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57) 한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너다 - 동주공제(同舟共濟)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한때 SNS에서 널리 회자되던 리더 분류법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다음 네 명의 사장 중 최악의 리더는 누구일까?

1.똑똑하고 부지런한 사장 2.똑똑하고 게으른 사장
3.멍청하고 부지런한 사장 4.멍청하고 게으른 사장

정답은 3번 '멍청하고 부지런한 사장'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리더는? 2번 '똑똑하고 게으른 사장'이다. 왜 그런지 우선 최악의 리더부터 따져보자. 멍청한 사장이 부지런을 떨며 이것저것 손 대고 일을 벌이다가는 회사가 자칫 수습 불가의 상태에 빠지기 쉽다. 그러니 멍청할 바에는 차라리 게으른 게 낫다. 최소한 엉뚱한 일을 벌여 사고를 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편 똑똑한 사장이 부지런하기까지 하면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하는 독선에 빠지고 온갖 대소사에 간여하기 십상이다. 이런 사장 휘하의 직원들은 시키는 것만 하는 등 수동적이 되고 조직의 활력이 사그라진다. 반면에 똑똑하고 게으른 사장은 웬만한 업무와 권한은 직원들에게 위임하고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않는다. 직원 입장에선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얻는다. 직원과 회사가 동반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똑똑한지 멍청한지와 부지런한지 게으른지를 기준으로 삼아 똑부, 똑게, 멍부, 멍게 네 가지 유형으로 단순화했지만, 프로이센 시절부터 독일 군부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금언에서 유래했다는 이 분류법에는 리더십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리더십을 한줄 요약하면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구성원들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유능한 리더는 구성원들의 재능과 열정을 이끌어 내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은 본시 놀기 좋아하고 술과 여자를 밝힌 한량이었다. 그러나 장량, 소하, 한신 같은 당대 최고의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하고 각자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여 천하를 얻었다. 리더십의 힘이다. 흔히 '경청(傾聽)의 리더십'으로 평가되는 유방의 리더십은 '똑게'에, 그와 천하 패권을 다툰 항우의 독단적 리더십은 '똑부'에 비유할 수 있다. 유방과 항우의 리더십 차이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우리 모두가 익히 아는 바다. 행정가로 잔뼈가 굵어서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에 전방위적으로 간여하고 지시하고 질책한다. 가히 만기친람이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똑부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리더십의 중요성이 어디 국가나 회사 운영에만 국한될까. 크든 작든 모든 공동체의 흥망이 리더십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똑똑하고 게으른 사장이 최고의 리더라는 '똑게 으뜸론'이 만사형통은 아니다. 공동체에 위기가 닥치면 리더십도 달라져야 한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영국의 왕도 국가 위난 시에는 전면에 나서 국민을 통합하고 국난 극복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던가. 위기 시의 리더십을 논할 때면 늘 비교되는 두 인물이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과 로버트 스콧이다. 두 사람은 남극 탐험 중 처한 극한의 상황에서 상반된 리더십을 보여주었으며 그 결과도 극명하게 갈렸다. 

섀클턴은 배가 난파되자 '남극 횡단'이라는 탐험 목표를 즉각 '무사귀환'으로 수정했으며 대원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는 등 탁월한 리더십과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었다. 비록 남극 횡단에는 실패했으나 섀클턴은 27명 대원 전원과 함께 634일 만에 생환하여 '실패했지만 가장 위대한 도전'을 마치고 '서번트 리더십'의 표상으로 남았다. 반면 스콧은 명예와 목표 달성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경쟁자 아문센에게 남극점 최초 도달의 영예를 빼앗긴 후에도 무리한 일정을 강행하여 남극점 도달에는 성공했으나 남극대륙의 특성을 세심하게 감안하지 않은 준비와 유능한 대원의 의견을 묵살하는 독단적 리더십으로 고난을 자초한 끝에 귀환 중 대원 4명과 함께 전원 동사하고 만다. 두 탐험대의 명운을 가른 결정적 차이는 바로 리더의 리더십이었다. 

평상시 리더십이 시스템을 통해 조직을 굴러가게 한다면, 위기 시 리더십은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때 리더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섀클턴의 일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단호한 결단력과 행동력'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무엇을 할지를 명확히 결정하고 즉시 실행에 옮기는 힘이 필요하다. 아울러 리더는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 내외부의 비판과 공격, 실수나 실패의 지적에 대한 감정적 대응은 최악이다. 리더의 감정적 대응은 조직 내 갈등을 증폭시켜 분열을 야기하고 위기대응력을 현저히 약화시킨다. "모든 게 내 책임이다”라는 인식 하에 책임 전가성 발언을 삼가고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통합의 메시지를 발신할수록 리더에 대한 신뢰는 커지고 위기 극복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나라 안팎으로 위기의 징후들이 쌓이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내년 글로벌 재정위기 촉발을 경고하고 있고 이 위기는 곧바로 한국을 덮칠 게 분명하다. 설상가상 우리 체력에 버거운 대미 관세 협상의 여파는 두고두고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고공행진하는 환율과 물가 급등은 그 전조현상일지 모른다.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제어하지 못하는 정책의 빈곤으로 인한 빈부격차와 세대격차는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와 더불어 언제든 우리사회를 뿌리째 뒤흔들 잠재적 뇌관이다. 미·중 패권경쟁이 뜨거워질수록 대만과 한반도 위기는 언제든 실제 상황이 될 수 있고, 강대국 입맛대로 종결 처리되고 있는 러우 전쟁은 한미동맹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안보 체계에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위기를 감지하는 후각이 남다른 재계는 이미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사업재편, 구조조정, 희망퇴직이란 단어가 일상화됐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른 수건도 쥐어짜며 미구에 닥쳐올 위기에 대비한다.

위기 극복의 리더십이 절실한 때이건만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정치권은 오히려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다. 내란청산과 사법개혁을 외치며 여야간 극한대결을 주도하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핵심 공약이자 차기 당 대표 연임을 위한 포석으로 밀어붙이던 '1인 1표제' 부결로 리더십 손상이 불가피해졌다. 국민의힘 사정은 어떤가. 이 당은 '계엄 사과'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두고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지만 장동혁 대표는 좌고우면할 뿐이다. 이재명 정권이 아무리 무리수를 둬도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당 지지율이 20%선에서 횡보하는 이유다. 보다 못한 소장파 의원 25명이 공개사과에 나섰고 원조 친윤 중진 의원도 장 대표를 면전에서 직격하는 등 장 대표의 리더십은 흔들리고 있다.

정쟁과 일정 거리를 두고 여야 협치를 이끌어야 하는 대통령의 행보 또한 위기 극복을 위한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이 잘 되어야 한다면서 기업을 옥죄고 발목을 잡는 법안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통합을 말하면서 '나치 전범' 때려잡듯 내란몰이를 하자고 한다. 민주당을 앞세워 내란전담재판부, 법 왜곡죄 등 각종 위헌적 법안으로 사법부를 겁박하며 삼권분립 원칙을 뒤흔든다. 여기서 하는 말 다르고 저기서 하는 말이 다르다. 과거에 한 말 다르고 오늘 하는 말이 다르다. 그러니 설령 옳은 말을 하더라도 내로남불이요 사돈 남 말 한다는 비아냥을 듣기 일쑤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고 그때그때 상황과 형편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게 '이재명식 실용주의'일지는 몰라도 대통령 말에 권위가 서지 않고 신뢰가 가지 않는다. 리더십의 위기다.

《손자병법》을 쓴  손자는 아홉 가지 지형에 따라 병법을 운용하는 전술이 담겨 있는 '구지(九地)편'에서 이렇게 말했다.“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를 미워했다. 그런 그들도 같은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나면 서로 돕는 것이 마치 한 사람의 양손과 같았다(夫吳人與越人相惡也 當其同舟而濟遇風 其相救也若左右手)." 춘추시대 오와 월은 '와신상담'이란 성어를 낳을 만큼 불구대천의 원수였지만 위기의 순간엔 서로 도왔다. 여기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동주공제(同舟共濟)'다.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는 동주공제는 모름지기 리더는 위기 상황에서 외부의 적에 맞서기 위해 내부 단합을 최우선으로 해야 함을 강조하는 성어다. '오월동주(吳越同舟)'라고도 한다.

생각과 처지가 달라도 공동의 어려움을 만나면 힘을 합쳐야 강을 건널 수 있다. 여야의 적대감이 제아무리 크다 한들 오나라와 월나라만 하겠는가. 동주공제의 리더십이 절실한 시국이다. "위기가 왔을 때 가장 훌륭한 배는 리더십이라는 이름의 배다(The best ship in times of crisis is leadership)"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함께 손잡고 나라의 위기에 대비하는 상생과 통합의 리더십을 과연 보여줄 수 있을까?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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