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낡은 칼만 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사진연합뉴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사진=연합뉴스]

"비만 치료제 어떤 제품 쓰실 건가요?"

비만 치료제 시장을 취재하며 제품 간 감량률과 부작용, 가격을 수차례 비교해왔다. 접근성과 제형 편의성 차이도 기사로 정리했다. 그러나 막상 하나를 지목해 달라는 질문에는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다. 두 제품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라기보다 이미 기준에 가깝다. 대규모 임상 데이터를 통해 효과를 입증했고, 보험 적용과 유통망 확대를 거치며 처방 경험을 축적했다. 데이터가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다시 처방을 늘리는 구조다.

시장 지형도도 빠르게 바뀌었다. 세계 의약품 매출 순위가 3년 만에 뒤집히며, 항암제 '키트루다'를 제치고 마운자로가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비만 치료제가 단순 신흥 시장이 아니라 제약 산업의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파장은 주변 산업으로 번졌다. 건강식품·건강기능식품과 뷰티업계에서는 체감 온도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전처럼 '다이어트에 도움'이라는 메시지로는 소비자를 설득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주력으로 내세웠던 에스테틱, 일부 의원에서는 "감량은 약이 맡고, 우리는 체형 교정과 관리에 집중한다"는 말도 나온다. 비만 치료제가 시장의 역할 분담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처럼 기준이 굳어진 시장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잇따라 진입하고 있다. 올 하반기 한미약품의 '에페글레나타이드'가 출시되면 국내 첫 비만치료제가 된다. HK이노엔이 중국 사이윈드 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도입한 '에크노글루타이드'는 연내 임상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JW중외제약이 중국으로부터 도입한 '보팡글루타이드' 역시 하반기 국내 임상 3상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임상 1상 단계 혹은 임상시험승인계획서(IND) 승인 이전의 제품들이 포진해있다.

진입이 이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시장 규모와 성장 속도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레드오션임을 알면서도 발을 빼기 어려운 구조다.

국내 기업들도 나름의 해법이 있다. 부작용을 줄이거나, 장기지속형·경구용·패치형 등 제형을 다양화하는 방식이다. 근손실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기전도 내놨다. 그러나 후발주자라는 구조적 한계는 분명하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이미 수천 명 규모의 장기 임상 데이터를 확보했고, 글로벌 규제기관 승인과 처방 경험까지 쌓아 올린 상태다.

최근에는 경구용 치료제까지 등장하며 경쟁 구도는 한층 복잡해졌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필'은 올해부터 미국 전역 7만여 곳의 약국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미국 출시 3주 차 일라이 릴리의 경구용 비만치료제 '파운다요' 처방 건수는 약 5600건을 기록했다. 

여기에 가격 인하 경쟁과 세마글루타이드 특허 만료 이후의 저가 복제약 변수까지 더해지고 있다. 시장의 문턱은 갈수록 더 높아지는 모습이다.

후발주자의 어려움은 현장에서 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시장 기준이 굳어진 상황에서 국내 제품은 동남아 등 신흥 시장에서 먼저 기회를 찾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고 했다. 정면 승부의 부담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국산 신약이 성공하려면 가격 경쟁력으로 빅파마와 맞서야 한다는 분석도 이제는 힘이 빠진 분위기다. 선점자가 축적한 임상 데이터와 처방 경험, 유통망까지 감안하면 단순한 가격 전략만으로는 시장을 흔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준이 굳어진 시장에서 후발주자가 내세울 수 있는 경쟁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차별화를 위한 시도는 이어지고 있지만, 그 성과가 국내 시장에만 머물지 않고 글로벌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미 형성된 전장에서 낡은 칼만 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힘들게 만들어낸 신약이 제한된 시장 안에 머무르지 않고, 환자가 먼저 선택하는 치료제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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