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쿠팡의 동일인 소송, 기업 책임까지 부정해선 안 된다

쿠팡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총수) 지정 변경에 반발해 행정소송에 나섰다. 공정위가 기존의 법인 동일인을 자연인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으로 바꾸자 이를 취소해달라며 법적 대응에 들어간 것이다. 동일인 지정 제도 도입 이후 기업이 지정 자체를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표면적으로는 행정 처분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한국 시장에서 성장한 초대형 플랫폼 기업이 자신에게 요구되는 책임까지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남긴다. 지금 논란의 본질은 단순한 법리 공방이 아니다. 한국 사회 안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이 과연 어떤 책임 의식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다.
 
쿠팡은 국내 유통과 물류 시장을 사실상 바꿔놓은 기업이다. 전국 단위 물류망과 새벽배송 체계, 온라인 소비 구조 변화까지 산업 지형 자체를 재편했다. 이용자 수와 거래 규모, 시장 영향력 어느 하나 가볍지 않다. 그만큼 공적 책임도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기업집단 규제는 단순한 압박 수단이 아니라 시장 지배력에 상응하는 투명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런데 쿠팡은 이번 소송에서 “총수 없는 기업”이라는 논리를 사실상 다시 꺼내 들고 있다. 미국 상장사 구조이고, 국내 계열사 지분 관계가 다르며, 친족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시장과 소비자가 바라보는 쿠팡의 실질적 지배 구조는 다르다. 쿠팡의 창업자이자 그룹 전체의 방향을 결정해온 인물은 결국 김범석 의장이다. 투자자들도, 시장도, 소비자도 그렇게 인식해왔다.
 
성장과 성과는 창업자의 리더십으로 설명하면서, 규제와 책임의 단계에서는 “총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태도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기업 지배력은 인정받고 싶고, 그에 따르는 공적 책임은 최소화하고 싶다는 인상만 남길 뿐이다.
 
더욱이 쿠팡은 이미 2021년 공정위의 예외적 판단으로 법인을 동일인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당시에도 플랫폼 기업의 특수성과 해외 상장 구조가 고려됐다. 다시 말해 쿠팡은 제도의 유연한 적용 혜택을 한 차례 받은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판단이 바뀌자 곧바로 행정소송으로 맞서는 모습이다. 규제 논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법적 충돌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공정위 판단이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플랫폼 기업 시대에 기존 재벌 규제 체계가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 논쟁의 여지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 논의는 제도 개선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풀 문제다. 국내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 “우리는 기존 기준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순간 논의의 균형은 무너진다.
 
특히 쿠팡은 최근 몇 년 동안 노동, 물류, 소비자 보호 문제를 둘러싸고도 끊임없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배송 노동자 과로 문제와 입점업체 갈등, 가격 정책 논란 등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 비판 역시 “플랫폼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동일인 지정 문제까지 전면 소송전으로 끌고 가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불신만 더 키울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일수록 법의 빈틈을 찾는 능력보다 사회적 신뢰를 지키는 태도가 중요하다. 글로벌 기업일수록 규제를 피하는 전략보다 시장과 제도의 신뢰 속에서 성장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국 상장사라는 이유로 한국의 공정거래 질서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 한다면 결국 소비자와 시장의 신뢰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쿠팡은 더 이상 “혁신 스타트업”의 위치에 있지 않다. 한국 유통과 플랫폼 산업을 좌우하는 대표 기업이다. 규모가 커진 만큼 책임도 무거워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총수 지정 회피 논리가 아니라, 대기업으로서 어떤 책임과 기준을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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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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