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가지 오판에 근거한 충동적인 결정으로 이란과 전쟁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은 세계 전략에 근거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시작해야 한다. 전쟁을 시작하긴 쉽지만 끝내기는 어렵다는 것을 우크라이나전이 잘 보여주고 있는데도 그는 새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은 여러 명분을 내세우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전쟁을 자주 일으키는 나라임은 틀림없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관여한 전쟁의 결과를 살펴보면 사실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그나마 미국이 자부하는 한국전마저 사실 공산세력 침공은 격퇴하였지만 3년의 전쟁 끝에 결국 원점으로 회귀했으니 승리라고 자부할 수 없다.
그 밖의 전쟁들에서 미국은 승리를 얻지 못했고 길게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경제가 피폐해지고 내부 단결이 계속 약화하는 현상을 겪었다. 항상 미국은 전쟁을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끝낼 때는 아주 불명예스럽게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이란전도 예외가 아닐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왜 이렇게 미국은 자국의 세계 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을 자주 일으키거나 분쟁에 개입하는지 그 이유를 짚어보고 그런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미국 패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전은 미국이 처음으로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하는 뼈아픈 기억을 남겼는데 미국은 이 전쟁에 깊은 고민 없이 쉽게 발을 들여놓았다. 사실 미국은 2차 대전 후 영국. 프랑스 등이 여러 지역에 보유하고 있던 식민지를 포기하라는 압력을 계속 넣고 있었다. 이런 미국이 프랑스가 식민지였던 베트남을 계속 지배하기 위해 벌이고 있던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것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공산화 도미노 현상에 대한 우려를 명분으로 삼기는 했지만 베트남에 개입할 전략적 긴급성은 적었다. 자작극이라는 설도 있는 통킹만 미국 군함 피격 사건을 구실로 1964년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였다. 그 이후 20만명의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고 엄청난 국력 소진과 내부 분열이란 대가를 미국은 10년간 치렀다. 그런데도 미군은 승리하지 못한 채 베트남의 공산화를 허용하고 황급히 철수해 버렸다. 당시 미 대사관 옥상에 마지막으로 탈출하는 헬리콥터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월남인들을 내버려두고 미국은 부끄러운 철수를 했다. 이때부터 미국의 국력은 기울기 시작하였고 미국은 더 이상 아시아 방위를 홀로 책임지지 않는다는 닉스 독트린을 발표하게 된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였을 때 미국은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이란 연합군을 구성하여 개입하였다. 그 전쟁은 명분이 있었고 단기간에 승리를 거두어 중동에서 미국의 지배권을 과시한 예외적 성공이었다. 단 일방적 개입이 아니라 서방국 동참을 유도하여 성공한 것이다.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 일환으로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미군을 주둔시켰다. 당시 미군들은 이 두 나라를 약 한 달간의 작전으로 평정할 수 있다고 장담했고 사실 단기간 작전으로 점령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 두 나라에서도 테러 세력들을 축출하고 민주국가를 수립하겠다는 미국의 야심은 20년간 노력에도 불구하고 물거품이 되었다. 약 6만명의 미군 사상자와 8조 달러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소모하고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미군은 엄청난 군사 장비를 현장에 그대로 둔 채 황급히 떠나야만 했다. 이 20년 동안 미국이 한눈파는 사이 지금 미국의 최대 도전국이 된 중국은 국력을 마음껏 키울 수 있었다. 미국이 올바른 정세판단과 세계전략을 가졌다면 테러와의 전쟁을 속히 끝내고 그때 중국 견제에 집중해야 했다. 그 시기를 놓치고 지금은 너무 커버린 중국을 미국이 혼자 감당하기에 벅차서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4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은 우크라이나를 도우면 러시아를 금방 패퇴시키고 러시아 정권교체까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방 언론들은 푸틴 실각설을 계속 흘렸고 젤렌스키의 항전을 영웅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이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오히려 러시아가 승기를 잡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와 중국, 북한의 전략적 연대가 더욱 공고해졌고 특히 러시아를 중국의 품속에 들어가게 만든 것이다. 중국은 강대국으로서 필수요건인 에너지, 식량 자급이 안 된다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에너지와 식량을 미 해군이 장악한 해양 수송로를 통해 수입해야 하니 미국이 이를 언제든지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러시아가 육로로 싼값에 에너지, 식량을 공급해 주니 중국으로서는 큰 전략적 이득을 보고 있는데 미국이 우크라이나전을 통해 이를 중국에 그냥 떠안겨준 셈이다.
지금 이란전도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의 세력 약화를 겨냥하여 시작했다는 평가들도 있는데 이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란이 항복하고 친미 국가가 되면 이런 평가가 성립될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원가 상승 압박에 러시아 원유 제재를 풀어줌으로써 러시아 경제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그리고 중국 선박은 호르무즈 해협을 무사통과할 수 있어 서방국가들의 경제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 이란전이 길어질수록 미국과 서방국들은 불리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더 유리해지는 판을 미국이 먼저 깔아주고 있다. 특히 이란이 비대칭 전략의 일환으로 여태까지 주로 달러로 거래가 되던 원유를 앞으로 위안화로 결제하도록 하는 페트로 위안화 체제를 수입국들에 강요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패권체제 유지에 긴요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손상시킬 수 있는 위협적 조치이다.
미국은 이란이 호루무즈 해협을 봉쇄하자 이를 풀기 위해 동맹국들에 군함 파견을 요청하였으나 이에 화답하는 국가가 없자 동맹국들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면서 동맹의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이득으로 돌아갈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이란에서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국이 이미 10년 전에 자국의 새로운 대전략으로 내세웠던 ‘아시아로 회귀(Pivot to Asia)’ 기조를 무너뜨리게 된다. 아시아에 집중되었던 미국의 군사력이 거꾸로 유럽과 중동으로 재배치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트럼프의 대중국 유화정책과 함께 중국에 대한 견제구도를 상당히 약화시킬 터이니 중국은 속으로 웃고 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되짚어 보면 미국은 계속해서 잘못된 정세 판단으로 전 세계 전략 구도를 미국은 물론 서방 국가에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을 보면 소진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몸을 다스려야 하는 시기에 계속 헛된 체력 소모로 자기 수명을 단축하는 노인을 보는 듯하여 안타깝다. 섣부른 전쟁 개전은 물론이고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대로 된 전략 부재가 중국의 부상을 촉진시켰다는 점에서도 미국 대전략의 실패는 더 심화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같은 현실주의 학자들은 이런 미국의 대전략 실패를 개탄하며 이는 아래와 비슷한 미국의 ‘거대한 착각(Great Delusion)’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첫째,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후 로마제국 이래 처음으로 전 세계를 자국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 미국의 압도적 국력은 미국의 독특한 건국이념과 결합되면서 ‘미국 예외주의’라는 현상을 만들어 내었다. 미국은 건국 당시 신에 의해 세워진 특별한 국가, 즉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라고 스스로 자부했다. 어두운 유럽대륙을 떠나 새로운 자유와 민주의 나라를 세운 미국은 세계를 미국의 예를 따라 변화시켜야 한다는 ‘명백한 사명(manifest destiny)’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 국제문제를 해결할 때 다른 나라들의 의견을 고려하기보다는 미국 독자적 판단에 따라 결정하고 다른 나라들이 따라 주기를 기대하는 일방주의를 보인다. 200년 좀 넘는 짧은 역사를 가지 나라가 이런 사명의식을 가지고 독단적인 결정을 할 경우 오판을 할 가능성이 높다. 즉 사명의식에 입각한 일방주의 착각인 것이다.
둘째, 미국의 민주당 진보주의자들은 물론 공화당 네오콘까지 미국이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확산시켜야 하는 숭고한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또 실천에 옮기려 했다. 어떤 나라의 정권타도를 위해 민중봉기를 유발하기도 하고 내전에 개입하기도 하며 심지어 미군을 보내어 그 나라 정치체제를 변경하려 했다. 현지의 정치·사회 상황·종교 등은 고려하지 않고 민주주의가 어디서나 쉽게 이식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무리한 대외정책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가치 기반 자유주의(value based liberalism)’는 미국 대외정책을 과도하게 확장하여 큰 비용이 들도록 만들었다.
셋째, 미국은 공산권 몰락 이후는 물론 9·11 테러 이후에도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국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심한 낙관주의가 미국 조야에 팽배했다. 미국 주도로 역사 발전의 종착점에 도달하였고 미국의 지위는 계속될 것이라는 지나친 자신감이 미국의 대외 개입을 더 쉽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경제는 사실상 공산권 몰락 이전에 이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미국은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군사 개입 등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여 미국의 경제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었다. 이 같은 현상은 미국 사회에 퍼져 있는 ‘낙관적 과잉 자신감(euphoric over-confidence)에 기인하였다.
넷째, 중국에 대해 심각한 오판을 한 점이다. 미국은 중국이 영원히 미국의 조력자, 즉 미국의 생산기지이자 경제 파트너로 남아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중국이 WTO에 가입하고 미국 등 전 세계 국가의 자유무역 제도를 이용하여 무제한 수출을 할 수 있게 허용해 주었다. 테러와 전쟁을 할 동안 중국이 미국을 추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20년 전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 중국 공산당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될 것으로 중국 전문가들마저 믿었다. 중국을 과소평가하고 심지어 ’중국 애호가(panda hugger)’들이 워싱턴 조야를 장악하는 바람에 대중국 전략은 더 실패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다섯째, 역사에서 패권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패권 지속기가 보통 100년 정도인데 미국도 이미 100년을 넘어서고 있으니 패권이 쇠퇴할 시기에 들어섰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국제사회는 이미 다극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큰 흐름을 인정하지 않은 미국은 여전히 일방주의적 해외 개입을 일삼아 왔고 또 실패를 거듭하였다. 새로운 시대를 대비한 맞춤형 국제체제를 준비하는 대신 과거의 관성에 따른 세계 운영을 지속해 온 것이다. 이런 시대착오적 국가 대전략의 부재는 지금 이란 전쟁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란 전쟁을 시작한 후 유럽 국가들이 지지하지 않는다고 NATO 탈퇴라는 엄포를 놓고 있다. 행동은 마치 일극체제 세상인 것처럼 하면서 결국 다극체제를 부추기는 모순을 보인다.
이런 대전략의 실패와 부재를 거듭하게 되면 미국의 쇠락을 재촉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이란전에서 미국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면 실망하고 분노한 미국은 일방주의적 개입정책에서 갑자기 전통적 고립주의 정책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세계는 더욱 혼란의 시기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지금은 모든 나라들이 각자도생의 시대를 대비해야 할 엄중한 때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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