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해법과 관련해 '북핵 동결'을 임시적 비상조치로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무기 생산 중단에 합의하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도 보였다. 북·미 협상이 전면 결렬되는 상황을 피하고 대화의 끈을 이어가기 위해 '중간 단계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22일(한국시간) 유엔(UN) 총회 참석을 앞두고 공개된 영국 BBC 방송과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이 같은 외교·안보 구상을 제시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BBC와 인터뷰하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매년 15~20개 추가 생산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핵 동결이 "실행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비핵화라는 장기적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도록 하는 것에는 명백한 이점이 있다고 믿는다"며 "결실 없는 최종 목표(비핵화)를 고집할 것인지 아니면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일부라도 달성할 것인지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3년 전 '핵보유국'을 선언한 북한과의 교착 국면을 풀기 위해 현실적 대안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당분간 핵무기 생산 동결에 합의한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나아가 두 정상 간 "일정 수준의 상호 신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양측이 다시 만난다면 결렬됐던 2019년 북·미 핵 협상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대북 라디오 방송을 중단한 조치를 거론하며 윤석열 정부와 달리 북한과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이 대통령은 '대북 라디오 방송 중단 조치가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BBC 질문에 "현실적으로 라디오 방송은 거의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한다"며 "바로 직전 정부가 북한에 대해서 너무 과도했기 때문에 이런 선의의 조치들이 북한의 대화 복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당분간 남북 대화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 대통령은 로이터와 인터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내달 한국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정상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날 것을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북·중·러 간 긴밀한 협력에 대해서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언급하며 평화적 공존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통령은 "전 세계가 두 진영으로 나뉘고 있는데 사실 한국이 그 경계선에 있다"며 "북한, 중국, 러시아가 강력하게 결합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바람직하거나 좋은 장면이 분명히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 진영이 완전히 문을 닫고 영원히 적대적인 관계로 단절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양 진영이 교류하는 중간 쯤에 위치하도록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러시아가 국제법을 위반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전쟁은 가능한 한 빨리 끝나야 한다"며 "국가 간 관계라는 것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협력할 부분들을 최대한 찾고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로이터와 인터뷰하면서도 한·미·일이 협력을 강화하고 북·중·러가 더 긴밀히 협력하는 경쟁과 긴장의 소용돌이가 심화하고 있다며 "이 상황은 한국에 매우 위험하고, 우리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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