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사용한 상품을 회수·검수해 다시 유통하는 ‘리커머스’가 시장이 커지면서 신상품 판매에 집중했던 패션업체들의 사업 영역이 중고 거래로 넓어지는 모습이다.
일부 기업들은 중고 판매 대금을 자사 포인트로 지급해 신상품 재구매까지 유도하며 고객을 자사 생태계에 묶는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LF가 지난해 9월 선보인 중고 패션 플랫폼 ‘엘리마켓’의 올해 2분기 거래액은 서비스 론칭 초기와 비교해 약 2.5배 수준으로 성장했다.
중고 판매가 다시 신상품 구매로 이어지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엘리워드를 사용해 LF몰에서 재구매한 거래액은 지난해 9월과 비교해 올해 6월 기준 약 80% 증가했다. 중고 옷을 팔아 받은 보상이 다시 LF몰 내 소비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판매자와 취급 브랜드도 빠르게 늘었다. 누적 판매자 수는 론칭 당시보다 5.4배 증가했고, 판매 가능한 브랜드는 초기 약 15개에서 6개월 만에 170여개로 확대됐다. 컨템포러리 브랜드뿐 아니라 골프웨어와 아웃도어까지 취급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무신사도 리커머스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고 패션 서비스 ‘무신사 유즈드’의 올해 7월 거래액은 서비스 론칭 첫 달인 지난해 9월과 비교해 약 12배 증가했다.
오프라인 접점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 3월 문을 연 무신사 아울렛 롯데몰 은평점의 유즈드 코너에서는 개점 이후 나흘간 판매량이 2300건을 넘어섰다.
패션업계가 리커머스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중고 판매 이상의 계산이 깔려 있다. 상품의 두 번째 거래까지 자사 플랫폼 안에 두면서 고객과의 접점을 이어가고, 이를 다시 신상품 구매로 연결하려는 전략이다.
중고 팔아 받은 돈으로 다시 새 옷 산다
과거 중고거래의 주도권은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 같은 개인 간 거래(C2C) 플랫폼에 있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신상품을 판매한 뒤 상품이 어디에서 얼마에 다시 거래되는지 알기 어려웠다. 리커머스는 이 두 번째 거래를 브랜드와 패션기업이 다시 가져오는 구조다.
코오롱FnC는 패션기업 가운데 비교적 일찍 움직였다. 2022년 ‘OLO 릴레이 마켓’을 시작해 고객이 중고 상품을 넘기면 포인트로 보상하고 이를 코오롱몰에서 다시 사용하도록 했다.
초기에는 코오롱스포츠 등 자사 상품이 중심이었지만 올해부터 해외·국내 패션 브랜드까지 매입 대상을 대폭 넓혔다.
올해 상반기 OLO 릴레이 마켓 거래액은 서비스 초기인 2022년 하반기보다 약 4.4배 커졌고 판매자도 출시 첫해 대비 5~6배 증가했다.
지난달에는 별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까지 내놓으면서 코오롱몰의 신상품 구매와 중고 판매를 하나의 소비 과정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패션업체가 노리는 것은 ‘판매→사용→회수→재판매→신상품 재구매’의 순환 구조다.
중고 상품을 외부 플랫폼에 빼앗기지 않고 고객과 상품 데이터를 계속 확보할 수 있고, 중고 판매 보상을 자사 포인트로 지급하면 소비자를 다시 불러들이는 ‘록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브랜드 가치 관리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기업이 직접 검수와 상품 등급 산정에 개입하면 개인 간 거래보다 품질에 대한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다.
중고 시장에서 자사 상품이 어느 가격에 거래되는지도 파악할 수 있어 상품의 잔존 가치까지 관리할 여지가 생긴다.
세계 중고 의류 시장 규모 3930억달러로 커진다
리커머스 확대는 국내만의 현상이 아니다. 글로벌 중고 패션 플랫폼 스레드업이 발표한 ‘2026 리세일 리포트’를 보면 세계 중고 의류 시장은 올해 약 2890억 달러에서 2030년 약 393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향후 5년간 전체 의류시장보다 약 두 배 빠르게 성장할 것이란 관측이다.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1990년대 중반 출생)가 2030년까지 시장 성장분의 71%를 이끌 것으로 예상됐다.
고물가가 장기화하면서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에게는 보다 저렴하게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LF 엘리마켓에서 판매되는 중고 제품 가격은 브랜드와 상품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신상품 정가의 20~40% 수준이다.
다만 리커머스가 무조건 남는 장사인 것은 아니다. 중고 제품은 상품마다 상태가 달라 수거와 검수, 세탁·수선, 촬영, 보관, 배송을 개별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신상품보다 운영 효율을 높이기 어렵고 중고 판매가 커질수록 일부 고객이 새 제품 대신 중고를 선택하는 자기잠식 가능성도 존재한다.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리커머스의 가치 역시 중고 판매 자체의 수익보다 고객 관계 강화와 품질 불확실성 축소 같은 간접 효과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리커머스는 이제 단순한 중고 거래를 넘어 고객 데이터를 축적하고 재구매를 유도할 수 있는 핵심 접점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통합 모델이 정착되면 유통사 간 경쟁의 축이 신상품 판매에서 순환 소비 생태계 전반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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