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공식 선언은 없지만 시장은 이미 평화의 가격을 매기기 시작했다. 지난달 31일 장중 5,042까지 곤두박질쳤던 코스피가 불과 13거래일 만에 22.5%를 수직 상승해 6,191에 안착했다.
두바이유는 배럴당 120달러를 위협하던 공포에서 벗어나 90달러 아래로 내려앉았고, 원·달러 환율도 1,530원대 고점에서 1,480원대로 되돌아왔다.
국고채 10년물 금리 역시 3월 말 3.879%에서 3.717%로 내려오며 채권 시장도 한숨을 돌리는 모습이다. 주식·환율·유가·채권이 한목소리로 안정을 연주하는 이 장면은 분명 고무적이다. 그러나 지금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환호가 아니라 냉정한 검증이다.
숫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지수 상승이 얼마나 좁은 기반 위에 서 있는지 드러난다. 코스피 상장 929개 종목 가운데 전쟁 이전 주가를 회복한 것은 352개, 전체의 37.9%에 불과하다. 나머지 576개 종목, 즉 62%는 여전히 마이너스 지대를 헤매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이 7,000을 넘어 7,500까지 바라보는 데는 근거가 없지 않다. KB증권과 현대차증권, JP모건은 코스피 상단을 7,500으로, 하나증권은 7,900을, 노무라증권은 8,000까지 열어두고 있다. 상승의 주축은 이번에도 반도체다.
미래에셋·하나증권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30만 원으로, KB증권은 36만 원까지 제시했다. SK하이닉스 역시 한국투자증권이 기존 150만 원에서 180만 원으로 상향조정하는 등 증권가의 눈높이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HBM 수요 급증이 맞물리며 역대급 실적을 예고하는 반도체 업종의 논리는 탄탄하다.
오는 23일로 예정된 삼성전자 부분 파업은 이 장밋빛 전망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변수다. 실적 시즌 한복판에 노사 갈등이 불거진다면 외국인 수급에 즉각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악재 자체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다.
자금 흐름 역시 신중론을 뒷받침한다. 외국인은 지난주 코스피에서 5조3,607억 원을 순매수하며 화려하게 귀환했다가, 이번주 들어 2조1,930억 원 순매도로 돌아섰다. 3월 한 달간 40조 원이 넘는 역대급 순매도를 감행했던 세력이 단번에 매수로 완전 전환했다고 믿기엔 너무 이르다.
개인도 다르지 않다. 하락장에서 시장을 떠받쳤던 개인 투자자들은 지수가 6,000선을 회복하자 2조5,966억 원을 팔아치우며 태세를 전환했다. 지수를 홀로 지탱하고 있는 것은 3조582억 원을 순매수한 기관이다. 기관의 체력이 다할 때까지 외국인과 개인이 계속 이탈한다면, 2주 만의 1,000포인트 상승은 언제든 되돌림의 대상이 된다.
다음주는 시장의 성적표 주간이다. SK하이닉스와 현대자동차, 주요 금융지주들이 1분기 실적을 줄줄이 발표한다. 실적이 시장 기대를 상회한다면 지수는 전고점 6,347을 넘어 미지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다. 반대로 어닝 쇼크가 나온다면 상승 모멘텀은 단숨에 꺾인다.
지정학적 변수도 주말을 넘기며 명확해질 것이다. 미·이란 협상이 공식 종전으로 이어지고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열린다면 유가는 추가 하락하고 원화는 강세를 이어갈 것이다. 그 경우 국내 증시는 수출 기업들의 원가 부담 완화와 외국인 자금 재유입이라는 두 엔진을 동시에 얻는다.
하지만 협상이 결렬되거나 파업이 본격화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3.7%대에 묶인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이미 전쟁 이전보다 33bp 높은 수준으로, 평화 배당이 아직 채권 시장에서 완전히 소화되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물가 상방 압력도 여전하다.
코스피 7,000 돌파 논리는 유효하다. 그러나 그것은 조건부 유효다. 시장은 항상 정답을 먼저 쓰고 나중에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지금 이 순간은 환호의 시간이 아니라 검증의 시간이다. 다음 주 실적과 협상 결과가, 이 랠리가 착시인지 추세인지를 판가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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