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벌어지는 충돌은 단순한 군사 보복이 아니라 중동 질서를 둘러싼 전략적 전쟁입니다. 중동을 이해하려면 군사 뉴스만 봐서는 안 됩니다. 그 밑바닥에 있는 역사와 문명을 함께 봐야 합니다.”
중동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중동 전쟁을 이렇게 규정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고, 그의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로 유력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동은 다시 거대한 격랑 속으로 들어갔다.
세계 언론은 이번 사태를 대부분 이란 핵 문제와 군사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하지만 중동의 역사를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번 충돌은 단순한 군사적 의미를 넘어선다.
중동의 전쟁은 언제나 권력과 문명이라는 두 층위에서 동시에 움직여 왔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 역시 그 두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벌어지고 있다.
핵과 보복, 전쟁의 표면
표면적으로 이번 전쟁의 출발점은 이란의 핵 개발 문제였다.
이스라엘은 오래전부터 이란의 핵무장을 국가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인식해 왔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만약 이란이 핵 능력을 확보하게 된다면 이스라엘은 전략적 우위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란 핵 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작전을 진행해 왔다. 핵 과학자 암살, 사이버 공격, 군사 공습 등은 이미 국제 뉴스에서 여러 차례 등장했다.
그러나 이희수 교수는 핵 문제만으로 이번 사태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핵 문제는 전쟁의 명분일 수는 있지만 본질은 아닙니다. 중동에서는 언제나 힘의 균형이 갈등의 방향을 결정해 왔습니다.”
그의 말처럼 중동 정치의 핵심은 언제나 패권의 균형이었다.
이스라엘 패권 전략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오랫동안 전략적 고립속에 있었다.
건국 직후 아랍 국가들과 벌어진 1차 중동전쟁을 시작으로 1956년 수에즈 전쟁, 1967년 6일 전쟁, 1973년 욤키푸르 전쟁까지 이스라엘은 수차례 생존을 건 전쟁을 치렀다.
특히 1967년 6일 전쟁은 중동 질서를 바꾼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은 단 6일 만에 이집트·요르단·시리아 연합군을 격파하고 가자지구와 골란고원, 동예루살렘을 장악했다. 이 승리는 이스라엘을 단순한 신생 국가에서 중동의 군사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전략적 고민은 계속됐다.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갈등은 줄어들지 않았고 팔레스타인 문제는 여전히 중동 정치의 핵심 갈등으로 남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가장 크게 경계하게 된 국가는 이란이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스스로를 반이스라엘 세력의 중심 국가로 규정했다.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예멘의 후티 반군 등과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중동 전역에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이 변화 속에서 이스라엘이 추진해 온 전략은 비교적 분명하다.
이란을 약화시키고 중동의 힘의 균형을 다시 설계하는 것.
만약 이란의 영향력이 약화된다면 중동에는 새로운 권력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미국
이 네 축이 연결된 새로운 질서다.
실제로 2020년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과 UAE·바레인이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중동에서 오랫동안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였다.
이번 전쟁을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이스라엘 중심 중동 질서 재편의 과정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페르시아 문명의 기억
그러나 중동의 이야기는 권력 정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란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문명과 역사를 함께 봐야 한다.
이란은 흔히 ‘이슬람 혁명 국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3000년 이상 이어져 온 페르시아 문명 국가다.
기원전 6세기 아케메네스 왕조는 지중해에서 인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이 제국의 창건자 키루스 대왕은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한 통치자로도 유명하다.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는 오늘날에도 고대 문명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7세기 이슬람이 확산된 이후에도 페르시아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언어와 문학, 철학은 아랍 세계와는 다른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했다.
이희수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란 사회에는 강한 문명적 자존심이 있습니다. 이란을 단순한 이슬람 국가로만 보면 중동 정치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실제로 오늘날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개념인 알고리즘이라는 단어도 페르시아 수학자 알콰리즈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저항의 역사
이란이 서방과 충돌해 온 역사 역시 이런 문명적 기억과 연결돼 있다.
1953년 미국과 영국은 이란의 모사데그 정부를 전복하는 쿠데타를 지원했다. 이 사건은 이란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후 등장한 팔라비 왕조는 친서방 정책을 추진했지만 내부의 반발은 점점 커졌다.
결국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다.
이 혁명은 단순한 종교 혁명이 아니라 외세 영향력에 대한 정치적 반발이었다.
이란 사회에서는 외부 압력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민족주의적 결집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희수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란을 이해하려면 종교보다 역사적 경험을 먼저 봐야 합니다.”
문명의 긴 그림자
오늘의 중동은 그래서 두 개의 힘이 충돌하는 공간이 됐다.
하나는 권력의 논리다.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일부 아랍 국가들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중동 질서다.
다른 하나는 문명의 기억이다.
페르시아 문명과 이란 사회가 지닌 역사적 자존심이다.
중동의 갈등은 언제나 이 두 힘이 만나는 지점에서 폭발해 왔다.
우리가 읽어야 할 메시지
중동 전쟁은 언제나 세계 경제를 흔들어 왔다.
1973년 석유 파동이 그랬고, 2003년 이라크 전쟁도 그랬다.
지금의 충돌 역시 단순한 지역 분쟁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이 흔들리면 세계 에너지 시장은 즉각 충격을 받는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희수 교수는 “중동을 이해하려면 역사와 문명을 함께 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것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패권을 둘러싼 전략과 문명의 기억이 충돌하는 긴 역사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사의 흐름은 지금도 세계 질서를 다시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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