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텔레비전(TV)은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지만 동시에 비판 없이 정보를 수용하게 만든다는 뜻에서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독재 권력이나 기득권층은 TV라는 일방향 매체를 활용해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고 여론을 정권 친화적으로 유도하곤 했다. 그러나 당시의 여론 조작은 방송 편성권, 송출 채널을 통제하는 국가적 차원의 개입이 필요했고, 시청자 역시 동일한 뉴스를 소비하며 공적 토론의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인공지능(AI)이 대세가 된 현재 과거의 바보상자는 스마트폰 화면과 유튜브로 옮겨갔다. 이용자 취향과 편향을 분석한 고유의 알고리즘에 따라 집요하게 추천 콘텐츠로 따라다닌다. 과거 TV가 다수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주입했다면, 알고리즘은 개인의 확증 편향을 파고들어 이른바 ‘에코 챔버(확증 편향)’ 효과를 극대화한다.
최근 구글 위협분석그룹(TAG)이 발표한 ‘2026년 2분기 영향 공작 보고서’는 이러한 위험성이 단순한 우려가 아닌 현실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은 올해 2분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조직적 여론 공작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채널 약 1만8500개를 폐쇄 조치했다. 주목할 점은 이 중 한국어 채널이 총 449개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월별 통계를 보면 4월에 22개, 5월에 367개, 6월에 60개의 채널이 제재를 받았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5월 한 달 동안 전체의 81.7%에 달하는 채널이 무더기로 차단됐다. 차단된 5월 채널의 성향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면, 정부 비판 콘텐츠가 142개로 가장 많았고, 정부 지지(71개), 특정 정치인 지지(58개), 정부 및 특정 정당 동시 비판(53개), 정부 지지 및 특정 정당 비판(43개) 순으로 집계됐다.
특정 진영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다수의 계정을 동원해 자발적인 여론인 것처럼 위장하는 '비진정성 조율 행위'가 무차별적으로 전개되었음을 입증한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인 구글이 자체적인 단속을 실시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플랫폼의 자율 규제에만 맡겨 놓는다면 어렵게 만들어 놓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내기는 어렵다. 알고리즘 뒤에 숨은 여론 조작은 단순한 명예훼손이나 가짜뉴스 유포를 넘어 국가적 의사결정 체계와 민주적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조직적인 외부 세력이 개입했다면 안보 위협에 가깝다.
이제는 우리나라 정부와 학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정부는 플랫폼 기업과의 공조 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와 여론 조작 세력에 대한 법적·제도적 대응 기준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학계 역시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나타나는 지능형 여론 조작의 패턴을 면밀히 분석하고, 국민들의 미디어 리터러시(매체 이해력)를 높일 수 있는 다각적인 연구를 이어가야 한다. 유튜브가 자극적인 선동과 공작의 무대로 전락하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공적 감시 체계를 작동시켜야만, 우리는 비로소 '더 위험해진 바보상자'의 유혹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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