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두 개의 축이 있다. 하나는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는 산업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중동을 비롯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다. 전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변화이고, 후자는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변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 둘이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랫폼 경쟁과 지정학 리스크는 서로 맞물리며 산업의 판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많은 이들은 여전히 산업 경쟁을 ‘제품’ 중심으로 이해한다. 더 좋은 차를 만들고, 더 빠른 반도체를 생산하고, 더 저렴한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글로벌 시장의 규칙은 바뀌고 있다. 제품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데이터와 서비스, 그리고 고객 접점을 장악한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다. 아마존은 단순한 유통회사가 아니다. 물류와 클라우드, 데이터 플랫폼을 결합해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했다. 애플 역시 하드웨어 기업을 넘어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했다. 아이폰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앱스토어, 결제, 콘텐츠로 이어지는 플랫폼의 입구다. 이들은 제품을 팔지만, 실제로는 고객의 시간을 지배하고 데이터를 축적한다.
중국의 사례도 다르지 않다. 텐센트와 알리바바는 각각 금융, 콘텐츠, 커머스를 묶어 거대한 플랫폼 생태계를 만들었다. 이들은 특정 산업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산업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과거에는 은행은 은행, 유통은 유통이었다면, 이제는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모든 것이 연결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산업은 어디에 서 있는가. 일부 기업은 빠르게 대응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과도기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조 경쟁력은 여전히 강하지만, 플랫폼 경쟁력에서는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지적도 있다.
플랫폼 전환의 핵심은 단순한 디지털화가 아니다.
데이터, 고객 접점, 서비스 연결을 중심으로 산업 구조 자체가 재편되는 과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 변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외부 환경이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동 지역의 긴장은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가격을 흔들고, 공급망을 자극하며, 기업의 비용 구조를 직접적으로 압박한다. 특히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난다.
유럽의 경험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독일 제조업은 큰 충격을 받았다. 값싼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던 산업 구조가 한순간에 흔들렸다. 독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에너지 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성장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맞았다.
일본 역시 비슷한 교훈을 남긴다. 장기간 저성장과 내수 침체 속에서 외부 충격이 반복되자, 경제 전반의 회복력이 점점 약화됐다. 일본 기업들은 기술력에서는 경쟁력을 유지했지만, 플랫폼 전환과 내수 기반 약화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겪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던진다.
외부 충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 구조다.
지금 한국 경제가 마주한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동 리스크가 에너지 가격을 자극하고,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수 역시 충분한 완충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금리 환경, 가계부채 부담, 투자 위축 등이 맞물리며 소비와 투자가 동시에 둔화되는 흐름이 관찰된다.
결국 지금의 문제는 단순한 경기 하락이 아니다.
구조 변화와 외부 충격이 동시에 작용하는 ‘복합위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과 기업 전략은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문제를 단기 가격 대응으로만 볼 수 없고, 플랫폼 전환을 단순한 IT 투자로 해결할 수도 없다. 각각의 문제는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전략은 단순히 비용 문제를 넘어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공급망 안정성, 에너지 전환, 기술 투자 등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플랫폼 전환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터 활용 환경, 산업 간 협력, 서비스 생태계 구축이 동시에 이뤄져야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하다.
여기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만약 현재 상황을 단순한 경기 사이클로 본다면 대응은 단기 처방에 머물 것이다. 그러나 이를 구조 변화의 신호로 본다면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산업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어떤 영역에 자원을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해진다.
플랫폼 재편과 중동 리스크, 내수 불안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어떻게 결합되는지에 따라 산업의 경쟁력이 달라진다. 속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결국 경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진다. 제품이 아니라 구조, 기업이 아니라 생태계, 단기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 지배력이 승부를 가른다.
지금 한국 산업에 필요한 것은 빠른 대응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읽고, 그에 맞는 구조를 설계하는 능력이다.
복합위기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준비된 경제는 충격을 흡수하고, 준비되지 않은 경제는 그 충격에 흔들린다. 지금은 그 차이가 만들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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