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m)를 21초대에 완주하고, 스텝에 따라 골반과 어깨를 튕기며 팔을 움직이는 유연한 몸짓으로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이고, 얼굴에 펀치를 가격당해 쓰러져도 1초 만에 벌떡 일어나고, 축구 전·후반전 30분 만에 모두 11골을 터뜨리고...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중국 베이징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운동회'에 참가한 로봇 선수들의 모습이다. 중국에서 1월 춘제 휴머노이드 로봇 군무, 4월 휴머노이드로봇 마라톤대회, 6월 휴머노이드로봇 격투기 대회에 이어 육상·축구·댄스 등을 아우르는 휴머노이드 로봇 올림픽 경기가 열린 것이다.
앞선 대회 때와 비교해 몇 개월 사이 로봇의 움직임은 더 빨라졌고, 더 강해졌고, 더 유연해졌다. 일부 로봇은 인간의 리모컨 조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도 선보였다.
로봇계 우사인볼트...유니트리 H1 vs 유비테크 톈궁

올림픽 경기 첫날인 15일 하이라이트는 1500m와 400m 달리기였다. 결승전은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의 양대 산맥인 위수커지(유니트리)와 유비쉬안(유비테크) 로봇의 대결이었다. 올해 설 연휴 국영중앙(CC)TV 춘제 갈라쇼에서 칼군무로 이름을 알린 H1(유니트리)과 휴머노이드 로봇 마라톤대회 1위 영광을 안은 톈궁 울트라(유비테크)가 모두 400m, 1500m 결승주자로 나선 것이다.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시작된 400m 결승전. 4번 트랙에서 달린 H1은 시작부터 눈에 띄는 속도로 치고 나가며 톈궁 3대와의 격차를 벌려나갔다. 가끔씩 트랙에서 이탈했지만 곧장 제자리로 돌아온 H1은 마치 성인 남성이 뛰는 듯 안정적인 발걸음과 자세를 선보였다. H1을 뒤쫓아 리모컨을 조작하며 함께 달린 엔지니어가 오히려 숨을 헐떡였다.
H1을 앞세운 유니트리 계열 로봇기업 가오이커지는 1분28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했다. H1을 내세운 또 다른 유니트리 계열 로봇기업 링이커지도 1500m 달리기 종목에서 6분34초 기록으로 이번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냈다.
은메달을 딴 톈궁도 비록 400m, 1500m에서 기록은 모두 H1에 뒤처졌지만 17일 100m 결승전에서는 H1보다 앞선 21.5초 기록으로 금메달의 명예를 안았다. 특히 톈궁은 인간의 리모컨 조작 없이 스스로 주변의 장애물과 같은 환경을 감지하고 직선 곡선 트랙을 자유자재로 달리며 한층 향상된 기술력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인간미 넘치는 로봇...우당탕탕 실수 연발도
![16일 중국 베이징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제1회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운동회에서 여린 5대5 축구 조별경기에서 심판들이 충돌해 넘어진 로봇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8/16/20250816210802323610.jpg)
지난달 2025 국제 로보컵 대회 키즈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독일 HTWK팀은 네덜란드 나오 데빌스팀을 상대로 전·후반 30분간 펼친 경기에서 무려 11골을 성공시킨 것.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로봇들은 인간의 리모컨 조작 없이도 스스로 공·골문·골라인 등을 인식하고, 상대 팀 로봇과 몸싸움을 벌여 공을 가로채고 같은 팀 선수에게 패스를 하고, 골키퍼 로봇을 피해 여러 각도에서 골을 성공시켰다. 네덜란드 팀의 한 수비수 로봇은 자살골을 넣는 바람에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날 축구경기에 뛴 선수들은 모두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업체 자쑤진화(加速進化, 부스터로보틱스)의 T1 로봇이었다. 부스터로보틱스는 중국 이공계 명문 칭화대 출신이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물론 첫 휴머노이드로봇 대회이다 보니 미숙한 점도 많았다. 그룹댄스 결승전에서는 로봇선수의 2분 남짓공연을 위해 무대를 세팅하는 데에만 20~30분이 걸리는가 하면, 노래 시작과 함께 로봇이 갑자기 드러눕자 현장 중계 아나운서는 “일부러 의도된 행동인가요?”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정도다.
하지만 중간에 왼팔이 떨어져 나갔는데도 1500m를 완주한 로봇, 상대선수 펀치에 얻어맞고 1초 만에 벌떡 일어난 로봇에 관중들은 응원의 박수 갈채를 보냈다. 축구 경기 도중 서로 충돌해 우르르 넘어진 서너대 로봇이 구조대에 의해 질질 끌려 나갈 때, 1500m 달리기 마지막 결승전을 눈앞에 둔 로봇이 갑자기 멈춰섰을 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로봇의 팔뚝·다리·무릎 곳곳에 긁힌 상처가 카메라에 포착됐을 때는 얼마나 숱한 훈련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폭우에도 꽉 찬 관중석...'인간계 올림픽' 구색도 갖춰

이밖에도 사흘간 올림픽 대회에서는 16개 국가의 280여개 팀의 500여대 로봇이 달리기·허들·계주·높이/멀리뛰기 등을 포함한 육상 및 체조, 무술부터 물자운반, 의약품 분류, 청소 등 경쟁부문 21개 종목과 탁구, 농구, 킥복싱 등 번외 경기 5개 종목에서 538차례 경기에 참전해 실력을 겨뤘다.
특히 의약품 분류, 청소, 물자운반 등은 실생활에서 인간을 대신해 로봇을 투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예를 들면 청소의 경우, 로봇들이 문고리를 열고 방에 들어가 생수병, 도시락, 깡통 등을 집어 쓰레기통에 버리는 경기인데, 누가 더 신속하게 더 많은 쓰레기를 버리느냐가 포인트다.
한편, 경기에 앞서 14일 저녁 해당 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은 장밖에 폭우가 쏟아져 15분 늦게 시작됐지만 관객석은 가득 찼다. 로봇밴드 연주, 인간 가수와 로봇의 합동 가무 공연, 인간과 로봇의 합동 패션쇼, 로봇의 경극·무술 공연 등 다양한 무대가 준비돼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마치 실제 인간계 올림픽처럼 로봇 올림픽 깃발을 흔드는 기수와 함께 4월 베이징 휴머노이드 마라톤 대회 금·은·동메달 주자가 대표 로봇선수로 나란히 입장하고 그 뒤를 학생대표, 외국팀 대표 선수들이 이어서 입장했다. 경기장 내 중국 국가가 울려 퍼지고, ‘톈궁 2.0 프로’가 로봇선수를 대표해 공정 경쟁을 위한 선서를 낭독하고, 성화 봉송 대신 '로봇의 심장'을 상징하는 푸른 빛 수정, 이른바 ‘즈신(智芯, 스마트칩)에 불을 밝히는 등의 행사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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