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헌법정치]  法 앞에선 法…'법왜곡죄'의 역설

  •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의 신화는 끝났다

  • 법왜곡죄 정치화된 사법에 대한 경종

  • 최종영 대법원장 혼밥 도시락

  • 이용훈 대법원장 간이칸막이 구내식당

  • 진보 사법철학과 법왜곡죄 이율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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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사법 3법이 3월 12일 0시부터 발효되었다. 첫날부터 예상했던 혼란과 부작용이 현실화된다. 2025년 5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에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한 조희대 대법원장과 주심 박영재 대법관에 대하여 법왜곡죄 위반에 따른 고발장이 용인서부경찰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접수되었다. “7만 쪽이 넘는 기록을 출력해 검토하지 않고 판결”했으므로 형사소송법상 서면주의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여 과거 검찰 특수부에 해당하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반부패수사대에 사건을 이첩했다. 사상 초유의 피고발인 신분이 된 대법원장은 대통령과 국회의장에 이어 권력서열 3위의 고위공직자이니 공수처의 수사대상이다. 그런데 정작 고발인인 변호사조차 경찰과 공수처에 동시에 고발장을 접수하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사건 1심 재판장, 1심 판결에 불복하는 소액주주들에 의하여 재판장이 법왜곡죄로 고소되었다.

법왜곡죄로 옥죄려 사법관에 맞춰진 초점이 역으로 정부여당이 주도한 특검을 향해 부메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한 시민단체가 조은석·민중기·이명현 특검과 오동운·이재승 공수처 처장·차장 등 무려 28명을 법왜곡죄 위반으로 고발장을 제출하였다. 고발인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수사과정에서 인권유린 수사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내란세력 척결을 내세운 특검의 수사책임자들이 피고발인 신분이 되었다는 점에서 법왜곡죄에 따른 고소·고발이 넘쳐날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화된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민중기 특검을 고발하려 한다. 실제로 법왜곡죄가 시행된 지 불과 며칠 만에 갖가지 사건이 접수된다. 그간 판사에 대한 연간 수천건에 이르는 고소·고발 건은 각하되었으나, 이제 법왜곡죄의 시행으로 수사·기소를 거쳐 법원의 본안판단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새로 도입된 형법 제123조의2 법왜곡죄에 의하면 판사·검사·수사관이 형사사건에서 법령의 적용 요건을 따르지 않아 의도적으로 재판·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 증거를 인멸·은닉·위조·변조하거나 위·변조된 증거를 재판·수사에 사용한 경우,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하거나 적법한 증거가 없음을 알면서도 범죄사실을 인정한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의도적으로 증거 조작, 사실 왜곡, 잘못된 법 적용을 처벌하겠다고 하지만 구성요건이 매우 추상적이다.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높다. 법왜곡죄의 고소·고발 주체는 거의 무제한적이니 제소가 남발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인구 1인당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이 가장 많은 나라다. 1년에 700만 건이나 되며 이웃 일본의 2배다. 수사 주체도 혼란스럽다. 국수본인지, 공수처인지, 중수청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법적 다툼은 법정에서 최종적으로 실체적 진실이 가려진다. 대법원장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의 수장이다. 헌정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법원장은 정의를 실천하는 사법의 표상이면서 동시에 영욕의 사법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는 의병·판사·변호사로 활동한 애국지사이다. 그는 이승만 정부에서 9년 넘게 재임하면서 사법부의 기틀을 닦고 독립을 지킨 위인으로 대한민국 사법의 신화적 인물이다(한인섭, 가인 김병로). 그러기에 대법원이 주관하는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의 ‘가인 법정변론 경연대회’도 있다. 그의 고향인 순창에는 ‘대법원 가인 연수관’이 있다. 김종인 전 의원의 조부이다.

하지만 혼돈의 한국헌정사에서 대법원장도 치욕과 수모로부터 예외가 아니었다. 조용순 대법원장은 5·16 쿠데타로, 이영섭 대법원장은 12·12 쿠데타와 신군부 집권 이후 퇴임을 강요당했다. 헌정파괴기에 곤욕을 치른 그의 퇴임사는 ‘회한과 오욕’이다. 유태흥 대법원장은 재임 중 법관 인사 파문으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다. 퇴임 후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김용철 대법원장은 6월항쟁 이후 사법파동으로, 김덕주 대법원장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 재산공개 파문에 휘말려 사퇴했다. 그의 퇴임은 1979년 서울민사지방법원장 재임 시 ‘신민당 김영삼 총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한 정치적 후과(後果)로 기억된다.

민주화 이후 대법원장은 법치의 상징이었다. 최종영 대법원장은 외부인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집무실에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때우면서 성직자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후임 이용훈 대법원장은 구내식당에 간이칸막이 별실을 만들어 외부 인사들과 소통의 장을 마련한 바 있다. 필자도 서울대 법대 학장 재임 시절 바로 그 식당에 초대받아 소찬으로 차려진 점심식사를 함께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정권교체가 잦아지면서 대법원도 그 정치적 격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양승태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몰아친 사법부 개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마침내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사건으로 구속기소되었다. 47개 범죄 혐의 중에서 1심에서 전부 무죄판결이 나왔지만, 2심에서는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유죄판결이 내려져 현재 대법원에 상고 중이다. 후임 김명수 대법원장도 임기 내내 여러 가지 구설과 논란이 제기되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덕분에 사법처리는 면했다.

법왜곡죄 심의과정에서 그나마 그 적용대상을 형사사건에 한정한 것은 다행이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시청·구청·주민센터와 같은 행정관청에는 반드시 가야 한다. 그러나 경찰·검찰·법원은 평생 한 번도 가지 않는 것이 어쩌면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수사·기소·재판을 받게 되면 무혐의처분·불기소처분·무죄판결을 받지 않는 한 원한을 가지기 마련이다. 이에 법의 해석·적용을 한 관계자들은 언제나 고소·고발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법왜곡죄는 법을 왜곡하려는 자들에게 밑자락을 깔아주는 셈이다.

법왜곡죄의 시행에 따라 수사관·검사·법관의 입장에서는 법을 경직되게 적용하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만약 법을 느슨하게 적용하여 ‘법에도 사랑이 있다’는 경구를 실천한다면 당장 법왜곡죄로 피소될 우려가 짙다. 수사관은 아무리 경미한 사건이라도 일단 검찰로 송치할 것이고, 검찰은 기소 여부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논쟁의 소지가 있으면 일단 기소하고 볼 것이다. 법관은 법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재량의 여지도 없어질 것이다. 인권보호보다는 법왜곡죄가 지배하게 될 것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즉 법관은 재판에 임하면서 우선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한다.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법관은 법왜곡죄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예컨대 헌법과 법률의 해석에서 다수설과 소수설이 대립한다면 후환이 두려워 다수설을 따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법관의 법발견과 법창조기능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사법은 그 본질상 소극적이다. 입법과 같이 적극적인 법형성작용을 하지 아니하고 행정과 같이 적극적인 형성적 작용도 하지 아니한다. 하지만 법관은 재판이라는 구체적 법적용과정에서 법해석을 통하여 법의 흠결을 보충하는 기능을 하므로 사법작용의 소극적·수동적 성격에서 나아가 실제로는 법을 창조하기도 한다. “법관은 법이 없다는 이유로 재판을 거부할 수 없다”라는 명제도 바로 이러한 법관의 법창조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법관의 법창조기능은 사법의 본질적 특성인 소극적 기능에 배치되지 아니한다. 법왜곡죄로 법관의 법창조적 기능이 사법의 소극적 성격에 묻히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렇게 된다면 진보적 사법철학에 기초한 사법적극주의는 그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사법부는 단순히 선례에 기속되는 소극적인 재판작용으로 만족하여서는 아니 되고, 역사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법규범을 능동적으로 해석하여 의회와 정부의 작용을 판단하여야 한다. 이는 기존의 선례와 법감정에 기초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사법소극주의와 대치되는 진보적 법철학에 기초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인 국민주권정부를 자처하는 이재명 정부가 법왜곡죄를 도입한 것은 상호 모순적이다. 예컨대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존의 판례에 의하면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은 통치행위로 보아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그런데 이를 뒤집고 인구비례에 따라 4:1에서 3:1로 결국 2:1에 이른 선거구 획정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진보적 헌법철학에 기초한다.

법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여기서 양심은 자연인으로서의 법관 개인이 가지는 주관적 양심이 아니다. 즉 헌법 제19조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법관은 법관으로서 가져야 할 객관적 양심에 따라 재판하여야 한다. 법관이 재판에 임하면서 법왜곡죄를 인식하는 순간 법관으로서의 객관적 양심이 아니라 주관적인 양심에 휘둘리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재판에 임하는 법관의 자기 검열을 의미한다. 설사 법관이 주관적인 양심에 따른 법왜곡이 있더라도 3심제를 통하여 교정할 기회가 마련되어 있다.

민주법치국가에서 형사사법절차는 지나치다 할 정도로 사각지대나 빈틈없이 촘촘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헌법 제12조에서는 인신보호를 위한 적법절차 원칙에 따라 헌법 조문 중에서 가장 길게 규정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수사한 기록을 검찰이 그대로 공소장에 기재하고 법원도 공소장에 적시한 대로 판결하면서 수많은 공안사건 및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이 희생되었다. 그런 인권에 관한 한 야만적인 시대를 생각한다면 법왜곡죄가 아니라 그보다 더 엄한 범죄 유형도 도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산업화가 이룩한 과실에 기반한 1987년 헌법 체제에서 나라의 민주화를 구가하고 있는 시점에 굳이 법왜곡죄를 새삼스럽게 도입한 취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법을 왜곡하는 판사·검사·수사관에 대하여는 기존에 있는 직권남용·직무유기 등 12개에 이르는 공직자범죄로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그나마 사법 엘리트들의 노력으로 한국적 법치주의가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다. 법조일원화에 따라 변호사 10년 이상의 경력자만이 법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법조엘리트들은 대형 로펌에 안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질시의 대상인 사법관의 길을 택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예로부터 교육자와 사법관은 소명을 실천하는 성직자에 준하는 예우를 받아왔다. 법관도 인간인지라 재판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법관을 왜곡의 주체로 의심하는 한 법관의 양심이 먼저 왜곡될 것이다.

무엇보다 법왜곡죄의 시행으로 형사사법작용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팽배하고 불복하게 된다면 그것은 민주법치국가의 정상적 작동에 치명상을 입히게 된다. 어렵고 힘든 산업화와 민주화의 긴 터널을 갓 벗어난 상황에서 법왜곡죄로 인하여 법의 지배가 훼절되어서는 아니 된다. 차제에 형사사법 관계자들도 사법관료주의에 안주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에 소홀함이 없었는지 성찰할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법왜곡죄는 심급 사이에 상호 배치되는 극단적인 법해석 및 판결, 법관의 자의적인 법해석에 대한 질책과 경종이 될 수도 있다. 법왜곡죄로 사법의 정치화만 탓할 것이 아니라 정치화된 사법이 법왜곡죄를 불러온 것은 아닌지 각성이 필요하다.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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