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들은 즐겁게 노래하며 새해를 축하하고, 아버지는 돈을 벌러 금산(金山, 샌프란시스코)으로 가신다. 수백만 냥의 금과 은을 벌어 돌아와 집을 짓고 땅을 산다."
중국 '화교의 고향(僑鄕)'이라 불리는 광둥(廣東)성 장먼(江門) 오읍(五邑) 지역에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동요 가사다. 미국으로 일하러 떠난 중국계 이주민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겼다. 오읍은 장먼에서도 서남쪽의 카이핑(開平)·허산(鶴山)·신후이(新會)·타이산(台山)·언핑(恩平) 등 다섯 개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화교의 문화가 쌓인 집, 카이핑 댜오러우
이곳이 '화교의 고향'이라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오늘날 장먼 출신 화교는 전 세계 145개 국가 및 지역에 530여만명에 이르는데, 이는 장먼시 전체 인구(약 480만 명)보다도 많다.
청나라 말기 아편전쟁 이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곳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중국계 이주민들은 탄광·철도 공사장에서 피 땀 흘려 일하며 돈을 벌었다. 그들의 꿈은 단순했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좋은 집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
그렇게 해외에서 번 돈을 고향으로 부쳐 지은 집이 장먼 카이핑 지역 특유의 건축물 '댜오러우(碉楼)'다. 댜오러우는 해외 화교의 애환과 성공을 품은 곳이다. 카이핑에 현존하는 댜오러우만 약 1800개. 2007년엔 카이핑의 댜오러우와 촌락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카이핑에 가면 시골 마을인데도 곳곳에 서양식 성채 느낌이 나는 낡은 댜오러우가 우뚝 서 있다. 지붕·기둥·창문·발코니는 그리스·로마부터 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고딕 양식까지 온갖 서양식 건축양식을 차용했다. 화교들이 당시 해외 각지에서 직접 보고 경험했던 서구풍 건축 인테리어를 그대로 본 따 고향에 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화민국 초기 이곳의 치안은 불안했고, 부유한 화교들은 도적떼의 표적이 됐다. 화교들이 집을 고층의 망루 형태로 지은 배경이다. 댜오러우의 '댜오(碉)'는 중국어로 망루라는 뜻이다.
특히 외벽 곳곳에 외부 감시와 사격을 겸할 수 있는 구멍을 내고, 창문도 방어를 위해 조그맣게 만들어 단단한 쇠창살과 두꺼운 철제 문을 달았다. 대문도 견고한 이중 철문으로 만들어 외부로부터 침입을 차단했다.
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보니 1920년대 중국 농촌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이탈리아산 타일과 대리석 부엌, 미국식 벽난로와 매트리스 침대, 세면대와 양변기, 욕조, 물펌프까지 갖췄다. 꼭대기 층에는 조상을 모시는 사당도 자리하고 있다. 댜오러우가 '중서합벽(中西合璧, 중국과 서양의 장점을 융합)' 건축이라 불리는 이유다.
화교 투자 유치...웨강아오 대만구 전략 도시로
카이핑에서 댜오러우를 비롯해 화교들의 중서합벽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리위안(立園)이다. 면적 1만1000㎡의 이곳은 미국 화교인 장먼 출신의 셰웨리(謝維立) 집안에서 세운 가족용 호화 별장촌이다.
셰웨리의 조부인 셰리유(謝日佑)는 미국계 화교 1세대였다. 19세기 말 미국에 단신으로 건너간 셰리유는 탄광 노동자로 시작해 식당·세탁소를 차리며 자리를 잡았고, 이후 셰씨 집안은 대대로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약초, 국제무역을 해서 떼돈을 벌었다. 리위안은 그의 손자 셰웨이리가 1926년 고향에 땅을 사서 약 10년에 걸쳐 지은 별장촌이다. 1940년대 셰씨 집안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비어 있던 별장촌은 셰씨 집안 후손들이 중국 정부에 위탁해 현지 지방정부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도 장먼 지역사회는 해외 화교들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 사례가 '창둥촌(倉東村) 프로젝트'다. 과거 화교들이 남기고 떠난 낡은 댜오러우를 복원해 식당과 강당, 숙박시설, 카페, 창업 공간 등으로 재활용하는 사업인데, 해외 화교 후손들도 고향을 찾아와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며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장먼은 끈끈한 화교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중국이 추진하는 광둥·홍콩·마카오 경제권을 통합하는 이른바 웨강아오 대만구(粤港澳大灣區) 계획에서도 전략적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 장먼은 전체 면적만 9535㎢에 달해 웨강아오 대만구 전체 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하지만, 그동안 광둥 '서쪽 변방'에 위치해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선전과 중산을 잇는 선중통로(深中通路)와 장먼과 주하이를 잇는 황마오하이(黃茅海) 해상통로의 개통에 힘입어 선전·홍콩·마카오와 직결된 장먼은 앞으로 전 세계에 깔린 화교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자본·인재·산업을 끌어들이는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전 세계 곳곳에 널리 흩어진 화교만 5300만명. 끈끈한 유대감을 지닌 화교 네트워크는 중국 경제 발전의 버팀목이기도 했다. 개혁·개방 초기, 외국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이유로 중국 투자를 망설일 때 가장 먼저 대륙으로 들어온 이들이 바로 화교 자본이었다. 태국 CP그룹의 다닌 치아라와논드(중국명·謝國民), 필리핀 SM그룹의 헨리시(施至成), 홍콩 청쿵그룹의 리카싱(李嘉誠)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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