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감독이 ‘혼결’에서 보여준 제작 방식은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영상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시나리오와 인물, 공간을 반복적으로 조정하고 실제 배우의 연기를 기준으로 AI 영상의 표현 범위를 확장했다.
특히 무당 역을 맡은 김현희 배우의 연기를 직접 촬영한 뒤 움직임과 표정, 장면의 리듬과 타이밍을 AI 영상 제작에 반영했다. AI가 배우를 대체하도록 하는 대신 배우의 실제 연기를 중심에 놓고 인물과 배경을 확장한 것이다.
권 감독은 AI를 영화 제작의 주체보다는 감독의 상상력을 구현하는 도구로 바라본다. “AI는 단순히 화면을 생성하는 기술이라기보다 감독이 상상하는 세계를 탐색하는 창작 파트너에 가깝다”며 “카메라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범위를 확장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서의 평가를 AI 기술의 성과에만 두지 않았다. 한국적인 소재와 정서가 해외 심사 과정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의미를 부여했다.
권 감독은 “한국적인 정서와 소재를 담은 작품이 해외 관객들에게도 공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 가장 의미 있게 다가왔다”며 “기술적인 완성도뿐 아니라 이야기의 힘도 함께 평가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혼결’ 역시 기술보다 한국적인 이야기에 무게를 둔 작품이다. 한국 전통 의례인 영혼결혼식을 소재로 공동체가 감춰온 희생과 죄, 그 과정에서 외면된 존재의 목소리를 다룬다.
작품을 관통하는 정서는 ‘한’과 ‘애도’, ‘정의의 회복’이다. 영화 속 소녀의 혼령은 공포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억울하게 희생된 인물을 상징하고, 저승사자는 무너진 질서를 바로잡는 존재로 설정됐다.
권 감독은 “죄는 은폐될 수 있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억울하게 희생된 존재의 목소리가 결국 세상에 닿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AI 영화를 기존 영화와 분리된 새로운 장르로 규정하기보다 영화 제작 환경을 바꾸는 하나의 제작 방식으로 보고 있다. “흑백에서 컬러로,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간 것처럼 AI 역시 영화 제작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술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관객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를 보게 될 것”이라는 게 권 감독의 생각이다.
AI 기술이 확산될수록 감독의 역할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촬영 현장을 지휘하는 역할에서 이야기와 이미지, 배우와 기술을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하는 ‘세계관 설계자’로 역할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AI 영화가 해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 자체보다 문화적 차별성이 중요하다는 판단도 내놓았다. 생성형 AI 기술은 빠르게 평준화될 수 있지만 한국의 무속과 전통 의례, 가족문화와 집단 기억 같은 문화적 배경은 기술만으로 복제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권 감독은 “기술은 세계적으로 평준화될 수 있지만 문화적 정체성은 쉽게 복제할 수 없다”며 “결국 한국형 AI 영화의 경쟁력은 이야기의 뿌리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혼결’은 이 같은 작품 방향을 인정받아 ‘2026 경북 국제 AI·메타버스 영상제’ 개막작으로도 선정됐다. 올해 영상제에는 97개국에서 모두 3403편이 출품됐다.
권 감독은 4일 구미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AI 마스터클래스에도 참여해 ‘혼결’의 기획 과정과 제작 방식, 배우의 실사 연기와 AI 영상을 결합한 사례 등을 소개한다.
향후 국내외 영화제 출품을 이어가면서 한국적인 정서와 장르적 상상력을 결합한 AI 영화 개발도 계속할 계획이다.
권호영 감독은 “AI를 통해 단순히 영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작 환경의 한계로 구현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다”며 “앞으로도 기술보다 이야기와 인간의 감정을 중심에 둔 작품을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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