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배임죄 폐지의 전제조건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한결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한결]

소수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과 함께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 등 사례를 들며 형사상 배임죄 처벌 대신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배임죄 형사처벌은 주식회사 소수주주 보호와 맞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민사상 책임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임무위배행위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임무위배행위는 상법상 주식회사 외에도 폭넓게 발생하고, 배임죄 형사처벌이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었다. 예를 들어 학교법인 이사장이 그 자녀 소유 건설회사로 하여금 학교 건물을 비싼 가격에 건축하도록 계약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은 배임죄 형사처벌 외에는 찾기 어렵다. 재단법인, 사단법인, 조합 등도 마찬가지다. 미국 상황을 인용하려면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점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는 임무위배행위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묻는지 그 관련 사회적 제도 전체를 살펴야 한다. 

배임죄 형사처벌을 민사상 책임으로 대체하는 것은 현재 불가능하고 제도를 바꾸더라도 실효성 있게 작동하는 규범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주식회사를 예로 들면 대주주가 지배하는 회사에서 대주주가 자신의 배임행위를 스스로 단죄할 것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결국 소수주주가 대표소송의 형태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1년에 제기되는 대표소송은 6건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대표소송이 적은 것은 우선 소수주주들이 이를 제기해야 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배임행위의 손해를 배상하더라도 그 대상은 회사이지 소송을 제기한 주주가 아니다. 게다가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이기기는 더 어렵다. 증거는 회사 내부에 있지만 현행법상 소수주주들이 이를 받아내기란 극히 어렵다.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더라도 관련 문서가 없다고 하거나 영업비밀이라며 제출을 거부하면 그만이다.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소송비용이 들어가야 하지만 소수주주들이 이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배임행위로 발생한 손해도 소수주주들이 입증해야 하는데 법원은 그렇게 인정된 손해마저 그 일부만 배상하도록 임원들의 책임을 대폭 제한하기 일쑤다. 그래서 많은 비용을 들여 대표소송을 할 수 있는 소수주주는 몇몇 행동주의펀드에 불과하다. 게다가 삼성전자 같은 거대 기업이나 투자 실익이 작은 소규모 기업은 그 관심 대상도 아니다. 

1년에 배임죄로 기소되는 사건은 수천 건에 이른다. 배임죄 형사처벌로 실현하던 정의를 민사책임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같은 수준의 배상책임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표소송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 대표소송 제도 자체가 없는 다른 단위에서의 배임행위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민사상 책임을 묻게 할 것인지 충분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형벌권은 국가가 행사하지만 민사책임은 개인이 직접 행사해야 하므로 재산을 차명으로만 두어도 책임을 가볍게 회피할 수 있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최근 개정 상법 조항들이 재계가 우려하는 것만큼 실효적인 변화로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주주 충실의무는 법원 해석에 의해 무력화될 수 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여러 차례 주주총회를 함으로써 무력화될 수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유예기간 동안 자기 주식을 지인 등에게 차명으로 맡겨서 무력화할 수 있다. 

배임죄 형사처벌은 1953년 제정 형법부터 있었다. 70년 이상 우리는 배임죄 형사처벌을 통해 임무위배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 그렇게 깊게 뿌리내린 제도를 면밀한 대책 없이 폐지하면 배임행위만 만연해질 수 있다. 제대로 작동할지도 알 수 없는 일부 상법 조항이 개정되었다고 온 나라를 배임행위의 천국으로 만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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