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은 과거 더불어민주당 또는 그 계열 정당이 서울시의회를 장악했던 시절 자신의 처지를 '노예 시장'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했다.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으려는 것처럼 무모하다’는 뜻의 고사성어 '당랑거철(螳螂拒轍)'을 인용하기도 했다. 시의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 앞에서 자신은 한 마리 사마귀처럼 힘 없는 존재였다는 뜻이다. 오 시장이 이번에 또다시 ‘노예 시장’이 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의회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 시장이 노예 시장을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말이다.
민주당 시의회 장악으로 '가시밭길' 예고
오 시장은 지난 3월 서울시장 후보 등록 방침을 밝힌 뒤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이 서울시의회 ‘33% 저지선’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33% 저지선이란 더불어민주당이 시의회 의석 3분의 2 이상 차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시의회는 예산 심의와 의결, 조례 제정, 행정 사무 감사, 본회의 시정 질의 등을 통해 시정을 견제하고 여러 현안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시장은 조례에 대해 재의 요구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시의회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하면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오 시장이 우려한 일이 현실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의회 의석의 3분의 2(79명)를 넘은 81석을 확보하고 국민의힘은 37석을 얻은 데 그친 것이다. 민주당 주도의 서울시의회가 오 시장의 거부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서울시의 주요 정책과 예산 편성, 조례 제·개정에 대해서 오 시장은 자기가 하고 싶어도 민주당 주도 시의회가 반대하면 할 수 없게 됐고, 민주당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
이번이 5선인 오 시장은 이미 두 번의 시장 시절 민주당 계열 정당이 시의회 3분의 2 이상을 장악한 ‘여소야대’를 겪었다. 2선 시절인 2010~2011년과 2021년 4·7 보궐선거에서 3선에 당선된 이후인 2021~2022년이다. 오 시장이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에 복귀한 2021년 더어민주당은 서울시의회 110석 가운데 99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 시장은 “서울시가 (박원순 전 시장이 재임한) 지난 10년간 민간위탁·보조 명목으로 시민단체에 1조원을 지원했다” “시민 혈세를 쌈짓돈처럼 생각하고, ‘시민’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사익을 좇는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선언하고 시민단체 위탁 사업과 각종 보조금 사업 정비에 나섰다. 이 사업 관련 사업비를 감액한 2022년도 예산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
한탄했던 '노예 시장' 재연 가능성
하지만 민주당 주도의 시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시의회는 오 시장이 삭감한 예산을 예년 수준으로 되돌렸다. 반면 ‘오세훈표 핵심 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했다. 오 시장은 ‘아이 서울 유(I SEOUL U)’라는 서울시 브랜드도 바꾸려 했지만 조례 제정권을 가진 시의회에 막혀 포기했다. 오 시장은 2022년 1월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시의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의석수에 밀려 반의 반쪽의 혁신밖에 못 이뤘다”고 했다. 오 시장은 “(민주당이) 90%를 장악한 시의회를 상대로 뭔가를 바꾼다는 게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 ‘당랑거철’이라는 표현을 썼다.
오 시장은 2선 때인 2011년에도 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에 밀려 힘을 쓰지 못했다. 당시 서울시의회 의석 106석 중 민주당은 3분의 2가 넘는 79석, 한나라당은 27석을 보유했다. 오 시장이 추진하는 행정과 사업은 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에 번번이 제동이 걸렸다. 시의회의 일방적인 예산 삭감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반면에 민주당은 복지 사업 예산을 대폭 늘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학교 무상 급식이었다. 오 시장은 이를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반대했으나 시의회는 무상 급식 조례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오 시장이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시의회는 재의결하고 말았다. 오 시장은 주민 의견을 묻겠다며 주민투표 실시를 제안했다. 그러나 주민투표 성립을 위한 투표율에 미달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장을 사퇴했다. 오 시장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신을 ‘노예 시장’으로 표현했다.
오 시장이 ‘노예 시장’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한탄을 하게 된 데는 시의회 권력을 장악하고 입법 독주를 일삼은 민주당의 책임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오 시장의 정치력 부족도 원인이다. 거대한 반대 세력과 일을 함께 하려면 이들을 설득해야 할 수밖에 없다. 정치에서 설득은 곧 흥정이다. 대화를 통해 협상하고 타협하면서 주고받는 게 그 핵심이다. 흥정을 통해 반대 세력을 설득하는 힘이 정치력이다.
특정 이념에 얽매이고, 힘의 사용을 자제할 줄 모르는 집단과 대화로 문제를 풀기는 쉽지 않다. 양극화가 심하고 타협과 협상의 문화가 취약한 우리 정치 풍토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흥정으로 설득하는 방법 외에 다른 도리가 있을 수 없다. 반대당이 의회 의석을 3분의 2 이상 차지하고 있어 시장의 거부권 행사를 무력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정치로 풀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든 시장이든 정치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윤석열의 '정치력 빈곤'이 주는 교훈
이런 점에서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내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정치 공세에 시달렸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은 윤석열 정부 2년 7개월간 탄핵을 29건 발의했다. 매달 한 번 이상 탄핵안을 들고 나온 셈이다. 이 중 13건은 실제로 민주당 주도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돼 해당 공직자 직무가 정지됐다.
나머지 16건은 탄핵안이 철회되거나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있었다. 헌정 사상 탄핵 심판이 총 16건이다. 그런데 이 중 13건이 윤석열 정부 인사 탄핵 소추이니 민주당이 탄핵 소추를 얼마나 남발했는지 알 수 있다. 민주당은 특정 고위 공직자들 겨냥해 2~3차례 반복적으로 탄핵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노란봉투법 등 윤석열 정부가 반대하는 법안도 총 18차례 강행 통과시켰다.
이에 맞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총 25번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전 대통령이 민주당 지도부와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시도는 없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청와대에서 만난 것도 단 한 번뿐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만나는 게 법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민주당이 입법 독주를 일삼는 상황에서 이 대표를 만나 대화하는 게 감정 상 용납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개인 대 개인의 문제라면 그런 부담감과 심정이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최고 정치 지도자라면 다르다. 정치는 현실이다. 민주당이라는 거대 야당의 존재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현실 문제를 풀어가려면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지도부와 만나 흥정을 통해 설득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윤 전 대통령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정치는 현실이고 흥정’이라는 냉엄한 인식이 부족했거나, 그런 인식은 있었지만 이를 행동에 옮길 기질 또는 의지가 없지 않았나 싶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적 권한’으로만 민주당을 상대하려 했지 정치적으로 풀려 하지 않았다. 비상 계엄 선포는 윤 전 대통령의 정치력 부족이 빚은 사태이다.
대권 주자 '가능성의 예술' 증명해야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평생 검사만 했지 정치를 한 적이 없다. 정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정치력이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오 시장은 다르다. 국회의원을 지냈고, 서울시장도 벌써 5선째다. 선거와 정치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이력에 걸맞은 정치력을 발휘할 만도 하다.
윤 전 대통령은 정치를 ‘적과 동지의 구별’이라는 틀로 봤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적이고, 자기 앞에 머리를 수그리는 사람이나 집단은 동지로 보는 식이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그랬고 국회에 대해서도 그랬다. 정치를 적과 동지의 구별로 본다면 적은 타도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그런 대상이었다. 비상 계엄은 타도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아무리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극한 대치 상황에서도 ‘가능한 것’을 찾아내는 기술 또는 능력이 정치라는 뜻이다. 가능한 것을 찾아내려면 타협과 협상이 불가피하다. 흥정을 통한 설득이 필수적이다.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로 보면 반대 세력은 타도가 아닌 공존과 협치의 대상이 된다.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로 만드는 힘이 흥정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정치력이다.
오 시장은 시의회 여소야대 시절인 2021년 10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의회 10분의 9가 민주당이고 (중간 생략). 한번 생각해보라. 이런 상태에서 개혁 작업을 한다는 게 용이할지. 그래서 스스로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아직 시장이 아니다, 나는 아직 반쪽 시장이다'라는 말을 되뇔 수밖에 없다. 그래야 병이 안 난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할 수가 없다는 게 얼마나 좌절스럽겠나."
오 시장은 국민의힘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힌다. 대선 후보가 되려면, 나아가 대통령으로 성공하려면 정치력 발휘가 필수적이다. 윤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는 게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오 시장이 거대 야당의 존재 앞에서 ‘노예 시장’이라는 좌절과 한탄에만 빠져 있어선 미래가 없다. 정치를 ‘적과 동지의 구별’ 이 아닌 ‘가능성의 예술’로 보고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미래가 열린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전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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