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쿠팡 문제, 법대로 처리하되 한미 협력과 분리해 관리해야

강경화 주미대사 사진연합뉴스
강경화 주미대사 [사진=연합뉴스]
한미가 이번 주 외교·통상 분야의 연쇄 고위급 협의에 나선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필리핀에서 열리는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워싱턴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을 만날 예정이다. 대미 투자와 조선 협력, 원자력 협력, 안보 협의 등 주요 현안이 쌓여 있는 가운데 이른바 ‘쿠팡 문제’가 한미 관계의 부담으로 떠올랐다.
 
정부의 대응 원칙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조사와 제재는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이뤄지는 국내 법 집행이다. 외교부도 모든 조사와 조치가 적법하고 비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부과된 6247억원 규모의 과징금 역시 관계기관이 독립적으로 법에 따라 처리할 사안이며 외교적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당연한 원칙이다.
 
대한민국에서 사업하는 기업은 국적과 지배구조에 관계없이 국내법을 따라야 한다. 3000만명이 넘는 국민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중대한 사안에서 해당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돼 있다는 이유로 조사와 제재 기준을 달리한다면 법치주의와 시장의 공정성은 무너진다. 국내 기업에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외국계 기업에는 외교적 부담을 이유로 예외를 인정해서도 안 된다.
 
미국 측의 문제 제기도 정확한 사실관계에 근거해야 한다.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와 백악관은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조사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개인정보보호법과 공정거래 관련 법률에 따른 절차라면, 이를 자국 기업에 대한 표적 조사로 단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미국 역시 자국에서 개인정보를 대규모로 유출한 기업에 대해 조사와 제재를 해왔다. 한국 정부의 법 집행만 정치적 차별로 보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다만 원칙을 지키는 것과 외교적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강경화 주미대사가 “생각보다 훨씬 오래가는 이슈”라고 밝힌 데서 보듯 쿠팡 문제는 이미 기업 차원을 넘어 미 의회와 행정부의 관심 사안으로 번졌다.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국 기업 보호를 내세운 정치적 압박이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미 의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비차별적 법 집행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아웃리치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더 중요한 것은 쿠팡 문제와 다른 한미 현안을 분리해 관리하는 일이다. 양국은 조선 협력과 대미 투자, 원자력 협정 개정,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도입 논의 등 전략적 이해가 걸린 과제를 안고 있다. 하나의 기업 관련 분쟁이 안보와 산업 협력 전반의 발목을 잡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쿠팡 문제를 다른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한다면 정부는 사안별 원칙을 세워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정부 내부의 일관된 대응도 필요하다. 외교부와 산업통상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가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놓는 순간 미국 측에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 통상 부처와 공정거래 당국까지 참여한 만큼 법 집행의 독립성은 보장하되 대외 설명과 협상 전략은 정교하게 조율해야 한다.
 
쿠팡 문제의 해법은 과징금을 깎거나 조사를 늦추는 데 있지 않다. 법과 절차를 투명하게 집행하고, 미국 측에는 객관적인 자료로 설명하며, 다른 협력 사안과는 분리해 관리하는 데 있다. 원칙 없는 양보는 나쁜 선례를 남기고, 소통 없는 강경 대응은 국익을 해친다. 정부는 법치와 외교를 함께 지키는 냉정한 대응으로 한미 관계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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