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카스의 새벽은 오래 기억될 장면을 남겼다. 전력이 끊긴 도시가 달빛에 의존한 채 잠시 ‘검은 무대’로 변했고, 미군 특수부대는 그 어둠을 타고 들어가 30분도 채 안 돼 니콜라스 마두로와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를 체포했다는 것이다. 작전은 짧았지만, 그 뒤에는 수개월의 정보 수집과 리허설, 그리고 항공·정찰 자산의 거대한 동원이 있었다. 여기에 월스트리트저널은 한 줄을 덧붙였다. 국방부 기밀망에서 운용되던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가 작전 지원에 활용됐다는 보도다.
이 한 줄이 지금 워싱턴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7일(현지시간) 연방기관 전반에 앤트로픽 기술 사용을 즉각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가 요구한 것은 “합법적인 모든 용도(any lawful use)”에 대한 전면 허용이었고, 앤트로픽은 “대규모 국내 감시”와 “인간 개입 없는 완전 자율 살상”에 쓰이지 않도록 계약에 안전장치를 넣어 달라고 맞섰다. 국방부의 논리는 간명하다. 전쟁 수행의 최종 책임은 선출 권력과 군 지휘체계에 있고, 민간 기업이 계약 문구로 합법적 군사행위를 제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무기를 팔아놓고 표적을 가리려 든다’는 비유가 등장한 것도 이 맥락이다.
하지만 이 싸움의 본질을 “안보 vs 윤리”의 구도로만 잡으면, 논점이 비틀린다. 핵심은 ‘누가 기준을 정하느냐’—권한의 문제다. AI가 단지 효율을 높이는 도구라면, 국가는 “합법이면 된다”는 깃발 아래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러나 AI는 미사일이나 야전차량과 결이 다르다. 한 번 체계에 편입되면 전장 밖으로도 번지기 쉽고, 정보·수사·감시·행정으로 전이될 유인이 구조적으로 내재한다. “우리는 그럴 계획이 없다”는 선언은 정치적 약속일 뿐 제도적 안전핀은 아니다.
긴급성과 비밀성이 결합하는 국방 영역에서 ‘예외’는 늘 관행으로 자란다. 그래서 기업이 계약 단계에서라도 경계선을 그으려는 시도를 단순한 이미지 관리나 ‘진보적 고집’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기술이 ‘도구’에서 ‘인프라’로 격상되는 과정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통제 장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질문에 닿아 있다.
국방 AI는 단기간에 갈아끼울 수 있는 앱이 아니다. 모델, 데이터, 운용절차, 보안망이 엮인 체계다. 정권의 구호에 따라 “허용”과 “금지”가 널뛰면, 군의 기술적 연속성은 흔들리고 민간 파트너들은 정치 리스크가 낮은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그 공백을 누가 메우는지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경쟁국은 이런 혼선을 비용으로 치르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이 웃는다”는 식의 단순한 수사가 때론 과장처럼 들려도, 제도적 일관성이 무너질 때 생기는 전략적 손해는 현실이 된다.
해법은 힘겨루기 자체가 아니다. 기업이 계약 문구로 국가를 통제하려 하고, 국가는 권력으로 기업을 굴복시키려 할 때 충돌은 반복된다. ‘전쟁의 AI’는 계약서에만 맡겨둘 영역이 아니라 법과 원칙, 그리고 감사 가능한 절차의 영역으로 옮겨져야 한다. 인간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구조를 어디까지 강제할지, 완전 자율 살상에 대한 금지 혹은 제한을 어떻게 정의할지, 국내 감시로의 전이를 어떻게 차단할지—이 모든 것이 선언이 아니라 규정과 기록, 사후 검증 시스템으로 설계돼야 한다.
한국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북한 위협, 회색지대 도발, 사이버 공격이 일상인 환경에서 ‘속도’는 언제나 유혹적이다. 동시에 민주주의 국가로서 기본권의 방어선은 더 엄격해야 한다. 국방 AI는 중립적인 기술처럼 보이지만 실은 국가 권력의 증폭기다. 출력이 커질수록 안전장치도 정교해져야 한다. 정치적 기류가 바뀔 때마다 기준이 흔들리는 순간, 기술의 우위는 곧 취약점이 된다.
카라카스의 어둠 속 30분이 보여준 것은 미국의 군사력만이 아니다. 전쟁의 중심축이 코드와 데이터로 이동한 시대에, 민주주의의 절차와 헌법적 원칙을 어떻게 ‘속도’에 맞춰 붙일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답은 누가 더 강하게 밀어붙이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견고하게 기준을 제도화하느냐에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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