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엔비디아 GPU 26만장 산다는데...K-AI칩 자리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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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주경제DB]

한국 정부·기업이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이자 미국 인공지능(AI)칩 기업인 엔비디아와 협력해 AI 개발에 필수인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을 구매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협약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신 AI용 GPU 가격이 개당 4만~5만 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11조~15조원(약 78억~104억 달러) 규모 계약이 될 전망이다. 한국 AI 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빅딜이다.

GPU 구매 협약 자체는 높이 평가한다.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AI 학습·추론에 필수인 GPU를 확보하는 것은 국가 AI 역량 강화에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미국 외에 이 정도로 AI용 GPU를 확보한 국가는 없다. 중국이 비슷한 규모로 GPU를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밀수입 등 비정규 루트로 확보한지라 정확한 집계는 어렵다. 유럽은 단일 국가 자본과 노력만으로는 미국·중국을 따라잡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유럽연합 차원에서 '유로 고성능컴퓨팅(HPC) 컨소시엄'을 꾸려 GPU 확보에 나서고 있다.

현재 AI용 GPU는 돈이 있어도 못 사는 물건이다. 빅테크와 전 세계 각국에서 구매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시총이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원동력인 반도체 슈퍼 사이클(초호황)도 이러한 GPU 수요 폭증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 점에서 이번 협약은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글로벌 AI 3강(AI G3) 진입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체감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이벤트다. 중요한 계약 체결에 맞춰 젠슨 황 엔비디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도 방한해 삼성전자, SK, 현대차 등 국내 고객사와 '깐부(짝꿍)' 사이임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번 축제 그 어디에도 국산 AI칩의 자리는 없어 보인다. 조 단위 정부 예산과 기업 자금을 투입해 미국의 AI칩을 확보했다고 강조하면서 국산 AI칩을 얼마나 구매해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로드맵은 민관 모두 제시하지 않는다. 민관의 외면에 AI칩을 만드는 국내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해외 판로 개척과 함께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산 AI칩 성능·효율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견과 소버린(주권) AI를 위해 독자적인 AI 모델 개발이 최우선이라는 시각 모두 타당하다. 하지만 소버린 AI는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도 글로벌 수준 경쟁력을 확보해야 가능한 명제인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당장 GPU 확보가 급하다고 해서 엔비디아의 독주를 허용하면 AI 하드웨어의 대미 종속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

당장 중국만 해도 GPU 확보와 함께 엔비디아 견제를 병행하고 있다. 화웨이가 만든 AI칩 '어센드'를 구매한 기업에 다양한 혜택을 주는 등 국가 차원에서 AI 하드웨어 자립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젠슨 황 CEO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반도체 수출 제재는 중국 반도체 기업만 키워주는 역효과를 낼 뿐이라며 중국에서 엔비디아 GPU 점유율이 0%를 향해 가고 있다고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엔비디아의 근거지인 미국에서조차 엔비디아 독주를 견제한다. 오크리지 연구소 등 미국 정부 산하 국가 연구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를 구축하며 의도적으로 엔비디아 GPU를 배제하고 경쟁사인 AMD·인텔의 칩을 활용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엔비디아 GPU 확보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엔비디아의 잠재적 경쟁자인 국내 AI칩 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공공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국산 AI칩을 더 적극 활용하면서, 국산 AI칩을 구매한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세액공제 같은 추가적인 지원 정책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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