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그 속엔 다층적 이야기가 있죠.”
이은실은 16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파고’에서 이처럼 말하며 “실제 경험하고 또 본 것에 대해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거듭 밝혔다.
이번 전시는 이은실이 오래도록 숙고해 온 '출산'이라는 주제를 최초로 전면에 드러내는 자리다. 개인이 겪는 인생의 크고 작은 변곡점을 파도의 높이에 비유했다. 그의 인생에 굵직한 변곡점 중 하나는 첫 출산이었다. 출산이란 순간을 통과하며 겪은 신체적·정신적 변화는 거대한 용이 몸을 뚫고 지나가며 남긴 흔적처럼 강렬했다.
폭 7.2m에 이르는 대규모 회화 작품인 '에피듀럴 모먼트'는 언뜻 보면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표현한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신비로운 용 주변 곳곳에 해체된 뼈의 형상이 드러난다.
이은실은 출산 과정에서 통증 완화를 위한 경막 외 마취제가 신체에 투입되는 순간에 겪은 환각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그는 출산으로 파편화되는 산모의 몸이 진통제 주입으로 아픔을 못 느끼듯 '소중한 존재가 나오니 축하한다'는 사회적 장치 역시 '마취'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출산하는 상황에서는 산모를 포함해 모두 난장판이 되죠. 마치 용이 골반을 통과하는 듯한 환상이 지나간다고할까요."
출산에 직면한 모체는 마치 거대한 자연 앞에 선 무력한 인간의 모습과도 같다. 진진통이 오기 전에 통증이 살살 도는 진통 1기를 마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듯한 모습으로(전운) 표현했다.
이은실은 첫 출산을 겪은 후 10여년이 지난 뒤에나 이를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변화에 이어 또 다른 수많은 과정이 밀어닥쳤기에 그 변화를 돌아볼 시간은 물론이고 마음에도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큰 뒤에나 첫 출산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유하고 찾아보고 난 뒤에야 바라볼 수 있었죠. 출산 바로 직후엔 감당이 안 됐어요."
한편, 개인전은 오는 17일부터 1월 31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이어진다. 같은 기간 3층과 4층 전시장에서는 이은실이 2007년부터 2024년까지 제작한 과거 작품들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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