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이재명 대통령 생중계 국정보고

  • — 가능성을 열었고, 숙제도 남겼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시작한 정부 부처 업무보고가 23일 해양수산부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19부·5처·18청·7위원회, 228개 공공기관이 참여했고, 1,600분이 넘는 국정 과정이 국민 앞에 생중계됐다. 형식만 놓고 보면 역대 정부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국정운영 방식의 실험이다. 결산의 시점에서 성과와 한계를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평가할 점은 분명하다. 생중계 자체는 시도해볼 만했다. 국정의 질문과 답, 지시와 고민을 국민이 직접 확인하도록 한 것은 ‘공개행정’이라는 원칙에 부합한다. 대통령이 실무자들과 직접 토론하고 기관의 애로를 현장에서 청취하며, 필요한 사안은 즉각 결정하는 방식은 공직사회에 긴장과 속도를 동시에 불어넣었다. 실제로 예산 지원이나 제도 보완을 즉시 지시한 사례들은 행정 효율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의 주요 이유로 ‘소통’이 꼽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공개가 곧 완성은 아니다. 생중계는 국정을 선명하게 비추는 만큼, 그림자도 함께 드러낸다. 이번 국정보고 과정에서는 정책의 큰 방향보다 대통령의 발언 장면이나 질책의 어조, 지엽적 논쟁이 더 크게 부각된 순간들이 있었다. 환단고기 발언을 둘러싼 역사 논쟁, 인천공항 사장과의 공개 설전,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검토 지시 등은 국정의 본줄기와 직접적 관련이 크지 않은 사안들이 여론의 중심으로 떠오른 사례다. 형식이 내용을 압도한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 짚어야 할 대목은 이른바 ‘만기친람’의 경계다. 대통령의 디테일한 질문과 즉답형 지시는 ‘사이다 리더십’으로 호평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공직사회를 경직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낳았다. 모든 판단이 공개석상에서 대통령의 즉각적 반응에 좌우된다는 인식이 굳어질 경우, 관료들은 책임 있는 정책 설계보다 무난한 보고에 매달릴 가능성도 있다. 공개 국정일수록 지시는 더 구조화되고, 결정은 더 숙성돼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의 문제 역시 남는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에 대한 공개 질책은 국정 점검의 일환일 수 있으나, 생중계라는 무대에서는 ‘망신 주기’로 비칠 소지가 크다. 이는 불필요한 진영 갈등을 키우고, 정책 논의를 정치 공방으로 전환시킬 위험이 있다. 국정의 공개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합리적 판단을 공유하는 도구여야 한다.
 
기본은 투명성이다. 그 점에서 이번 생중계 국정보고는 의미가 있다.
원칙은 책임이다. 공개된 지시와 약속은 일정과 성과로 검증돼야 한다.
상식은 균형이다. 국정의 중심은 자극적 장면이 아니라 민생, 구조개혁, 산업 경쟁력이라는 큰 흐름에 있다.
 
이재명 정부의 생중계 국정보고는 중단할 실험이 아니라, 보완해 발전시켜야 할 제도다. 공개는 유지하되, 질문은 정책 중심으로, 지시는 제도화된 절차로, 질책은 공개와 비공개의 선을 분명히 나누는 방식으로 다듬어야 한다. 그럴 때 이 실험은 ‘보여주기’가 아니라 작동하는 공개 국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산업부·지식재산처·중소벤처기업부가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산업부·지식재산처·중소벤처기업부가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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