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중호 교수 "축척의 日, 흐름의 韓은 찰떡궁합...국가 경쟁력 점프 기회로"

  • [한일 경제동맹 新 이정표]

  • "日 장인정신의 '축적의 국가', 韓 융합하는 '흐름의 국가'...강점 살려야"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지난 18일 일본 요코하마시립대학교에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협력 강화를 주제로 약 2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지난 18일 일본 요코하마시립대학교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협력 강화를 주제로 약 2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사진=아주경제 DB]


"일본은 '축적의 국가'다. 시간이 쌓아 올린 장인 정신의 기술력이 강하다는 의미다. 반대로 한국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융합하는 '흐름의 국가'다. 한·일이 경제·산업·사회·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장점을 조합한다면 미·중에 대응하는 새로운 균형축이 될 수 있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지난 18일 아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글로벌 패권 경쟁으로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자유무역 기치를 내세운 WTO(세계무역기구) 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무역협상이 국익을 지키는 하나의 '병기(兵器)'가 된 만큼 한·일이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 교수는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 등을 거쳐 1999년부터 요코하마시립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동 대학 국제상학부 교수 및 게이오기주쿠대 특별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아시아경제경영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일 경제뿐 아니라 외교·안보·사회·문화 전반을 30년 넘게 연구해온 '일본통'이다.

그는 한·일이 서로의 장점을 살려 'KJ 경제망'을 구축하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추격 속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무역 전쟁이 격화할수록 첨단 산업 경쟁은 치열해지고, 결국 승부는 AI·반도체·에너지 등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한·일 간 협력이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 교수는 "일본은 전통적으로 '스톡(축적)'을 중시하는 사회"라며 "소재·부품·장비·기계·화학 등은 오랜 시간 축적된 장인 기술로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은 '축적의 힘'은 약하지만 빠른 역동성으로 산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일본의 소부장 기술로 한국 반도체가 한 단계 도약했듯이 AI·기계·화학 등에서도 분업 체제를 강화하면 시너지 효과를 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그는 "한국 수출기업들은 일본의 '니즈(부족한 점)'를 채워주는 전략으로 협력 체계를 강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표적으로 주류 산업을 꼽았다. 국 교수는 "일본은 지역별로 품질 좋은 전통주를 보유하고 있지만 마케팅과 디지털 활용은 취약하다"며 "한·일이 협력해 글로벌 판로를 개척하고 이익을 분배한다면 서로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일본 내부에 활용되지 못하고 쌓인 아날로그 기술을 한국의 디지털 역량·마케팅 노하우와 접목하면 일본 사회에도 신선한 자극이 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협력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일 협력강화는 2029년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준비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그는 "관세를 높여서 세계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면서 "트럼프 2기 시대가 지나면 미국의 위상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의 스탠스를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해야 되는 시기"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국제질서인 '다극화' 체제에 대비해 한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상하이협력기구(SCO), 브릭스(BRICS),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의 관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면서 "일단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한국 외교의 시험대로 평가되는 만큼 국제사회의 리더십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첨단 기술 패권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국을 비롯해 유럽·일본 등 선진국과 중국에서는 이공계 인재 육성 열기가 뜨겁다. 반면 한국은 의대 쏠림 현상으로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가 연구 현장으로 유입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100%에 가까운 고용 환경과 지방 기업의 인재 흡수도가 높다. 국 교수는 일본과의 인재교류가 한국의 첨단 산업 육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일본은 '일소현명(一所懸命·주어진 곳에서 목숨을 받쳐 일한다)' 정신의 사회로 중소·중견기업의 역사가 길고, 인재들도 지방 기업을 기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 교수는 "일본은 대학에서 공부한 우수한 인재들이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한일 인력 교류를 활성화해 양국이 적재적소에 인재를 수출할 수 있다면 각 산업에서 필요로하는 융합형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가령 '한일 인재교류센터(가칭)'을 설치해 양국 문화, 경제에 관심을 보이는 인재들을 매칭시키고 적응 교육을 담당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한류가 'K-팝', 'K-드라마'를 넘어 패션, 뷰티, 음식, 라이프스타일로 확산되는 4차 한류로 진화화고 있다. 그러나 이를 뿌리내릴 일본 사회 내 제도적 변화는 미흡한 실정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일본 내부의 '4차 한류붐'에 대한 긍정적 기류를 제도적 기반으로 고착화해야 한 단계 퀀텀점프 할 수 있다. 국 교수는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은 10~30대와 50대 이상 사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면서 "젊은층들은 과거사 문제를 이슈로 삼으려 하지 않고, 한류에 대한 호감도가 높지만 실제 일본의 법과 제도·정책을 설계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50대 이상의 주류 남성층은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입법부는 50대 이상 남성이 많기 때문에 한류 현상을 일상에 뿌리내리게 하는 정책이나 제도가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최근 트럼프 정권의 이민 배척 정책 영향, 유럽에서의 이민 유입 반대 세력 확장과 함께 일본 내에서도 '재팬 퍼스트'를 주장하는 참정당이 의석 수를 크게 늘리고 있기 때문에 일본 내부의 우익 성향의 확대에 대해서도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모든 관계는 서로의 방향과 속도가 맞아야 전진한다. 한일협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건 첫째도, 둘째도 '끈기'다. 이 끈기는 일본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게 국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경계심이 강한 일본은 손쉽게 '함께 갑시다'라는 말을 먼저 하지 않는다"면서 "일본 사회는 상대국의 '신뢰성'과 '지속성'을 중시하는데 한국은 조금만 해보다가 막상 실익이 크지 않거나, 추구하는 방식이 다르면 금방 포기하는 태도를 보여 그동안 유의미한 한일 협력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반도체·모빌리티·수소·전력 인프라·신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한일 공동 공급망 구축은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다. 국 교수는 이런 환경에서 한국과 일본이 성향 차이를 극복하고 상호협력하기 위해서는 '전례(前例)' 형성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일본은 관례를 중시해 그동안 형성된 틀 안에서 일을 처리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면서 "때문에 새로운 일을 추진할 때는 전례가 있는지 없는지가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설명했다. 이어 "새로운 방식의 접근보다는 기존의 방법, 기존 사례가 없다면 부담이 없는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씩 쌓아서 만들어가는 '전례형성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끝으로 국 교수는 "한일 협력 강화를 위해서는 '흐름의 한국 vs 축적의 일본', '디지털 한국 vs 아날로그 일본', '넓고 얕게의 한국 vs 좁고 깊게의 일본' 이라는 3가지 축을 잘 인식하고 양국이 서로 보완할 수 있는 지향점을 찾아야 한다"면서 "역동적이지만 불안정한 한국, 느리지만 안정적인 일본의 장점을 결합해 공동 협력체를 구성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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