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계'는 이승과 저승 사이, '중간계'에 갇힌 영혼들과 그들을 소멸시키려는 저승사자들의 사투를 그린 추격 액션 블록버스터다. 강윤성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한 연출과 서사적 밀도, 그리고 AI 기술로 구현된 크리처 액션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장르의 문법을 제시한다. 특히 12지신을 모티브로 한 저승사자들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권한슬 연출이 설계한 스펙터클한 액션 시퀀스는 한국 영화 기술력의 새로운 도약을 보여준다.
"보통 1년 가까이 걸릴 CG 작업을 AI로 하면 훨씬 단축시킬 수 있어요. 물론 단순히 빠르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효율적이죠. 실비로 따지면 오히려 더 클 수도 있어요. 하지만 'AI니까 싸다'는 건 완전히 오해예요. 이건 싸구려 기술이 아니라, 전문성과 장인정신이 필요한 영역이에요. 유튜브에서 쉽게 보는 생성형 영상과는 다르죠. 영화, 드라마, 광고의 하이엔드급 씬을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고, 그 가치를 지키고 싶었어요. AI니까 싼 느낌으로 비춰지지 않길 바랐어요."(권한슬)
"예산이 정해진 상태에서 효율을 극대화한 거예요. AI팀도 시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폭발 장면을 CG로 하면 후반 작업만 4~5일 걸리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현장에서 AI 슈퍼바이저가 바로 테스트하고, 1분 만에 효과를 만들어냈어요. 그게 실제로 영화 마지막 장면에 들어갔고요. 엄청난 효율이었죠."(강윤성)
AI 영화 산업은 이제 '실험의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산업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지난해 배우 나문희의 디지털 IP를 활용한 첫 AI 영화 '나야, 문희'가 공개되며 큰 화제를 모았고, 불과 1년 사이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진화했다.
"우리도 '나야, 문희'에 참여했어요. 그런데 불과 6개월 만에 기술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내년이면 또 한 단계 발전해 있을 거예요. 퀄리티가 계속 좋아지고, 작업 방식도 개인 아티스트 중심에서 이제는 완전히 기업화된 구조로 넘어왔어요. 스튜디오가 생기고, 60~70명 규모의 CG 팀이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 된 거죠. 훨씬 더 완성도 있는 작업이 가능해졌어요."(권한슬)
다만 '중간계'의 방대한 볼거리 속에서도 기술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 없지는 않았다.
"사천왕 장면은 조금 아쉬움이 있었어요. 실사와 붙는 AI라 그런 부분이 특히 까다로워요. 작업 기간도 넉넉하지 않았고요. 그래도 확실한 건 있어요. 지금 전 세계 어디에서도, 실사랑 이렇게 붙여서 이 정도 퀄리티를 내는 팀은 없을 거예요. 그건 자신 있어요."(권한슬)
강윤성 감독은 '염라대왕'을 통해 익숙한 상징을 완전히 비틀었다. 그는 관습적인 위엄이나 권위를 벗겨내고 상식에서 벗어난 세계 '중간계'의 혼란스러움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염라대왕을 어떤 캐릭터로 할까 고민했는데,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보자고 생각했어요. 스테레오타입을 깨고 싶었어요. 외적으로 기괴하더라도 내면적으로는 훨씬 강력한 인물이길 바랐어요. 그래서 변화할 때마다 포즈를 잡거나 이상한 동작을 하게 했죠. 그런 유치함이 오히려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중간계'라는 공간 자체가 상식에서 벗어나길 바랐거든요. 기존 이미지로는 그걸 표현할 수 없다고 봤어요. 저는 그 존재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미팅을 했을 때 이분은 연기가 안 되는 분이세요. 그래서 '똑똑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보단 오히려 그 부자연스러움을 밀고 나가면 더 힘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죠. 그 불편함이 이야기의 중간을 끊고 공간의 기괴함을 더 살리는 장치가 될 거라 봤어요."(강윤성)
AI 기술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속도전'이면서 동시에 '정밀공예'에 가깝다. 권한슬 AI 연출은 "지금은 기술이 한 달 단위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하며 제작 과정의 변화 속도를 직접 체감했다고 설명했다.
"실작업만 놓고 보면 3개월 정도면 완성할 수 있어요. 물론 기간이 길수록 결과물은 좋아지죠. 재미있는 건 작업이 끝나자마자 기술이 또 발전해버린다는 거예요. 지금 다시 하면 분명 그때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거예요. 그만큼 기술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우리가 만들 당시엔 아무런 기준도 참고할 공정도 없었어요. 벤치마킹할 것도 없으니 우리가 곧 스탠더드가 되는 셈이었죠. 한 장면 한 장면을 줄콘티 쓰듯이 프롬프트를 써요. 던져놓고 나오는 걸 쓰는 게 아니에요. 한 장면을 뽑더라도 수백 번을 뽑을 수 있어요. 제일 좋은 컷을 찾을 때까지 계속 굽는 거죠. AI 영화 제작은 결국 사람이 얼마나 정교하게 다루느냐에 달린 일이에요."(권한슬)
AI 창작 시대를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뜨겁다. 창작자들은 'AI가 내 작품을 무단 학습한다'는 두려움을 호소하고, 할리우드가 실제로 파업에 돌입한 것도 그 불안의 연장선에 있었다. 하지만 권한슬 AI 연출은 이 문제를 '본질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진단했다.
"많은 분들이 인공지능을 잘못 이해하고 계세요. 인공지능은 '인공적으로 만드는 두뇌'예요. 사람이 창작하는 방식과 똑같아요. 어릴 때부터 본 게 없으면 그림도 못 그리잖아요. 병 모양 핸드폰을 만들려면, 병이 뭔지 알아야 하죠. 그걸 '학습'이라고 하는 거예요. 스릴러나 누아르를 만든다고 하면 1930년대 '스카페이스'를 비롯해 이전 레퍼런스들이 있는 거죠. 카피가 아니라 학습, 참고예요. 사람의 창작 방식과 똑같다고 보시면 돼요. 우주선도 결국 라이트 형제를 참고해 만든 거잖아요. 결국은 사람이 만든 두뇌를 컴퓨터 안에 넣어놓은 거예요. 제도보다는 이해의 문제죠."(권한슬)
"산업은 결국 흐르게 돼 있어요. 한국 영화의 문제 중 하나가 인건비 정상화라고 생각해요. 더는 줄일 수 있는 영역이 없어요. 사이파이나 CG를 많이 쓰는 영화는 기본적으로 비용이 정해져 있거든요. 그런데 AI라는 도구를 활용하면 명백히 효율이 생겨요. 그걸 안 받아들이는 건 시장의 역행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재편될 거예요. 산업 구조가 바뀌고, 새로운 인력이 흡수되고, 자본도 더 탄력적으로 만들어지겠죠. 창작이 늘어나면 결국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요. 저는 그걸 순기능으로 봅니다."(강윤성)
AI가 창작의 영역을 침범할까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여전하지만, 강윤성 감독은 오히려 "AI가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주는 도구"라고 단언했다. 그는 25년 전 자신이 감독 데뷔를 준비하며 썼던 시나리오 '뫼비우스'를 꺼내며 이번 '중간계'의 출발점을 설명했다.
"25년 전에 데뷔하려고 준비했던 작품이 '뫼비우스'예요. 그게 '중간계'의 원안이에요. AI 제안을 받고 이 시나리오를 다시 꺼내서 수정했어요. 동양적인 사이파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죠. 십이지신이나 해태, 염라대왕 같은 설정도 다 AI 기술을 염두에 두고 바꾼 거예요. 이런 캐릭터는 CG나 AI가 아니면 글 단계에서 킬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AI로 하니까 가능해졌어요. 그게 바로 이 기술의 힘이에요. 그래서 이번엔 AI의 강점을 극대화하자는 방향으로 기획했죠.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은 항상 예산을 먼저 떠올려요. '이건 미국 로케라 안 되겠다', '이건 CG가 너무 비싸겠다' 이런 식으로요. 그러니까 상상력에 제약이 생기죠. 그런데 AI를 활용하면 그 제약이 깨져요. '이게 가능하네?' 하는 순간, 새로운 세계를 그릴 수 있는 거예요. 크리처나 판타지를 만들어야 할 때도 부담 없이 상상할 수 있고, 그게 실현될 수 있다는 게 큰 의미죠. 이제는 제작이 아니라 상상이 먼저인 시대가 된 거예요." (강윤성)
물론 그는 창작자들이 느끼는 불안을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불안의 본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정권의 변화"에 있다고 말한다.
"예전의 도구들은 인간의 창작을 돕는 보조 수단이었잖아요. 포토샵처럼 색을 편하게 고칠 수 있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AI는 스스로 만들어줘요. 그게 처음 있는 일이라서 다들 두려운 거예요. 그런데 예술에서 중요한 건 '결정'이에요. 이걸 하겠다, 이 이야기를 택하겠다는 선택 말이에요. 그건 여전히 인간의 몫이에요. 컷을 어떻게 연결하고, 음악을 어디에 배치할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결국 사람이 정해야 해요. AI가 효율을 주긴 하지만, 창작의 본질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죠."(강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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