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사고 후폭풍] "부수는 데 돈 안 매긴다"…표준품셈에 빠진 해체 안전

  • 토목학회 "구조해석·계측비 산정 항목 없어 저가 발주 고착"

  • 표준품셈은 압쇄·파쇄 물량 기준 중심…미국은 교량해체 매뉴얼 제정

서울시가 교량 철거 작업 중 상판 붕괴 사고가 난 서소문 고가차도에 대해 40시간에 걸친 완전 철거 작업에 들어갈 예정인 가운데 28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 현장 주변이 통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시가 교량 철거 작업 중 상판 붕괴 사고가 난 서소문 고가차도에 대해 40시간에 걸친 완전 철거 작업에 들어갈 예정인 가운데 28일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 현장 주변이 통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를 두고 토목 분야 최대 학술단체가 “현장의 단순 과실이 아니라 제도가 만든 구조적 사고”라는 진단을 내놨다. 사고 원인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노후 인프라 해체공사의 비용·감리 체계에 구멍이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토목학회는 28일 입장문에서 국내 해체공사 제도의 ‘3대 공백’을 사고 배경으로 지목했다. 토목 구조물 철거에 선행 해체설계 의무가 없고, 해체 비용이 표준품셈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저가 발주가 굳어졌으며, 전문 감리 체계와 자격 기준도 없다는 것이다.

학회가 짚은 핵심은 ‘돈’이다. 단계별 구조해석비와 임시 지지구조물 설치비, 계측비가 표준품셈에 반영되지 않아 발주 단가가 낮아지고, 그 결과 안전 절차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거나 누락될 수 있다고 봤다.

국토부 고시 건설공사 표준품셈을 보면 교량 같은 토목 구조물 본체 해체를 별도로 적산하는 표준 항목은 찾기 어렵다. 품셈에 담긴 해체 관련 기준은 소형 콘크리트 구조물 해체, 동바리·비계 등 가설물 설치·해체, 압쇄기·파쇄기 장비 작업량 정도다. 교량 본체를 단계적으로 허물며 달라지는 하중을 구조해석하고, 임시 지지대를 설치하며, 처짐을 계측하는 안전 공정을 비용으로 산정하는 근거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표준품셈은 단위작업 투입량을 정하는 적산 기준이지만 해체 본체 공정 자체에 표준이 없다 보니 관련 비용이 발주가에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다. 부수는 ‘양’은 세면서 안전하게 부수기 위한 ‘설계와 감시’에는 값을 매기지 않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해체공사를 별도 엔지니어링 영역으로 다루려는 움직임도 있다. 미국토목학회(ASCE)는 2024년 교량 해체 전용 기술지침인 ‘MOP 157’을 펴냈다. 해체 분석 기준이 지역이나 회사마다 달라지는 문제를 줄이기 위한 취지다.

해체 현장의 위험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국토부 집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체·철거 공사 사고는 1141건, 해체공사 재해 사망률은 건설업 평균 대비 2배 수준이다. 노후 교량과 고가도로가 늘면서 해체공사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제도 미비만을 원인으로 보기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규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서울시 시방서에는 철거 구조물의 변형·침하를 막기 위해 필요시 버팀대나 지주를 설치하도록 돼 있다. 사고 현장에 충분한 보강 조치가 있었는지는 향후 조사에서 따져볼 대목이다.

학회는 재발 방지책으로 △토목 구조물 해체설계 선행 용역 의무화 △고위험 해체공사 적정 공사비 기준 마련 △토목 해체 전담 감리자격 신설 △붕괴 징후 발견 시 원격점검 우선 절차 의무화 △공적 안전점검 참여 민간 전문가 보호·보상 체계 마련 등을 제안했다. 원격점검 우선과 전문가 보호 조항은 이번 사고와 맞닿아 있다.


한승헌 대한토목학회장(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은 “제도가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면 이번 같은 참사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며 “전국 노후 교량 안전관리 체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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