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시작된 전쟁이 동북아의 군사 지도를 흔들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이번 충돌은 페르시아만의 유조선 항로를 넘어 일본과 한국의 안보 환경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미국이 일본에 전진 배치돼 있던 강습상륙함 트리폴리함과 해병 원정 부대를 중동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소식은 그 상징적인 장면이다. 전쟁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군사력의 이동은 태평양과 동북아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세계를 하나의 전략 공간으로 바라봐 왔다. 유럽과 중동, 그리고 인도·태평양은 별개의 전장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작전 영역이다. 어느 한 지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다른 지역의 병력과 장비가 즉각 이동한다. 일본 주둔 미군 전력이 중동으로 향하는 모습은 바로 그 전략이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동북아 국가들에게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일본과 한국은 미국의 핵심 동맹이자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진기지다. 중국의 군사력 확대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속에서 미군 전력은 지역 안정의 중요한 축으로 작동해 왔다. 그런 전력이 다른 전장으로 이동하는 장면은 동맹 구조가 얼마나 글로벌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다시 보여준다.
이번 사태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방공 자산 문제다. 미국은 중동에서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국에 배치된 일부 방공 체계를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한국에서도 주한미군의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 일부를 중동으로 이동시키면서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드(THAAD) 체계와 관련한 여러 관측도 이어졌다.
이 문제는 단순한 군사 장비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은 여전히 북한이라는 직접적인 군사 위협과 마주하고 있다. 한반도는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은 지역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방공 체계와 억지력은 단순한 군사 장비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일본 역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미일동맹은 일본 안보의 핵심 축이지만, 동시에 일본은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독자적인 방위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방위비를 국내총생산의 2% 수준까지 늘리고 장거리 타격 능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그 연장선에 있다.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스스로의 방위 능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한국에게도 같은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한미동맹은 한국 안보의 핵심 축이며, 그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동맹이 글로벌 전략 속에서 움직인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한국 역시 그 전략적 체계의 일부로 작동하게 된다.
과거에도 비슷한 장면은 있었다. 걸프전과 이라크 전쟁 당시 한국은 파병과 후방 지원을 통해 동맹의 요청에 응했다. 동맹은 단순한 방위 협정을 넘어 국제 안보 질서에 대한 공동 책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의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다. 중국의 부상, 북한의 핵무장, 그리고 글로벌 전력 이동이 동시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선택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동맹을 기반으로 국제 질서에 책임 있는 역할을 하되, 동시에 한반도의 안보 현실을 최우선에 두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동맹은 우리의 방패지만, 국가의 운명을 대신 책임져 주는 존재는 아니다. 결국 안보의 중심은 스스로 지키는 힘에서 나온다.
이 점에서 최근 한국 방위산업의 성장과 군사 기술 발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사일 방어 체계, 정찰 능력, 그리고 첨단 무기 개발은 단순한 산업 성과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선택지를 넓히는 기반이 된다. 동맹이 흔들릴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맹을 더욱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중동 전쟁은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 오늘의 세계는 더 이상 지역 단위로 분리된 안보 환경이 아니다. 중동의 전쟁은 국제 유가를 흔들고, 유럽의 전쟁은 에너지 공급망을 바꾸며, 그 여파는 동북아의 군사 배치와 외교 전략까지 영향을 미친다.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전략 공간으로 연결돼 있다.
그 속에서 한국이 가져야 할 태도는 분명하다. 감정이 아니라 전략, 구호가 아니라 균형이다. 동맹을 기반으로 국제 협력에 참여하되, 한반도의 안보 현실을 가장 먼저 고려하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국가 외교와 안보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중동의 화염은 멀리서 타오르는 불길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불빛은 이미 동북아의 하늘에도 비치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전장처럼 연결된 시대,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다. 동맹을 지키되 국익을 잃지 않는 것, 그 균형 위에서만 한국의 안보는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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