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인천 서구의 한 대형 물류센터에서 시작된 불은 완전히 꺼지기까지 109시간이 걸렸다. 지상 8층, 연면적 30만㎡ 규모의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국가소방동원령이 내려졌고, 인근 주민들에게는 건물 붕괴 가능성에 대비한 대피 안내까지 전달됐다.
주목할 대목은 따로 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방화셔터와 스프링클러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해당 기업도 화재 감지·대응 체계를 강화해 왔으며, 해당 센터의 소방 설비 역시 법정 기준을 충족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큰 불길을 잡기까지 61시간이 걸렸다. 이 간극에 현재 국내 물류 인프라가 마주한 문제의 본질이 담겨 있다.
e-커머스의 성장과 효율화 경쟁 속에서 물류창고는 갈수록 크고 높아졌다. 한정된 면적에 더 많은 상품을 보관하기 위해 적재 구조는 수직화됐고, 자동화 설비와 포장재, 전기설비도 한 공간에 더욱 밀집됐다. 운영 효율은 높아졌지만, 화재가 발생했을 때 연소할 수 있는 물질과 불길이 확산할 수 있는 경로 역시 함께 늘어났다.
고적재 창고에서는 랙 사이의 수직 공간을 따라 불길과 열기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종이상자와 비닐, 플라스틱 등 포장재가 밀집된 환경에서는 작은 불씨도 짧은 시간 안에 넓은 구역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건물 내부가 넓고 연기와 열기가 축적되면 소방대원의 진입과 화점 확인도 어려워진다. 물류센터 화재의 피해 규모를 결정하는 핵심은 단순히 불이 났는지 여부가 아니라, 초기 단계에서 불길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억제하느냐에 있다.
결국 물류창고 화재는 특정 설비 하나의 성능 문제가 아니라 저장 구조와 소방 설계, 운영 방식이 복합적으로 얽힌 시스템 리스크다. 이러한 위험은 사고 이후가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검토하고, 운영 방식이 바뀔 때마다 다시 점검해야 한다. 실제 적재 상태에서 살수된 물이 랙 안쪽까지 도달하는지 확인하고, 위험 품목을 분리하며, 방화구획과 감지 설비를 운영 실태에 맞게 재검토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사고 발생 이전의 준비가 복구 속도를 바꾼 사례도 있다. 영국의 폐기물·재활용 기업 코리그룹의 한 시설에서는 전력 공급 이상으로 60톤 규모의 터빈이 97초 만에 정지했고, 이 사고로 3000만 파운드가 넘는 손실이 발생했다. 대형 설비 사고가 사업 운영에 미치는 충격과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물류시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리그룹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 보험사와 함께 터빈 고장 상황을 가정한 손실 시나리오 워크숍을 진행했다. 실제 사고가 발생하자 당시 마련한 시나리오를 토대로 복구 계획을 가동했다. 사고 발생 48시간 이내에 보험 적용 범위와 대응 방향을 확인했고, 대규모 손해에도 약 9개월 만에 보험금 지급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고 자체를 막지는 못했지만, 사전에 역할과 의사결정 체계, 복구 절차를 정리해 둔 덕분에 불확실성과 운영 중단을 줄일 수 있었다.
국내 물류기업도 화재 발생 가능성만 점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핵심 거점이 멈췄을 때 어떤 기능을 어디로 이전할지까지 준비해야 한다. 대체 보관시설과 배송 경로, 재고 데이터 복구 방안은 물론 보험 적용 범위와 의사결정 권한까지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물류센터는 이제 단순한 창고가 아니라 기업의 공급망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쌓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운영을 이어갈 수 있는가’다. 기업의 경쟁력은 재고의 양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운영을 유지하고 빠르게 회복하는 역량에서 판가름 난다. 효율과 안전은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 설계해야 할 조건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