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설 | 기본·원칙·상식] 전직 대통령의 선거 지원, 어디까지가 상식인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보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3일 대구 칠성시장을 찾아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와 동행했고, 25일 충북 옥천의 육영수 여사 생가 방문 일정도 예정돼 있다. 직접적인 선거 연설은 하지 않았지만 선거를 열흘 남짓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보수층 결집 메시지로 해석된다. 특히 접전 양상으로 전해지는 대구시장 선거와 맞물리며 정치적 파급력에 관심이 쏠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의 지원 유세를 위해 대구 북구 칠성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헙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의 지원 유세를 위해 대구 북구 칠성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헙뉴스]
 
 
전직 대통령의 선거 지원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장된다. 전직 대통령 역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전직 정상의 선거 지원은 흔한 일이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 지원 유세에 적극 나섰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퇴임 시절 공화당 정치의 핵심 변수로 활동했다. 일본에서도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생전에 자민당 선거 지원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방선거라고 해서 순수하게 지역 정책 경쟁만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 선거는 언제나 중앙정치의 영향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권 평가와 정당 지지율,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민심이 지방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세계 정치의 공통된 현상이다. 한국 정치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균형이다.
 
지방선거는 본질적으로 지역 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뽑는 선거다. 시민의 삶과 가장 가까운 교통·주거·복지·안전·산업 정책을 책임질 사람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AI와 반도체, 바이오와 배터리 같은 첨단 산업 경쟁 시대에는 지방정부가 단순 행정기관이 아니라 지역 산업 전략의 핵심 축이 되고 있다.
 
 
그런데 선거가 지나치게 중앙 정치화되면 정작 지역의 미래 비전은 사라지고 진영 대결만 남게 된다. 대구시장 선거 역시 대구 경제와 산업 전략, 청년 유출 문제보다 ‘박근혜 효과’ 자체가 큰 뉴스가 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인물과 진영 중심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전직 대통령의 정치 참여를 무조건 금기시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선거 지원 자체가 아니라 그 방식과 메시지다. 특정 진영 결집만을 자극하고 상대를 적대시하는 방향으로 흐를 경우 사회적 갈등은 더 커질 수 있다. 반대로 국가 원로로서 통합과 책임, 절제의 메시지를 함께 던진다면 정치 문화의 품격을 높이는 역할도 가능하다.
 
 
해외 사례 역시 이를 보여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 지원에 나서면서도 미국 민주주의의 통합과 제도 신뢰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퇴임시절 강한 지지층 결집 효과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평가도 받는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결국 어떤 방향으로 사용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의 자산이 될 수도,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 정치가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감정 정치의 과잉’이다. AI 가짜뉴스와 유튜브 정치, 팬덤 정치와 혐오 정치가 선거판을 흔드는 시대다. 정치적 상징이 과도하게 동원될수록 선거는 정책 경쟁보다 감정 동원 경쟁으로 흐르기 쉽다. 결국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 지역경제와 일자리, 교통과 안전, 청년과 복지 같은 생활 문제는 뒤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번 행보 역시 같은 기준에서 봐야 한다. 보수 지지층 결집 효과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갈등과 진영 대립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단순한 개인 정치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상징 효과를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정치 참여를 허용하는 체제다. 전직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 다만 그 영향력이 큰 만큼 더 높은 수준의 책임감과 절제가 요구된다. 특히 지방선거에서는 정당과 진영의 승패를 넘어 “누가 지역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가”라는 본질이 중심이 돼야 한다.
 
 
결국 유권자가 판단해야 할 것도 그 지점이다. 정치적 상징과 감정에만 흔들릴 것이 아니라 후보의 정책과 능력, 지역 발전 비전까지 냉정하게 봐야 한다.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연장선이면서 동시에 시민 삶을 책임질 생활 정치의 무대이기도 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진영 결집만이 아니다.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을 고르는 성숙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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