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집 낸 하림, 비건 레스토랑 연 풀무원…식품업계 '오프라인 진화'

  • 팝업 넘어 오프라인 영토 확장

  • 브랜드 철학·세계관 구축 초점

지난 8일 서울 시청 인근에 문을 연 장인라면 외관 사진김현아 기자
지난 8일 서울 시청 인근에 문을 연 '장인라면' 외관 [사진=김현아 기자]

식품 제조업체들이 공장 밖으로 나오고 있다. 단기 팝업스토어나 한정판 굿즈 행사에 머물렀던 오프라인 마케팅이 상시 운영되는 브랜드 공간으로 진화하는 흐름이다. 단순히 제품을 홍보하거나 일회성 화제를 모으는 수준을 넘어, 자사의 식문화와 브랜드 철학을 소비자가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하도록 설계된 공간들이 서울 핵심 상권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하림산업은 지난 8일 서울 시청 인근에 '장인라면' 분식점을 열었다. 자사 프리미엄 브랜드 더미식의 장인라면과 비빔면, 육즙교자 등을 활용한 메뉴를 판매하는 상시 매장이다. 라면 제조사가 자사 제품을 중심으로 직영 분식 매장을 상시 운영하는 것은 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림산업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완성된 요리 형태의 제품을 직접 맛보며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오뚜기는 논현동의 복합문화공간 '롤리폴리 꼬또'를 통해 자사 제품 기반의 다이닝·카페·베이커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오뚜기 제품을 활용한 이색 메뉴부터 디저트까지 다채롭게 선보이며, 브랜드 히스토리를 담은 전시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오뚜기라는 브랜드를 하나의 문화로 접하도록 설계해 식품기업을 넘어선 식문화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동서식품은 한남동 '맥심플랜트'에서 원두 로스팅 공정과 커피 제조 과정을 직접 공개하며 프리미엄 커피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로스터리 공간에서 커피 생두가 원두로 완성되는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고, 다양한 싱글오리진 커피와 시그니처 음료를 제공한다. 커피 전반에 걸친 전문성과 R&D 역량을 체험형 공간으로 구현해 프리미엄 커피 전문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풀무원은 비건 레스토랑 '플랜튜드'를 통해 식물성 식문화 확산에 집중하고 있다. 플랜튜드에선 식물성 재료만으로 구성된 코스 요리와 단품 메뉴를 제공하지만, 비건 식당임을 대놓고 내세우지 않는다. 비건 음식을 세련되고 맛있는 식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것이 특징이다. 풀무원 관계자는 "플랜튜드는 식물성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은 수익성보다 소비자와의 관계 구축을 우선한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임대료와 운영비를 감안하면 외식 사업 자체의 수익은 크지 않다"면서도 "소비자가 브랜드를 몸으로 기억하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공간들이 서울 한남동·논현동·시청 인근 등 핵심 상권에 위치해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트렌드에 민감한 2030 세대의 유입이 많고 외국인 관광객 접점이 높은 지역을 의도적으로 택한 것이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기존의 올드한 제조기업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면 젊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머무는 공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이 일시적 유행이 아닌 구조적 변화라고 분석한다. 제품의 맛과 품질만으로는 브랜드 차별화가 어려워진 시대에, 소비자의 일상과 취향에 깊숙이 스며드는 방식으로 경쟁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제는 단순히 제품의 맛이나 품질 경쟁력만으로는 확실한 브랜드 차별화를 이루기 어려운 시대"라며 "앞으로 식품업계의 경쟁은 '무엇을 파느냐'가 아니라 '소비자의 일상에 스며들어 어떤 세계관과 경험을 보여주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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