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시작은 정부와 국회가 꺼내든 ‘홀드백(극장 상영 후 IPTV·OTT에 공개하기까지 유예 기간) 6개월 법제화’였다. 극장 종영 후 안방극장에 영화가 풀리기까지 최소 6개월을 강제로 기다리게 해 관객을 극장으로 되돌리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지난 9일 13개 단체가 모인 영화단체연대회의는 이를 ‘홀드백’이 아닌 사실상 ‘블랙아웃’이라 정의하며 법안 철회를 호소했다. 극장에서 내려간 뒤 다음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길목이 6개월이나 봉쇄되는 것은 자본 회수가 생명인 투자 배급사에 강요된 ‘수익 절벽’이자 비현실적인 규제라는 지적이다. 전통적인 극장 수익만으로는 제작비 조달조차 불가능해진 유통 구조의 변화를 간과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문제는 영화계가 그 대안으로 제시한 ‘스크린 집중 제한(20%)’과 ‘장기 상영’ 논리 역시 2026년의 콘텐츠 생태계를 담아내기엔 지나치게 낡았다는 점이다. 영화인들은 스크린 독점을 막으면 영화가 극장에 오래 머물 수 있고 이를 통해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장기 상영의 성공 사례로 꼽는 ‘왕의 남자’는 무려 20년 전 기록이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와 쇼트폼이 일상이 된 지금의 관객들에게 “상영관을 비워둘 테니 천천히 와서 보라”는 식의 아날로그적 요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콘텐츠의 화제성이 불과 일주일이면 소멸하는 초고속 소비 시대에 물리적인 상영 기간만 늘린다고 관객이 기꺼이 지갑을 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천만 영화 ‘국보’가 6개월간 상영된 사례나 유럽의 홀드백 규제 역시 한국과는 토양 자체가 다른 시장 분위기와 막대한 정부 보조금이 전제된 것이다. 트렌드가 주 단위로 변하는 한국 시장에서 과거의 향수에 기댄 규제가 과연 관객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장의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산’ 카드를 꺼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지난 14일 서울 인디그라운드에서 간담회를 열어 “영화 산업에 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하다”며 656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지원책을 발표했다.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에 260억 원, 독립예술영화에 45억 원, 첨단기술 제작 지원에 80억 원 등을 투입해 고사 직전인 생태계에 자금을 수혈하겠다는 취지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발 빠르게 예산을 확보해 소통에 나선 점은 고무적이지만 이는 본질적인 치료가 아닌 ‘영양제 주사’에 가깝다.
지금 한국 영화에 필요한 것은 20년 전 흥행 공식에 기반한 물리적 기간 강제나 스크린 제한이 아니다. 배급사가 우려하는 ‘수익 공백’을 보완하면서도 극장이 확보해야 할 ‘홀드백의 가치’를 2026년의 속도에 맞춰 재정의하는 정교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정부는 추경 예산이라는 가시적인 성과 뒤로 숨지 말고 변화된 관객 패턴을 직시하며 실질적인 유통 모델을 주도해야 한다. 주무 부처가 플랫폼 뒤에 숨어 시장 원리에만 책임을 돌리는 사이 한국 영화의 자생력은 한계치에 도달했다. 656억 원의 예산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으려면 이제는 돈을 쓰는 법만큼이나 시장의 질서를 시대에 맞게 바로잡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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