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이란전쟁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와 원유대금 동결사건의 허와 실 — 가깝고도 먼 한·이란 관계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는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압축한 상징이다. 오늘의 테헤란로는 금융과 기술, 자본과 속도의 거리이지만, 그 이름의 기원은 산업화 시기에 한국이 중동과 맺었던 절실한 생존의 외교에 닿아 있다. 1962년 한국과 이란은 수교했고, 1977년에는 서울과 테헤란이 서로의 도시 이름을 딴 길을 만들며 우호를 상징했다. 


삼릉로가 테헤란로로 바뀐 것은 서울·테헤란 간 교류의 상징적 조치였고, 테헤란에는 서울로와 뒤이어 서울공원까지 조성됐다. 외교는 늘 추상적 가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시절 한국에게 이란은 먼 나라가 아니라 석유와 건설, 시장과 외화가 이어지는 현실의 파트너였다. 
그래픽챗지피티
[그래픽=챗지피티]


한·이란 관계의 첫 번째 얼굴은 분명 우호와 실리의 역사였다.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전으로 중동이 흔들리던 1980년대에도 한국 기업들은 이란 시장에서 기회를 넓혀 갔다. 주이란 한국대사관의 양국관계 정리에는, 혁명 이후 한동안 외교관계가 대리대사급으로 격하되었음에도 전쟁 기간 유럽 기업들이 빠져나간 틈을 타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확대되었고, 종전 뒤에는 전후 복구와 경제개발 과정에서 건설·통상 협력이 커졌다고 적혀 있다.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이란은 단지 산유국이 아니라, 위험한 현장에서도 한국 건설업체들이 발을 빼지 않았던 무대였고, 그만큼 인간적 신뢰와 사업적 실적이 함께 쌓인 공간이었다. 외교 문서가 ‘우호’를 말할 때 그것은 공허한 수사가 아니라, 실제 공사현장과 계약서, 항만과 정유시설, 땀과 대금이 만들어 낸 관계의 축적이었다. 


경제적 밀착은 한때 수치로도 뚜렷했다. 2001년 한국과 이란의 교역액은 296억달러에 달했고, 당시 이란은 한국의 3대 원유 공급국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제재가 완화된 2017년 1분기에는 이란이 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2위 원유 공급국에 오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란은 한국의 에너지 지도에서 결코 주변부가 아니었다. “사우디 다음”이라는 표현이 시기마다 조금씩 달랐더라도, 이란이 한국 에너지 안보의 핵심 공급선 중 하나였다는 큰 흐름에는 변함이 없다. 오늘 우리가 테헤란로를 무심히 지날 수 있는 것도, 한때 한국 경제가 중동의 오일머니와 건설 붐을 통해 산업화의 속도를 높였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관계의 두 번째 얼굴은 냉혹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강화되면서 한국의 대이란 교역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미국의 제재 유예가 끝난 뒤 한국이 2019년 5월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6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대이란 교역이 사실상 멈추었으며 이란산 원유 수입도 2019년 5월 이후 완전히 중단됐다고 정리했다. 2020년 외교부 영문 자료에 따르면 당시 양국 교역은 한국의 대이란 수출 1억8천만달러, 수입 860만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 테헤란로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았지만, 실제의 한·이란 경제관계는 이미 깊은 단절의 국면으로 들어가 있었던 셈이다. 


이 단절의 상징이 바로 ‘원유대금 동결’ 사태였다. 한국 내 은행에 묶여 있던 이란 자금은 일반적으로 약 70억달러로 불렸으나, 2023년 한국 외교부와 로이터 통신 보도에서 확인된 실제 이전 규모는 60억달러였다. 이 자금은 한국이 임의로 빼앗은 돈이라기보다 미국의 금융제재 체계 아래에서 한국 금융기관이 움직일 수 없게 된 돈이었다. 다시 말해 법적 형식은 ‘차압’이 아니라 ‘제재에 따른 동결’에 가까웠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법률 용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란은 이를 자국 자산의 부당한 봉쇄로 인식했고, 한국은 동맹과 국제금융질서 속에서 자의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로 보았다. 그 사이에 경제적 신뢰는 무너졌고, 양국 관계는 급속히 정치·안보의 그늘로 빨려 들어갔다. 2023년 그 자금이 카타르 계좌로 이전되었지만, 돈의 이전이 곧 신뢰의 복원까지 뜻하지는 않았다. 


결정적 장면은 2021년 1월의 한국케미호 억류 사건이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한국 국적 화학운반선 한국케미호와 선원 20명을 억류했고, 이 사건은 동결자금 문제와 맞물려 국제적 파장을 낳았다. 이란은 환경오염 대응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당시 국제사회와 한국 여론이 이 사건을 사실상 압박 수단으로 읽은 이유는 분명했다. 19명의 선원이 한 달가량 뒤 풀려나고, 선박과 선장이 95일 만에 석방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건의 정치성을 웅변한다. 이 사태는 한국 사회에 오래 남아 있던 ‘의리를 중시하던 이란’의 기억을 거칠게 흔들었다. 전쟁 통에도 공사를 맡겼던 나라와, 제재 국면에서 선박을 억류한 나라가 과연 같은 얼굴인가 하는 질문이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란을 단순한 배신의 나라로만 규정하는 것은 외교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국가의 행동에는 언제나 체제와 기억, 공포와 계산이 겹쳐 있다. 이란은 1979년 혁명 이후 독특한 신정 체제를 유지해 왔고, 최고지도자와 성직자 네트워크, 혁명수비대, 선출 권력이 중층적으로 얽힌 구조를 만들었다. 이 체제는 외부 압박을 받을수록 더 폐쇄적으로 응답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한국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이란이 “원래 의리 있는 나라였는데 갑자기 돌변했다”는 단선적 정의가 아니다. 오히려 이란이라는 국가는 우호와 실리의 언어로도 접근할 수 있지만, 체제 보존의 논리가 작동하는 순간에는 매우 거칠고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이중성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한쪽 얼굴만 보고 상대하면 현실을 오독한다.


오늘 이란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다시 한 번 이 오래된 질문을 한국 앞에 내놓고 있다.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2026년 4월 현재 한국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중동 전쟁의 확산 속에서 대체 항로와 대체 공급선을 찾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알제리 등과 협의하고 있고, 정부 비축유 활용과 홍해 항로 전환, 재생에너지 확대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역시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과 만나 원유, LNG, 나프타, 요소 공급과 한국 선박 안전 문제를 협의했다. 이것은 이란 문제가 더 이상 과거의 외교 분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한국 경제의 물가·환율·정유·해운·무역금융을 흔드는 현실의 변수라는 뜻이다. 
이호현 기후에너지환경부 2차관이 지난달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에너지절약 거리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호현 기후에너지환경부 2차관이 지난달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에너지절약 거리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바로 여기서 한·이란 관계의 미래를 읽는 세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첫째, 한국은 감정의 외교가 아니라 구조의 외교를 해야 한다. 이란과의 옛 우호를 낭만화해서도 안 되지만, 2021년의 억류 사건만으로 이란 전체를 영구적 적대국처럼 보는 것도 현명하지 않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자 개방형 통상국가이며, 국제 제재 질서를 무시할 수도 없다. 동시에 중동이라는 거대한 에너지·건설·플랜트 시장에서 이란을 지워 버릴 수도 없다. 한국 외교의 과제는 친이란도 반이란도 아니라, 제재 질서와 국익 사이에서 움직일 수 있는 좁지만 분명한 실용의 공간을 최대한 넓히는 데 있다.

둘째, 미래의 한·이란 관계는 과거처럼 원유 수입과 건설 수주만으로 복원되기 어렵다. 이란이 다시 국제금융망과 정상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 대규모 교역의 회복은 구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은 장기적으로 이란을 “지금 당장 거래를 크게 늘릴 시장”이 아니라 “정세 변화 시 재진입을 준비해야 할 전략시장”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은 무리하게 앞으로 뛰어들 시점이 아니라, 인도적 교류와 민간 차원의 신뢰 유지, 문화·학술·보건 분야의 저강도 접점을 남겨 두는 시점이다. 외교는 문을 닫는 기술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열릴 문을 망가뜨리지 않는 기술이기도 하다.



셋째, 한국은 이란을 통해 더 큰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특정 국가 하나의 사례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외교안보가 분리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한때 이란산 원유와 콘덴세이트에 크게 의존했고, 지금도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정성에 취약하다.


국회예산정책처와 산업통상부 자료들을 보면 한국 원유 수입에서 중동 비중은 여전히 높고, 2026년 현재에도 호르무즈를 지나는 공급망 충격은 한국 경제 전체의 위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이란 관계의 미래 분석은 단순한 양자관계 분석을 넘어, 한국이 얼마나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비축을 고도화하며 외교적 완충지대를 넓힐 수 있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한때 테헤란은 한국에게 기회의 도시였고, 테헤란로는 그 기회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2020년대의 이란은 한국에게 우정의 추억만으로 상대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 이름을 지워 버린다고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테헤란로는 이제 한국 외교의 숙제를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과거의 우호를 기억하되 현재의 위험을 직시하고, 현재의 충돌을 경계하되 미래의 가능성까지 닫지 않는 것, 그것이 한·이란 관계를 바라보는 성숙한 태도일 것이다.


결국 한·이란 관계의 허와 실은 이 한 문장에 모인다. 이란은 한국이 한때 절실히 필요로 했던 친구였고, 지금은 누구보다 냉정하게 다뤄야 할 위험한 파트너다. 친구였다는 기억만 믿어도 안 되고,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영원히 적으로 돌려세워도 안 된다. 


국익의 외교는 감정의 연장선이 아니라 기억과 경계, 실용과 원칙을 함께 세우는 일이다. 서울의 테헤란로가 그 사실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그것은 지나간 우호의 기념비이면서, 앞으로의 외교가 얼마나 정교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살아 있는 경고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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