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시사평론가]
인류 역사 가운데 문명의 수준을 그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는 ‘대전환의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으뜸일 것이다. 산업혁명은 단지 기계의 등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제구조와 정치체제, 사회문화, 과학기술, 삶의 방식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관계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는 그 정점이었다. 이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산업혁명보다 더 위력적인 ‘새로운 대전환’의 변곡점을 맞고 있다. ‘AI(인공지능)혁명’이 그것이다. 더욱이 새로운 대전환 속도는 충격적일만큼 빠르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또 하나의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산업혁명보다 더 큰 충격이 몰려오고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AI시대’가 몰고 올 충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며 논쟁적이다. 장밋빛 청사진도 있지만, 재앙적 파멸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많다. 결국은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AI시대는 국제관계에서도 ‘새로운 세계질서’가 구축될 것이며, 이에 따라 ‘선도 국가(AI제국)’와 ‘후발 국가(디지털 식민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 AI시대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AI전쟁’이 그것이다. 물론 국가 대신에 AI기업이 패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AI주권’을 놓고 국가와 AI기업이 힘 대결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AI기업의 파괴력이 지금보다 더 커질 경우엔 국경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승자가 어느 쪽이 될지, 아니면 AI시대를 양분할지, 그것도 아니면 AI기업들이 최종 패권을 차지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산업혁명의 물결을 따라가지 못한 채 식민지로 전락한 통한의 근대사를 경험한 우리는 AI시대를 보는 심정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또 (AI)식민지로 전락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반도체 등 AI시대 핵심 인프라가 우리에겐 잘 마련돼 있다. 미국과 중국 등을 제외하면 우리만큼 AI시대 경쟁력을 갖춘 나라도 찾기 어렵다. 관건은 ‘국가적 역량’의 동원 문제다. 자본과 인재, 기술을 결합할 수 있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는 그 결정적인 모멘텀이 되고 있다. EU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AI기본법’이 올 초부터 시행되고 있다. 더욱이 지난 6월 29일에는 반도체와 피지컬AI, AI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가 발표됐다. 무려 4755조원을 투입해 미래 50년의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대 AI 강국’의 비전이 구체화 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24일 해외 순방 중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 혹 탄 브로드컴 CEO 등이 자리를 같이 했다. 국가 정상이 글로벌 빅테크 기업 총수들을 모아 ‘AI서밋’을 주도한 나라는 우리가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AI시대 한국의 비전을 담은 ‘샌프란시스코 AI 선언’도 발표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대체 불가’한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AI혁명이 몰고 올 새로운 시대에 대한민국이 주역이 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선포한 것이다. 우리에겐 아직 꿈같은 미래지만, 어쩌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앞으로 10년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건 문명사적 도전인 셈이다.
다가오는 AI시대엔 민주주의도 풍성해질까. 인간의 삶의 질도 더 좋아질까. ‘하기 나름’이라는 무책임한 설명이 많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전망이 많다. AI시대 본질을 간파한 언론인 카렌 하오(K.Hao)는 AI시대를 아예 ‘AI제국’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처럼 식민통치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엄청난 부를 모은다는 얘기다. 그 대척점에 ‘AI식민지’가 있는 셈이다. 심지어 AI는 약탈적 자본주의의 ‘최종 병기’가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샘 올트먼은 한 인터뷰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AI를 장악할 경우, 전 세계적 감시와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위주의 정권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안타깝지만 세계는 지금 권위주의 정권의 ‘전성기’를 보는 듯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의회정치, 정당정치, 선거정치 등의 민주주의 역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AI시대는 기본적으로 ‘소수 권력’의 지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AI는 철저히 ‘정치적’이다. 이 분야 세계적 석학인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마크 코켈버그(M.Coeckelbergh) 교수도 AI는 중립적이지 않으며, 민주주의 발전에도 위협적이라고 주장한다. 공동체의 숙의 과정이 무력화되고, 대중의 지혜도 AI에 밀려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소수의 기업(국가)과 소수의 AI엘리트가 천하를 좌우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진행 중인 AI혁명의 초기 과정만 보더라도 이런 우려는 현실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AI혁명을 이대로 지켜만 볼 것인가.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AI시대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AI혁명을 기업이나 시장에만 맡길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차원의 민주적 통제와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 인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규범과 윤리 기준 확립 등이 급선무다. 이를테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IAEA가 있듯이, AI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국제 AI기구’ 설립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마침 ‘AI서밋’을 주도한 우리나라가 ‘국제 AI기구’ 설립을 주도하고 그 본부를 유치할 수도 있는 일이다. 미국도, 중국도 아니라면 대한민국이 최적이다. 정부도 이미 ‘유치위원회’를 발족해서 행동에 나선 상태다. AI시대 주도권을 위해 큰 걸음을 내디딘 이재명 정부가 좀 더 적극 나서길 바라는 마음이다.
필자 주요 이력
△시사평론가(현) △인하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전) △혁신과미래연구원 원장(전)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