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오세훈 죽이기에 대통령까지 합세하나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정치는 절제의 예술이다. 특히 대통령의 말은 언제나 국정 전체를 향해야지, 특정 지방정부의 정책 하나를 겨냥해 칼날처럼 휘둘러져서는 안 된다. 그 한마디는 곧 국정의 방향이 되고, 행정의 기류가 되며, 때로는 정치적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6일 대통령 업무보고 과정에서 나온 '종묘·세운지구 개발' 관련 발언은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질문과, 이에 화답한 국가유산청장의 답변은 서울시의 적법한 도시정책을 정면으로 겨냥했고, 급기야 "새 법을 만들어 규제하겠다"는 말까지 공개석상에서 등장했다. 이는 행정적 검토를 넘어 정치적 개입의 선언에 가깝다.
 역대 어느 대통령이 지방정부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법을 제정해 막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있었는가. 불법이라면 현행법으로 제재하면 된다. 그러나 굳이 '새 법'을 언급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서울시 정책이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을 새로 만들어 막겠다는 것은, 법치가 아니라 정치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즉각 반박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의 미래 도시구조, 특히 강북 재정비와 도심 고도화 문제는 단순한 개발 논쟁이 아니다. 이는 서울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 강남과 강북의 구조적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며, 동시에 시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 사안이다. 이런 중대한 도시 비전을 두고 "초고층은 불가능하다"는 단정적 발언이 과연 충분한 검토와 데이터에 근거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도시계획은 감정이 아니라 과학이어야 한다. 경관, 조망, 스카이라인은 시뮬레이션과 데이터로 검증해야 할 영역이다. 합동 검토와 객관적 평가가 선행돼야지, 중앙정부 한 기관의 시각이 곧 국가의 최종 판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협의가 아니라 통보가 되는 순간, 지방자치는 껍데기만 남는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이 모든 장면이 내년 6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한마디, 장관급 인사의 답변 하나가 정치적 맥락에서 읽히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서울시장으로서 가장 유력한 대권 잠재주자 중 한 명인 오세훈을 향해, 중앙권력이 제도와 법을 무기로 압박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진다면, 시민들은 이를 '정책 논쟁'이 아니라 '오세훈 죽이기'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은 중립의 상징이어야 한다.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언제나 절제돼야 하며, 공개적 압박이나 입법 예고성 발언이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방정부의 권한과 영역을 존중하는 태도는 헌법 정신이기도 하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이 더 나쁘다"는 대통령의 말은, 그 자체로는 옳다. 그러나 그 말이 향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충분한 정보와 맥락 없이 단편적인 질의와 과장된 답변이 오히려 서울시의 정책을 왜곡했다면, 그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 아는 척보다 더 위험한 것은, 힘을 가진 쪽의 단정이다. 역사는 보존돼야 한다. 그러나 도시는 살아 움직여야 한다. 유산과 개발은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균형과 조화의 문제다. 서울은 정지된 박물관이 아니라, 세계와 경쟁하는 살아 있는 수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었는가. 합동 검증, 공동 연구, 공개 토론, 객관적 평가라는 수많은 길을 두고 왜 '새 법'이라는 가장 거친 수단이 먼저 나왔는가. 정치는 상대를 꺾는 기술이 아니라, 길을 여는 책임이다. 서울의 미래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적 프레임으로 흐르는 순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대통령은 싸움의 당사자가 아니라, 균형의 최종 보루여야 한다. 서울의 미래는 멈출 수 없다. 그리고 그 미래를 가로막는 방식이 정치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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