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소탐대실의 愚

재계에 성과 보상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삼성전자는 12조원대 영업이익을 거둔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또 다른 깜짝 카드를 내놨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주가 상승 폭에  따라 자사주를 지급하는 성과연동주식보상(PSU) 제도 도입을 공식화한 것이다. 

3년 뒤인 2028년부터 주가 상승률을 반영해 주식을 지급하는데 삼성전자 주가가 많이 오를수록 보상이 커지는 구조다. 예컨대 과장급 직원은 3년 후 주가가 12만원을 웃돌면 4000만원어치 이상 주식을 무상으로 받게 된다. 기존에 지급하던 초과이익성과급(OPI)과는 별개다.  

부진을 면치 못하던 반도체 사업이 슈퍼 사이클에 접어들면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고, 실적 개선에 따른 주가 추가 상승도 기대되니 임직원도 더욱 분발해 달라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통 큰 결단이다.

앞서 한화그룹은 국내 대기업 최초로 2020년부터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제도를 시행 중이다. 근속 기간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자사주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근시안적 업무 행태에서 탈피해 장기 성과 창출에 주력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하는 차원이다. 

PSU와 RSU 모두 스톡옵션에 비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 스톡옵션은 미리 정한 가격으로 추후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라 주가가 오르면 수익 실현을 위해 주식을 대거 매도하게 된다. 주가 하락과 주주 이익을 침해할 여지가 크다. 

특히 삼성전자는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1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기로 했는데 8조4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는 아예 소각하고 나머지 1조6000억원어치 주식을 PSU 용도로 활용할 방침이다. 신주 발행도 없다고 공언한 만큼 주식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삼성전자 노조는 상법 개정에 따른 자사주 소각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 아니냐고 다그친다. PSU 시행으로 기존 OPI 지급 재원이 감소할 수 있다는 의심도 한다. 더 많은 보상을 해주겠다는데 기존 성과급이 줄어들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만큼 성과급을 달라고도 한다. SK하이닉스는 노조와 협상을 통해 향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 중인 올해 기준으로 직원 1인당 1억원 이상을 수령하게 될 전망이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장치 산업이다. 대규모 투자가 수단되는 산업 특성을 감안하면 이번 성과급 지급은 경영진이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재계가 과감한 성과 보상에 나서는 것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기술 경쟁 속에 우수 인재 유출을 막고 더 훌륭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시총 1위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저성과자를 해고하는 것보다 그들을 유능한 직원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며 RSU를 비롯해 파격적인 보상 체계를 도입했다. 밤샘 야근이 빈번한 엔비디아가 업계 최저 수준의 이직률을 기록 중인 이유다. 

한국 경제의 중추인 반도체 산업이 기로에 서 있다. 현시점에 최종 병기인 HBM 강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반도체 각 분야에서 미국·대만·일본 등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은 물론 베트남까지 추격 대열에 합류했다. 이런 와중에 업계 종사자들의 소탐대실로 산업 경쟁력이 약화한다면 공도동망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재호 산업부장
이재호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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