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주권은 감정이 아니라 법으로 지킨다" — 쿠팡 ISDS 논란이 던진 경고

쿠팡의 일부 미국 투자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근거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의향서(Notice of Intent)를 한국 정부에 제출했다. 중재의향서는 정식 제소가 아니라, 90일 이후 중재 절차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리는 사전 통지다.

정부는 “관계 부처 합동 대응체계를 가동해 법률 쟁점을 면밀히 검토하고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이번 사안의 본질이 정부의 ‘기업 핍박’이 아니라, 쿠팡의 개인정보 관리 부실과 책임 문제에 있다고 분명히 했다.

출발점은 단순하다. 기본·원칙·상식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사고를 ‘기업 내부의 실수’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디지털 경제에서 개인정보는 신용이며, 신용은 시장의 토대다. 이를 훼손한 사안에 대한 정부의 조사와 처분은 정치 행위가 아니라,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공적 책무다.

이 사안을 ‘정부가 특정 기업을 공격한다’는 서사로 전환하는 순간 피해자는 국민이 되고, 훼손되는 것은 국가 규제의 정당성이다.

투자사들이 제기한 논리는 요약하면 이렇다. 개인정보 유출 이후 국회와 행정부가 쿠팡을 대상으로 전방위적 조사와 처분, 위협적 발언을 이어갔고, 이는 한미 FTA상 공정·공평 대우, 내국민 대우, 최혜국 대우 의무를 위반했으며 그 결과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일부 보도에서는 ‘한국 정부가 중국 경쟁사를 이롭게 하려 쿠팡을 공격했다’는 프레임까지 거론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판단은 냉정해야 한다. 미·중 갈등을 끌어와 국내 개인정보 보호 집행을 ‘지정학적 박해’로 치환하는 논리는, 법률 문장으로 포장되더라도 상식의 영역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동시에 정부 역시 감정이 아니라 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정 장관의 말처럼 핵심은 ‘법리적 판단’이다. 주권은 구호로 지켜지지 않는다. 절차와 기록, 그리고 일관된 집행이 있어야 지켜진다. ISDS는 국내 여론전의 장이 아니라 국제 규범과 증거의 무대다.

정부가 집중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조사와 처분이 법률에 근거해 비차별적으로 이뤄졌다는 점. 둘째, 공공의 안전과 권익 보호라는 정당한 목적과 비례성을 갖췄다는 점. 셋째, 특정 기업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주장을 반박할 동종 사례와 집행 기준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일이다.

이번 사안은 ‘발언의 정치화’라는 또 다른 쟁점도 드러냈다. 정부는 투자사들이 김민석 총리의 발언을 맥락과 무관하게 편집·왜곡했다고 반박했다. 국제 분쟁에서 공직자 발언은 규제의 의도를 의심받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정치권이 카메라 앞에서 즉흥적이고 정서적인 언어를 남발할수록, 그 비용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치른다.

여야를 막론하고 규제·감독 사안에서는 사실과 절차, 법적 근거 중심의 언어가 필요하다. 정의는 감정의 과잉에서 나오지 않는다. 검증 가능한 사실과 정당한 절차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말 조심’이 ‘규제 후퇴’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자유는 무규제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대규모 개인정보를 다루는 플랫폼 기업은 규모의 이익만큼 규모의 책임을 져야 한다. 보안과 내부 통제를 비용으로만 인식한다면, 그 대가는 국민의 피해와 시장의 불신, 결국 기업 가치의 훼손으로 돌아온다. 투자사가 진정으로 기업 가치를 걱정한다면, 정부 압박에 앞서 지배구조와 컴플라이언스 강화를 요구하는 것이 순서다.

정리하면 이번 ISDS 논란은 세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정부는 법치와 공정 집행으로 흔들림 없이 대응해야 한다. 둘째, 정치권은 국익을 약화시키는 감정적 언행을 멈추고 공적 언어의 품격을 회복해야 한다. 셋째, 국민은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안전은 물리적 치안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의 안전까지 포함한다.

국민의 권익을 지키는 일이 곧 시장을 지키는 일이고, 시장을 지키는 일이 곧 국가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

쿠팡이든 어떤 기업이든 법 위에 설 수 없다. 동시에 정부 역시 분노로 법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 기본·원칙·상식은 그 중간선에 있다. ISDS는 겁줄 도구가 아니라, 국가와 기업 모두에게 절차와 책임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거울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기록이고, 분노가 아니라 법이며, 편 가르기가 아니라 상식이다.
 

23일 서울 광화문 광장 미국대사관 앞에서 안전한 쿠팡 만들기 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불법기업 쿠팡 비호 내정간섭 일삼는 미국 정ㆍ재계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23일 서울 광화문 광장 미국대사관 앞에서 안전한 쿠팡 만들기 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불법기업 쿠팡 비호, 내정간섭 일삼는 미국 정ㆍ재계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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