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몸 뚫고 지나가듯…이은실 개인전 '파고'

  • 신작 10점 출품

  • 출산이란 인생의 변곡점 통과

  • 개인의 심리적, 육체적, 사회적 변화 다각도 조명

이은실 LEE Eunsil 에피듀럴 모먼트 Epidural Moment 2025 Ink and color on paper 244 x 720 cm 244 x 180 cm x 4 ea
이은실 LEE Eunsil, 에피듀럴 모먼트 Epidural Moment, 2025, Ink and color on paper, 244 x 720 cm (244 x 180 cm x 4 ea.)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아이를 낳고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그 속엔 다층적 이야기가 있죠.”
 
이은실은 16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파고’에서 이처럼 말하며 “실제 경험하고 또 본 것에 대해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었다”고 거듭 밝혔다.
 
이번 전시는 이은실이 오래도록 숙고해 온 '출산'이라는 주제를 최초로 전면에 드러내는 자리다. 개인이 겪는 인생의 크고 작은 변곡점을 파도의 높이에 비유했다. 그의 인생에 굵직한 변곡점 중 하나는 첫 출산이었다. 출산이란 순간을 통과하며 겪은 신체적·정신적 변화는 거대한 용이 몸을 뚫고 지나가며 남긴 흔적처럼 강렬했다. 

이번 전시에는 선보이는 10점에 달하는 그의 신작은 출산이라는 상징적 사건을 경유하는 개인의 심리적, 육체적, 사회적 변화를 다각도로 조망한다.
 
폭 7.2m에 이르는 대규모 회화 작품인 '에피듀럴 모먼트'는 언뜻 보면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표현한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신비로운 용 주변 곳곳에 해체된 뼈의 형상이 드러난다. 

이은실은 출산 과정에서 통증 완화를 위한 경막 외 마취제가 신체에 투입되는 순간에 겪은 환각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그는 출산으로 파편화되는 산모의 몸이 진통제 주입으로 아픔을 못 느끼듯 '소중한 존재가 나오니 축하한다'는 사회적 장치 역시 '마취'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출산하는 상황에서는 산모를 포함해 모두 난장판이 되죠. 마치 용이 골반을 통과하는 듯한 환상이 지나간다고할까요." 
 
이은실 LEE Eunsil 고군분투 Struggle 2025 Ink and color on paper 130 x 162 cm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이은실 LEE Eunsil, 고군분투 Struggle, 2025, Ink and color on paper, 130 x 162 cm [사진=아라리오갤러리]
빨간피 혹은 용암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멈추지 않는 협곡', '생사의 기로' 등은 출산을 겪는 모체의 격렬한 투쟁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이은실은 “여성들은 출산하면서 생사의 기로에 서지만, (사회에서는) 위험한 상황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조금 피가 나도 놀라곤 하지만, 출산 때는 엄청난 피가 쏟아져도 마치 일상의 일인양 지나가는 모습을 자연현상으로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은실 LEE Eunsil 인생의 소용돌이 Whirling Vortex True Labor 2025 Ink and color on paper 160 x 190 cm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이은실 LEE Eunsil, 전운 Whirling Vortex (True Labor), 2025, Ink and color on paper, 160 x 190 cm.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출산에 직면한 모체는 마치 거대한 자연 앞에 선 무력한 인간의 모습과도 같다. 진진통이 오기 전에 통증이 살살 도는 진통 1기를 마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듯한 모습으로(전운) 표현했다. 

이은실은 첫 출산을 겪은 후 10여년이 지난 뒤에나 이를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변화에 이어 또 다른 수많은 과정이 밀어닥쳤기에 그 변화를 돌아볼 시간은 물론이고 마음에도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큰 뒤에나 첫 출산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유하고 찾아보고 난 뒤에야 바라볼 수 있었죠. 출산 바로 직후엔 감당이 안 됐어요." 

한편, 개인전은 오는 17일부터 1월 31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이어진다. 같은 기간 3층과 4층 전시장에서는 이은실이 2007년부터 2024년까지 제작한 과거 작품들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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