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환율까지 상승하는 등 대외 리스크가 확대되는 가운데 증시로 향하는 ‘빚투(빚내서 투자)’가 다시 늘고 있다.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금리가 최근 두 달 사이 0.2%포인트 이상 오르며 투자 여건이 악화됐음에도 대출을 활용한 주식 투자 수요는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이다.
더욱이 과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취업난 속에서 자산 증식 기회를 찾던 청년층이 빚투를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중장년층까지 투자에 뛰어들며 레버리지 투자가 전 연령대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대외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시장 조정이 발생하면 경제 전반에 미칠 충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12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120조1462억원으로 집계됐다. 하루 사이 1조1182억원 늘었고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32조원 넘게 증가해 증시로 유입된 대기 자금이 빠르게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날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에서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금액을 의미하는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32조1419억원으로 집계됐다. 하루 사이 4855억원 늘었고 전월 말보다도 6873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4조8554억원 늘어난 수준이며 개인투자자의 레버리지 투자 규모가 크게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빚투 규모가 빠르게 늘면서 일부 증권사는 위탁증거금률을 상향하거나 신용거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다만 주식시장 활성화를 추진 중인 정부에서는 아직 빚투 확산에 대한 경계 메시지는 나오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자산시장 활력을 유지하려는 정책 기조 속에서 이 같은 투자 분위기가 일정 부분 용인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제는 이미 가계부채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레버리지 투자가 확대되면 소비 위축과 금융권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나아가 경기 둔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약 89%로 추정된다. 2021년 말 98.7%로 정점을 찍은 뒤 정부가 거시건전성 규제에 나서며 하향 추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이 60% 초반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최상위권 수준이다.
과거에도 레버리지 투자 확대는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작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다. 2000년대 중반 부동산 버블 당시 서울 아파트 가격은 2006년에만 24% 상승하며 과열 양상을 보였고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시장이 급격히 냉각됐다. 그 여파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장기간 침체에 빠지며 이른바 ‘하우스푸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코로나19 이후 나타난 부동산 ‘영끌’ 투자 역시 레버리지 투자 확대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 여파로 가계부채는 2019년 1600조원에서 2021년 1860조원까지 급증했다. 이후 금리 인상 국면이 시작되면서 가계의 상환 부담이 크게 늘었고 후폭풍은 장기적인 소비 위축과 건설 경기 둔화 등 실물경제 부담으로 이어졌다.
개인 채무조정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도 이런 부채 증가의 단면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14만9146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개인회생 신청은 2022년 8만9966건에서 2023년 12만1017건으로 크게 늘었고 2024년 12만9499건을 기록한 뒤 1년 사이 2만건 가까이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레버리지 투자 자체가 항상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투자 규모가 빠르게 확대되면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최근처럼 국제 유가 상승과 환율 변동성이 동시에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금융시장 조정이 실물경제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대외 여건을 고려할 때 주식 투자를 하기 상당히 위험한 상황임에도 빚투가 늘고 있다는 것은 정부가 부동산에 흐르던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유도하려는 정치적 요인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며 “당국자들도 이런 정부 기조에 반하는 대출 규제와 같은 정책을 내놓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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