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는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있지만, 세계 교역 질서를 향한 또 다른 포화는 워싱턴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 교역국을 겨냥해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제조업 분야의 구조적 과잉 생산 능력과 관련해 각국의 정책과 관행이 미국 상업에 부담을 주거나 제한을 가하는지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인도, 베트남, 대만, 멕시코 등 총 16개 경제권이 포함됐다.
보조금, 국영기업 지원, 저금리 금융, 시장 접근 제한 등 각국의 산업 정책이 시장 수요를 넘어서는 생산을 유도하고, 그 결과 발생한 잉여 생산물이 미국 시장으로 유입돼 자국 제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를 단순한 무역 조사로만 보는 이는 없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도입했던 상호관세를 권한 남용으로 판단하면서 기존 관세 정책의 법적 기반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정책이나 관행이 미국 상업을 제한하거나 부담을 줄 경우 미국 정부가 관세 부과나 협상 요구 등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도 이 조항은 중국의 기술 이전 강요와 산업 정책을 문제 삼는 데 활용됐고, 그 결과 약 3,7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고율 관세가 부과됐다.
이전에는 301조가 지식재산 침해나 특정 무역 장벽 등 개별적인 불공정 관행을 겨냥하는 도구였다면, 이번에는 ‘구조적 과잉 생산’이라는 산업 구조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특정 정책을 넘어 국가의 생산 구조와 글로벌 공급 체계 자체를 조사 대상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대상 국가들은 중국, 유럽연합, 일본, 한국, 베트남, 대만, 인도 등 대부분이 미국이 상당한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교역 상대국들이다.
결국 이번 조사는 단순한 산업 정책 문제라기보다 미국의 구조적인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관세 전략이라는 해석을 낳는다.
절차상으로는 공청회와 의견 수렴 과정이 진행된다. 미국 정부는 3월 중순부터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접수하고 5월 초 공청회를 거쳐 대응 조치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후 관세 부과, 서비스 수수료, 협상 요구 등 다양한 조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워싱턴의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분석이 많다. 현재 미국은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10% 글로벌 관세를 한시적으로 부과하고 있으며, 이 조치는 약 150일 후인 7월 말 종료된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그 전에 새로운 관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번 조사를 두고 결론을 향해 진행되는 절차적 정당화 과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 정부 역시 대응 전략을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과거 301조 조사가 특정 산업이나 정책을 겨냥했을 때는 해당 분야에 대한 협상과 조정으로 대응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산업 구조와 생산 능력 자체가 문제로 제기될 경우 대응 범위는 훨씬 넓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이 조사 기준으로 대미 무역 흑자, 과잉 생산 능력, 정부 보조금과 산업 정책 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역시 통상 협상 과정에서 새로운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301조 조사는 형식을 갖춘 조사 절차이지만, 결국 논의의 종착점은 관세 수준과 조건을 둘러싼 협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관세 수입이 아니라 자국 제조업의 재건과 공급망 재편이다. 결국 해법은 세율과 산업 협력의 새로운 균형점에서 찾아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수출과 제조업 중심 구조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 시장과 공급망에서의 역할 또한 작지 않다. 따라서 대응의 핵심은 단순히 관세를 피하는 데 머물지 않고, 미국의 제조업 재건 전략 속에서 한국 산업이 상호이익을 만들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이다.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첨단 소재 등 전략 산업에서 투자와 공급망 협력, 시장 접근을 교환하는 현실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세계 교역 질서를 둘러싼 긴장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갈등의 끝에서 결국 결정되는 것은 세율과 이해관계의 균형이다.
한국의 통상 전략도 이제 그 현실을 중심으로 보다 정교하게 재조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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