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두 도시 이야기, 샤먼과 진먼

10년 전 겨울 중국 푸젠성 샤먼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유럽풍 건물과 클래식 음악이 어우러진 구랑위 골목을 걷고, 보타산에 올라 고층 빌딩이 늘어선 샤먼 섬을 내려다봤다. 자전거를 타고 야자수가 줄지어 선 해변 순환도로를 달리며 샤먼을 겨울에도 따뜻한 휴양도시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나 해변가에 세워진 붉은색 거대한 여덟 글자를 보는 순간 그런 인상은 단숨에 깨졌다. 바다 건너편 대만 진먼 섬에서도 보이도록 큼지막하게 적힌 '일국양제 통일중국(一國兩制 統一中國)'이라는 문구는 샤먼이 대만해협 최전선의 도시임을 일깨웠다.

10년 만에 샤먼을 다시 찾았다. 이번 여행 목적지는 그때 붉은색 글자가 향하고 있던 곳, 진먼이었다. 샤먼 부두에서 30분 남짓 여객선을 타고 도착한 진먼은 완전히 다른 도시다. 가오더(중국 지도 앱)에는 푸젠성 취안저우시 진먼현으로 표시되지만 구글 지도에는 대만 진먼현으로 나오고, 오성홍기가 아닌 청천백일기가 휘날리는 곳이다.

겉보기엔 평범한 시골 농촌 소도시지만 진먼은 한때 대만해협의 '화약고'였다. 1949년 국공전쟁 격전지였고, 1958년 '진먼 포격전'을 시작으로 20년 넘게 포탄 세례를 받았다. 지금은 전쟁 역사 관광지로 조성됐지만 상흔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해변에는 적의 상륙을 막기 위해 뾰족한 막대 모양의 철도 레일을 촘촘히 세운 구이탸오자이(軌條砦)가 마치 방어책처럼 1㎞ 넘게 이어져 있고 국공전쟁 당시 중국군 임시 지휘소였던 베이산구양러우(北山古洋樓)에는 포탄 자국이 가득하다. 확성기 수십 개가 달린 베이산 방송탑에서는 중화권 유명 가수 덩리쥔의 대표곡 '첨밀밀'과 함께 "대륙 동포들도 우리와 같은 민주와 자유를 누릴 수 있길 바란다"는 육성이 반복된다.

섬 곳곳에는 방공호 표지판이 남아 있고 10층 높이가 넘는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조 설비라곤 오로지 '진먼 고량주' 공장뿐이다. 과거 전쟁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 긴장감은 오늘날까지 진먼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샤먼과 진먼, 두 도시 간 물리적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진먼행 여객선 창밖으로 보이는 두 도시를 잇는 샤진대교(廈金大橋, 대만명 진샤대교) 공사 현장, 그리고 저 멀리 다리 끝에서 샤먼 신공항인 샹안 국제공항도 짓고 있다. 진먼에서 불과 2㎞ 떨어진 신공항은 2013년부터 바다를 매립해 건설 중이며 내년 말 개항 예정이다. 정기 여객선을 타고 샤먼과 진먼을 오가는 대만 주민도 차츰 늘어나 올해만 118만명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경제적·심리적 거리는 여전히 멀다. 지난해 샤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만2000달러. 진먼의 공식 통계는 없지만 올해 대만 평균 1인당 GDP가 3만7800달러로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감안하면 진먼의 생활수준은 샤먼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진먼행 여객선을 타는 샤먼 부두에는 '兩岸一家親 閩台親上親(양안은 한 가족이고, 푸젠과 대만은 그중에서도 더욱 가까운 사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지만 진먼에서 만난 택시기사와 가게 주인, 식당 종업원, 고등학생이 바라는 것은 양안(중국 본토와 대만) 통일도, 대만 독립도 아닌 평화였다. "나는 중화민국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중국 인민의 낮은 생활수준과 정치적 통제를 걱정했다. 대만이 정치·경제적으로 손해를 본다고 여겨 통일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샤먼과 진먼은 물리적으로는 가까워지고 있지만 마음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 듯 보였다. 두 도시에서 기자가 바라본 중국과 대만은 아직은 '가깝고도 먼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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