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완도 화재 순직까지…국가는 왜 늘 '사후 대응'만 하는가

지난해 6월 광복 80주년을 맞아 아주경제가 마련한 보훈 신춘문예는 ‘기억’의 의미를 다시 묻는 자리였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의 희생을 되새기며, 우리가 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기억은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늘의 생명을 지키는 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12일 전남 완도에서 발생한 화재로 두 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구조를 마친 뒤 잔불 정리에 들어간 지 불과 10분 만에 유증기 폭발이 발생했다. 현장은 순식간에 통제 불능 상태로 바뀌었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들어갔던 이들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불운이나 개인의 판단 문제로 보기 어렵다. 유증기가 존재할 수 있는 작업 환경에서 토치를 사용한 점, 그리고 그 위험이 충분히 통제되지 못한 점은 ‘예측 가능한 위험이 관리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문제의 핵심은 현장의 대응이 아니라 그 이전 단계, 위험을 차단하고 통제해야 할 시스템의 작동 여부에 있다.
 
12일 오전 전남 완도군 군외면 수산물 냉동창고에서 불이 나 소방관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날 화재 현장에서 급속히 확산한 불길 탓에 소방관 2명44세·30세이 순직했다 사진전남소방본부
12일 오전 전남 완도군 군외면 수산물 냉동창고에서 불이 나 소방관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날 화재 현장에서 급속히 확산한 불길 탓에 소방관 2명(44세·30세)이 순직했다. [사진=전남소방본부]

 
우리 사회는 이미 다양한 안전 규정과 매뉴얼을 갖추고 있다. 위험물 관리 기준, 작업 공정 통제, 현장 진입 절차, 안전 교육까지 제도는 존재한다. 그럼에도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제도가 ‘있다’는 것과 ‘작동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인력 부족으로 인해 충분한 통제와 점검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작업 효율을 우선시하는 관행이 안전 기준을 압도하기도 한다. 위험을 인지하고도 이를 즉각 중단할 권한과 문화가 부족한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제도를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운영 체계와 현장 문화의 문제다.
 
 
사고 이후의 대응은 빠르고 체계적이다. 특별승진과 훈장 추서, 현충원 안장, 유가족 지원까지 국가의 예우는 신속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이러한 대응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왜 사고는 반복되는가.
 
 
이제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왜 이런 사고가 또 발생했는가”가 아니라 “왜 이 사고를 막지 못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수사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위치를 바꾸는 일이다. 사고를 개인의 판단이나 현장의 변수로 돌리는 한, 구조적 개선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변화다.
 
첫째, 위험 작업에 대한 사전 통제 권한을 현장에 명확히 부여하고, 이를 행사했을 때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한다. 둘째, 위험물 취급과 관련된 공정은 별도의 승인 절차와 이중 점검 체계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소방 등 대응 인력에 대한 정보 공유 체계를 강화해, 현장 진입 이전에 위험 요인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사고 이후의 처벌 중심 접근을 넘어, 예방 중심의 관리 시스템을 평가하고 책임을 묻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거창한 새로운 제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기준과 원칙을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다. 안전은 선언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보훈은 희생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더 이상의 희생을 만들지 않는 데 있어야 한다. 과거를 기리는 사회가 현재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 기억은 완성되지 못한 것이다.
완도의 비극은 또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반드시 바꿔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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