. 중국 지도부의 과학기술 육성 정책에 발맞춰 이곳은 중국 중부의 새로운 기술 혁신 창업 메카로 거듭나고 있었다.
체계적인 창업 생태계...전국 대학생이 몰려온다
최근 창사가 대학생 창업 지원을 위해 내놓은 캐치프레이즈다. 창사는 자금 지원부터 인큐베이터 설립, 멘토팀 구성, 창업 대회 개최까지 체계적인 창업 지원 정책을 마련했다. 창업 아이디어는 넘쳐나는데 아직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에게 맞춤형 지원을 하는 게 특징이다.
창업 인큐베이터는 실험실에서 시제품 생산까지 창업의 전 과정을 지원한다. 초창기의 창업 프로젝트 팀에는 아이디어의 실행 가능성을 자문하는 전문가 멘토링 서비스를 지원하고, 상용화 가능성이 있는 팀에는 기업 설립에 필요한 행정 절차부터 사무실 임대·인재 채용·법률·회계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지원한다.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창업 기업에겐 전문가 선별을 거쳐 창업 자금을 지원한다. 무엇보다 창업에 실패해도 용인하는 창업 투자 생태계를 만들어 창업에 대한 두려움을 없앴다. 후난성이 전국 최초로 조성한 성급 대학생 창업기금 규모만 무려 5억500만 위안. 기금은 창업팀에 지분 투자를 해서 수익은 물론 위험도 함께 공유한다. 투자금은 단계적으로 상각하기 때문에 창업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상환 의무는 없다.
최장 3년간 창업 인큐베이터 사무실을 무료 임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시세보다 최고 70% 저렴한 값에 집 월세를 내고, 최장 석달간 1인당 1000위안의 생활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왜 의사가 아닌 창업을 택했냐는 물음에 장 창업자가 “젊을 때 더 많은 시도를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실패해도 상관없다. 다시 새로운 방향을 찾으면 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샹장신구 대학생 혁신창업단지는 현재 약 60곳 대학생 창업팀을 유치해 500명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를 내고 있다. 특히 이곳에 입주한 창업 기업 6곳은 국가 첨단기술 기업으로 선발돼 국가급 차원에서 육성될 정도다.

명문대 인재풀에 탄탄한 제조 인프라까지

강력한 기술 인재 풀도 후난성이 창업 옥토로 발전할 수 있는 이유다. 중국 정부가 일명 ‘985 공정’이라 해서 꼽은 39곳 명문 대학 중 후난대·중난대·국방과기대 3곳이 후난성에 소재해 있다. 베이징·상하이 다음으로 많은 숫자로, 저장·광둥성보다도 많다.
산업 인프라도 탄탄하다. ‘세계 건설기계 수도'라 불리는 창사에는 줌라이언, 싼이중공업 같은 중국 대표 엔지니어링 회사가 둥지를 틀고 있어 기계장비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이 발달했다.
후난성 정부의 연구개발(R&D) 허브로의 도약 정책에 발맞춰 창사 인공지능(AI)혁신센터, 국가수퍼컴퓨터센터, 국가공정원 공업혁신센터 등 굵직한 연구소도 창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덕분에 학교나 연구소 실험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직접 산업 현장에서 응용할 수 있도록 산·학·연 협력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올해로 창업 4년째인 원격조정 솔루션 공급업체 페이스커지가 창사를 선택한 이유다. 현재 싼이중공업 같은 기업과 광산 굴삭기 원격조종 솔루션 방면에서 협력하는 페이스커지는 샹장신구 대학생 창업혁신 단지에 입주해 있다.
후난대학교 석사생 출신의 저우차이즈 페이스과기 공동창업주는 취재진에게 “창사는 세계 건설기계 도시로서 회사 발전을 위한 천혜의 환경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이곳서 창업한 배경을 설명했다.
후난성에서 대학생 창업 열기가 달아오른 데는 현지 방송 후난위성TV 역할도 컸다. 중국 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후난위성TV는 올해 ‘둬진(奪金, 금메달을 딴다는 뜻) 2025’라는 청년 창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방영해 청년 창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한몫했다.
창사시의 체계적인 창업 생태계는 전국 각지에서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을 끌어들이고 있다. 후난성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후난성이 대대적인 대학생 창업정책 지원 조치를 발표한 이래 반년 사이 전국 각지에서 5만명이 넘는 대학생이 후난성에서 창업 프로젝트를 신청했고, 이중 85개 창업 프로젝트가 총 5130만 위안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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