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P 데스크 칼럼] 걸프 리스크 위에 겹친 노조 변수… 삼성은 '전통의 한계', 현대차는 '미래의 충돌'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17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통행 제한의 일시 해제를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같은 날 미·이란 종전협상이 이번 주말 재개되며 1~2일 안에 타결될 것이라 내다봤다. 두 달여를 짓눌러온 걸프만 리스크가 4월 안에 걷힐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그러나 국내 산업현장에 평온한 5월이 찾아올 것이라 낙관하기는 이르다. 파업의 전운은 올해도 걷히지 않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길어지며 에너지와 물류의 불확실성은 커졌고, 그 충격은 한국 기업들의 비용 구조를 직접 압박했다. 그러나 2026년의 현실은 대외 리스크 하나로 설명하기에 너무 복잡하다. 외부 충격 위에 내부 구조 변화가 겹치며, 경영의 난이도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 

그 중심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서 있다. 한국 수출의 두 축을 떠받쳐온 이들은 서로 다른 지점에 서 있지만, 공통의 이중 압박에 놓여 있다. 하나는 지정학과 공급망 리스크, 다른 하나는 노사 관계의 구조적 전환이다. 수익성이 흔들릴수록 노사 갈등은 더 예민해지고, 갈등이 커질수록 대응 여지는 더 좁아진다. 

삼성전자가 마주한 것은 '노조 리스크'라는 말로 단순화하기 어렵다. 보다 정확히는, 무노조 전통이 남긴 구조적 공백이다. 

오랜 기간 유지된 무노조 경영은 강력한 실행력과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노사 갈등을 흡수하고 조정하는 내부 메커니즘이 자랄 기회는 차단됐다. 지금 드러나는 것은 그 신뢰의 공백이다. 

반도체 팹은 공정이 멈추는 순간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다. 생산 차질은 단기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장기 고객과 쌓아온 신뢰까지 허물 수 있다. 이런 산업에서 노사 관계는 사후에 수습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전에 설계해야 할 핵심 변수다. 

삼성전자에 필요한 것은 협상 테이블의 카드가 아니다.

분기 단위 성과 연동 보상, 사업부 간 실적의 투명한 공유, 파업 이전 단계에서 자동으로 작동하는 협의 구조—노사 관계의 시스템화다.

지금의 갈등은 노조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노조와의 공존을 전제로 한 경영 체계를 갖추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노조가 일회성 보상보다 상한선 철폐를 요구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전혀 다른 종류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노사 협상 자체에는 익숙하다. 그러나 지금의 협상은 과거와 성격이 다르다. 임금과 성과급을 둘러싼 전통적 교섭을 넘어, 미래 기술이 노사 관계의 틀 자체를 흔드는 단계로 들어섰다.   

노조가 요구하는 '완전 월급제'는 단순한 임금 체계 개편이 아니다. 로봇과 자동화로 노동시간이 줄어들 경우 소득도 함께 줄어들 수 있다는 불안이 반영된 선제적 방어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 자동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경쟁이 가속되는 환경에서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시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로봇이 인력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식의 설득은 이 구조 앞에서 공허하다. 기술 변화로 달라질 일자리의 형태와 규모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향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이 문제는 기존의 밀고 당기기로 풀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전환을 전제로 한 새로운 합의 구조다. 자동화로 절감되는 비용의 일부를 고용 안정 재원으로 적립하고, 기존 인력을 로봇 운영·유지 직무로 전환하며,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득 공백을 일정 기간 보전하는 방식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기술 도입을 둘러싼 갈등을 '저지'의 문제에서 '분담'의 문제로 바꾸는 접근이다. 

미국 관세와 글로벌 수요 둔화는 선택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비용 증가와 판매 둔화의 이중 압박 속에서 인건비 부담까지 확대된다면, 투자 여력 자체가 무너진다. 지금의 노사 갈등은 단순한 분배 싸움이 아니다. 줄어들 수 있는 파이를 놓고, 미래의 불확실성까지 선반영하려는 충돌에 가깝다. 

노사 갈등의 강도는 이해관계의 크기보다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더 크게 증폭된다. 기업이 중장기 인력 계획, 자동화 속도, 해외 생산 전략을 충분히 공유하지 않을수록, 노조는 가장 보수적인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요구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불신이 협상을 경직시키고, 경직된 협상이 다시 불신을 키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투명성과 구조다. 성과와 비용을 사전에 합의된 기준에 따라 나누고, 기술 변화의 이익과 부담을 함께 관리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서로 다른 문제를 안고 있지만,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선다. 

노사 관계를 과거의 방식으로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산업 구조 변화에 맞게 재설계할 것인가.

삼성전자는 무노조 전통을 넘어 노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단계에 있고, 현대차·기아는 미래 기술을 노사 협상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단계에 있다. 

걸프 리스크는 시간이 지나면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노사 관계의 구조적 변화는 되돌릴 수 없다. 지금의 선택은 향후 수년간 기업 경쟁력과 노동시장의 구조를 함께 규정할 것이다.

2026년은 위기의 해라기보다 전환의 해다.

삼성은 전통의 한계를 넘는 시험대에, 현대차는 미래 기술과의 충돌을 조율하는 시험대에 서 있다.

갈등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그 갈등을 어떤 구조로 관리하느냐가 문제다.

 

1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과반노조 공식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417 연합뉴스
17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과반노조 공식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4.17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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