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엄태구가 또 한 번 예상 밖의 얼굴을 꺼내 보인다. 영화 '와일드 씽'은 한때 가요계를 휩쓸었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해체된 3인조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이 20년 만의 재기 무대에 도전하는 코미디다. 엄태구는 정통 힙합 전사를 꿈꿨지만 현실은 짧은 파트와 3인자 콤플렉스에 머물렀던 막내 래퍼 상구를 맡았다. '낙원의 밤' '밀정' '차이나타운' 등 누아르와 장르물 속 강렬한 얼굴로 각인됐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폭풍 래핑과 아이돌 퍼포먼스, 몸을 아끼지 않는 코미디 연기까지 밀어붙이며 낯설고도 반가운 변신을 보여준다.
"대본이 워낙 재밌었어요. 제가 안 했어도 너무 재밌었을 대본이었고요. 감독님도 너무 좋으셨습니다. 현우 역에 강동원 선배님이 캐스팅된 상황이라 같이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도전해보고 싶었고 이걸 잘 소화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히 참여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열심히 준비했어요. 랩도 그렇고 안무도 그렇고요."
준비 기간은 약 5개월에 가까웠다. 촬영 전부터 랩과 안무 연습을 시작했고 촬영 중 휴차가 생길 때마다 연습실을 찾았다. 영화사에서 마련한 준비 과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조금 더 많이 움직이려 했다.
"총 기간으로 보면 5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촬영 전부터 시작해서 촬영 중 휴차 때마다 랩이랑 안무를 연습하러 갔습니다. 더 열심히 하고 싶어서 영화사에서 준비해주신 것보다 조금 더 가려고 했어요. 부족하다고 느꼈거든요."
"랩 같은 경우는 선생님께 거의 100% 의지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하라고 하시는 대로 갔고요. 상구라는 캐릭터가 랩을 아주 잘하는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5개월 동안 제가 진짜 열심히 하면 어차피 엄청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그게 상구와 잘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예 안 해본 사람은 아니고 진짜 열심히 하는데 잘 못하는 느낌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는 발성부터 리듬 타는 법, 제스처까지 하나씩 배워갔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선생님의 말투나 손짓을 따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훈련이었기에 그저 계속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발성 연습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선생님과 같이 했어요. 리듬 타는 것도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계속 하려고 했고요. 나중에는 선생님들과 대화할 때도 선생님들 특유의 제스처나 말투가 있으시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그걸 조금씩 따라 하게 됐는데 그런 게 자연스럽게 나왔을 때 기분이 좋았어요. 이게 어디까지 하면 된다는 끝이 없으니까 그냥 무작정 열심히 계속 노력했습니다."
상구의 무대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달라진 부분도 있었다. 의상과 가발이 더해지며 캐릭터의 귀여운 면을 살리는 방향이 생겼고 엄태구는 준비해본 적 없는 표정과 제스처를 갑작스럽게 해내야 했다. 그 순간 그가 붙든 마음은 단순했다. 귀엽지 않으면 차라리 죽겠다는 각오였다.
"현장에서 갑자기 바뀐 부분이 있었어요. 가발이나 의상도 그렇고 상구가 조금 더 귀엽게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그런데 연습해본 적이 없으니까 슛 들어간다고 했을 때 너무 공포스러웠어요. 가만히 있다가 한 번도 그런 표정을 안 짓던 애가 갑자기 그러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귀엽지 않으면 차라리 죽겠다'는 마음으로 저질렀어요. 제가 할 줄 아는 귀여운 동작을 다 했는데 그게 윙크였던 것 같아요. 준비된 동작은 하나도 없었고 어디선가 보고 나온 거였죠."
무대 위에서 필요한 건 민망함보다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엄태구는 무대 체질이라고 말하기보다 카메라가 돌고 상황이 주어지면 어떻게든 저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다만 그것이 억지스럽게 보이지 않기 위해 그동안의 준비가 필요했다.
"무대 체질이라기보다 무대 위나 액션을 할 때 민망함은 필요 없고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무조건 저질러야 하는데 그게 억지스럽지 않아야 하니까요. 그동안 준비를 많이 했으니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어릴 때 샤워하고 나와서 자유롭게 노는 것처럼 놀아보고 싶었어요.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강동원, 박지현과 함께한 호흡 역시 작품의 중요한 축이었다. 엄태구는 대화가 많지 않아도 현장에서 호흡이 잘 맞았다고 돌아봤다. 코미디에서 웃음이 만들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함께하는 배우들과의 리듬 덕분이라고 했다.
"대화가 많지는 않았지만 강동원 선배님뿐만 아니라 다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코미디는 호흡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만약 웃는 포인트가 있다면 그 호흡 때문인 것 같아요. 선배님들이 잘 이끌어주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화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가요계의 감성을 가져오지만 엄태구는 상구를 연기할 때 특정 시대를 과하게 의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의상과 분장, 무대 장치가 그 시대의 공기를 만들어줬고 그는 상구의 현실과 감정에 집중했다.
"그 시절에는 듀스를 좋아했어요. 다만 연기할 때는 그런 부분을 많이 생각하기보다 의상이나 분장, 무대에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 시대를 재현해주셔서 신기하고 재밌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막상 연기할 때는 상구에게는 그때가 현실이니까요. 그 시절 자체를 의식하기보다 상구 입장에서 어떤 기분일까를 더 많이 생각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상구를 연기하며 큰 차이를 두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상구가 욕을 하거나 거칠게 말하는 순간에도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날카로운 인물이라기보다 어딘가 귀엽고 짠하게 느껴지는 사람으로 남길 바랐다.
"엄청 차이를 주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캐릭터적으로 상구가 욕을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제가 뭔가를 뺀 건지는 모르겠는데 욕이 좀 귀엽게 들릴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편하게 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무섭게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엄태구는 내향적인 이미지로도 자주 언급되는 배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완전히 내향적인 사람으로만 보는 시선에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보다 현장에서 자신의 의견도 내고, 장난도 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향적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하. 여러 부분이 있지만 저에게도 외향적인 면이 있어요. 지금은 예전보다 덜 외향적일 수도 있지만 이 일을 계속하다 보니까 현장에서 장난도 많이 치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제 의견도 잘 내거든요. 예전에는 잘 못 그랬는데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내향적이지만은 않은데 너무 완전 내향적으로만 봐주시는 것 같아서 인터뷰할 때는 많이 '그 중간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대인사와 쇼케이스 등 팬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도 이어지고 있다. 아이돌을 다룬 영화인 만큼 팬들의 요청과 반응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엄태구는 무엇을 해보고 싶다기보다 팬들이 원한다면 최대한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했다.
"팬분들이 뭔가 시켜주시면 해야지 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있어요. 준비가 됐다기보다 마음이 그래요. 제가 그렇게 다 보답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고요.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해보려고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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