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년 유산 위에 미래를 짓다…우즈베키스탄의 '제3 르네상스'

  • 이슬람 국가가 아닌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 들어선 이슬람문명센터는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축구장 14개를 합한 크기의 부지에 3000년에 걸친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담았다. 약 1억6180만 달러가 투입된 3층 건물의 연면적은 4만2000㎡를 넘고, 중앙 돔은 65m 높이로 솟아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건물이 보여주려는 것은 과거만이 아니다.

전시는 이슬람 이전의 고대 문명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 이슬람 황금기와 티무르 왕조 시대를 지나 독립 이후의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에 관람객을 기다리는 공간은 ‘새로운 우즈베키스탄 — 제3 르네상스의 토대’다.

3000년의 역사를 돌아본 뒤 도착하는 곳이 미래인 셈이다.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새로운 우즈베키스탄(New Uzbekistan)’의 국가 비전도 바로 이 지점에서 과거와 만난다. 한때 세계적인 수학자와 천문학자, 의학자와 종교학자를 배출했던 땅에서 다시 교육과 과학, 기술 혁신을 일으켜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열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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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의 이슬람문명센터. [사진=이정우 기자]

이슬람문명센터는 그 비전을 공간으로 체현한 상징물이다.

코란에서 과학까지…한 공간에 담은 문명사

센터 한가운데에는 고대 ‘우스만 코란(Uthman Quran)’이 자리한다. 주변에는 수세기에 걸친 이슬람 학문의 역사를 보여주는 필사본과 고고학 유물, 문화유산이 펼쳐진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제1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9~12세기에는 오늘날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세계 학문의 흐름을 바꾼 학자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알콰리즈미는 수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고, 알비루니는 천문학과 자연과학에 업적을 남겼다. 이븐 시나는 의학과 철학에서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2 르네상스’는 티무르 왕조 시대와 연결된다. 15세기 통치자이자 천문학자였던 울루그 베그는 사마르칸트에 천문대를 세우고 정밀한 천문 관측을 이끌었다.

센터는 이들을 종교사의 인물로만 다루지 않는다. 수학과 의학, 천문학, 철학과 종교학을 하나의 지적 문명사로 묶는다.

알콰리즈미의 수학과 이븐 시나의 의학, 울루그 베그의 천문학, 이맘 부하리의 종교학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이유다.

미르지요예프 정부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시하는 것이 ‘제3 르네상스’다.

과거 이 땅에서 세계적 학문이 꽃피었듯이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대학과 연구기관, 인공지능과 첨단기술 분야에서 다시 지적 도약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센터는 역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이면서 동시에 우즈베키스탄이 어떤 미래를 만들겠다는지를 보여주는 국가 선언문인 셈이다.

독립 35주년, 대통령이 다시 꺼낸 ‘문명’

이 같은 메시지는 우즈베키스탄 독립 35주년 기념행사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2026년 우즈베키스탄 독립기념일 행사 초청장 사진이정우 기자
2026년 우즈베키스탄 독립기념일 행사 초청장. [사진=이정우 기자]

독립기념일을 나흘 앞둔 지난 8월28일, ‘뉴 타슈켄트’의 대형 야외 원형극장에는 약 6000명이 모였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경제 발전과 교육, 국가 정체성에 대해 연설한 뒤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유산으로 화제를 돌렸다.

“우리는 이슬람문명센터와 이맘 부하리, 부르하니딘 마르기나니 기념단지와 같은 독창적인 과학·교육 기관들을 건설했습니다.”

말이 끝나자 청중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이 장면은 이슬람 문명이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의 ‘새로운 우즈베키스탄’ 구상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정부가 되살리려는 것은 종교 자체만이 아니다. 이슬람 문명이 과학과 학문, 계몽과 문화 발전을 이끌었던 시대를 현재의 국가 발전 전략과 연결하려는 것이다.

텍사스대학교의 키릴 아브라모프 교수는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이 “종교적 부활, 문화적 회복과 국가 정체성 형성”을 두루 포함하는 다면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그 문화적 회복이 국가의 미래 비전과 결합하고 있다.

독립이 되찾아준 역사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독립기념 연설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독립을 단순히 1991년 시작된 정치적 주권의 역사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국가의 뿌리가 3000년 이상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하며 알콰리즈미와 아흐마드 알페르가니, 알비루니, 이븐 시나, 울루그 베그, 알리셰르 나보이 등을 차례로 언급했다.

“독립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명예와 존엄, 신성한 종교, 모국어, 그리고 잊혀 온 민족적 가치를 되돌려주었습니다.”

이슬람문명센터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센터가 공간을 통해 전하는 이야기는 단순하다.

이 땅에는 한때 찬란한 문명이 있었고, 독립을 통해 그 역사를 다시 찾았으며, 이제 그 유산을 미래 발전의 자산으로 바꿀 차례라는 것이다.

지난 3월17일 공식 개관한 센터의 동선도 같은 메시지를 따른다. 고대 우즈베키스탄에서 출발한 관람객은 이슬람 황금기와 티무르 왕조를 지나 현대의 독립 우즈베키스탄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전시의 종착지는 과거가 아니다.

마지막에는 ‘새로운 우즈베키스탄’과 제3 르네상스가 기다린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이 센터를 제3 르네상스의 토대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과학적이고 세속적이며 현대적인 기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가 독립기념 연설에서 이슬람문명센터와 재건된 이맘 부하리 기념단지를 언급한 직후 청년과 교육, 향후 10년의 국가 발전 구상으로 넘어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앞으로 10년을 ‘민족의 도약’ 시기로 규정하고, 정부가 추진할 7개 국가 프로그램 가운데 첫 번째 과제로 지식과 역량을 국가의 핵심 자산으로 만드는 구상을 제시했다.

과거의 문명과 미래의 인재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고 있는 것이다.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복원’

이러한 국가적 프로젝트는 타슈켄트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마르칸트 인근의 이맘 부하리 기념단지는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독립기념 연설에서 이슬람문명센터와 함께 직접 언급한 또 하나의 상징적 공간이다.

9세기 부하라 인근에서 태어난 이맘 부하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하디스 모음집 가운데 수니파 무슬림들이 가장 권위 있는 자료 중 하나로 평가하는 ‘사히흐 알부하리’를 편찬했다.

우즈베키스탄은 그의 묘역을 대규모로 재건했다.

45헥타르 규모의 단지에는 대형 영묘와 1만명을 수용하는 모스크, 높이 75m의 첨탑 4개, 박물관과 연구·교육시설이 들어섰다.

재건 이후 하루 수용 가능한 방문객은 기존 약 1만2000명에서 6만5000명으로 다섯 배 이상 늘었다.

정부는 주변 호텔과 상업·서비스 시설 조성에도 별도로 5700억 숨, 약 650억원을 투입했다. 4성급 호텔과 3성급 호텔, 가족형 게스트하우스 등이 개발 계획에 포함됐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 5월 초까지 국내외 방문객 100만명 이상이 이 단지를 찾았다.
 
이맘 부하리 기념단지 사진이정우 기자
이맘 부하리 기념단지. [사진=이정우 기자]

타슈켄트의 이슬람문명센터 역시 개관 약 두 달 반 만인 6월1일까지 약 50만명의 국내외 방문객을 맞았다.

두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슬람 문화유산을 성지나 관광지로만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와 교육, 국제교류, 관광산업을 동시에 아우르는 국가 자산으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지에 맞서는 계몽’

우즈베키스탄이 국제사회에 보여주려는 이슬람의 모습 역시 여기에 맞춰져 있다.

정부가 강조하는 핵심은 지식과 관용, 학문과 평화다. 이를 압축한 표현이 ‘무지에 맞서는 계몽(Enlightenment Against Ignorance)’이다.

이맘 부하리 국제과학연구센터 소장인 쇼보실 지요도프 교수는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민족은 일상에서 행복할 때도, 슬플 때도, 운명의 시련을 겪을 때도 언제나 이슬람 철학을 삶의 지침으로 살아왔다”며 “우리는 이슬람을 과학, 창조와 관용의 종교로 설명하는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이 이슬람 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이 “강력한 공공외교 수단이자 소프트파워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구상은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2017년 유엔에서 처음 이슬람문명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할 때부터 제시됐다.

그는 무지와 불관용이 극단주의가 성장할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며 교육과 이슬람의 인본주의적 전통을 통해 이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센터가 상징하는 이슬람 역시 폭력이나 급진주의가 아닌 선과 평화, 지식과 계몽이다.

‘이슬람 국가’ 아닌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은 이제 이 같은 역사적 자산을 외교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필사본 디지털화와 역사 연구, 문화유산 보존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확대하는 한편 타슈켄트에는 이슬람세계교육과학문화기구(ICESCO) 사무소도 문을 열었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당국자들에게 이슬람문명센터를 55개국에 알리고, 뉴욕과 제네바 유엔 사무소와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이맘 부하리와 이맘 마투리디, 이맘 티르미디 등 우즈베키스탄 출신 학자들을 소개하는 행사를 열도록 지시했다.

센터가 개관 직후부터 세계 각국 학자와 언론인, 문화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제포럼의 무대가 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우즈베키스탄 이슬람문명센터에서 2026년 8월 24일부터 29일까지 글로벌 미디어 포럼이 개최되었다 사진이정우 기자
우즈베키스탄 이슬람문명센터에서 2026년 8월 24일부터 29일까지 글로벌 미디어 포럼이 개최되었다. [사진=이정우 기자]

우즈베키스탄이 국제사회에 각인하려는 이미지는 단순한 ‘이슬람 국가’와는 다르다.

학자와 필사본, 천문학과 의학, 수학과 철학을 배출했던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라는 정체성이다.

이는 이슬람권 국가들에는 역사적·문화적 공감대를 제공하면서도 유네스코를 비롯한 세속적 국제기구와 과학·문화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흐름이 우즈베키스탄의 국가 체제를 종교적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과는 구별된다는 점이다.

우즈베키스탄 헌법은 국가를 ‘주권을 가진 민주적·법치적·사회적·세속적 국가’로 규정한다. 제75조는 종교단체와 국가가 분리돼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2025년 법률로 채택된 종교정책 개념 역시 양심의 자유와 국가의 세속적 성격을 재확인했다.

따라서 이슬람문명센터가 국가적 상징으로 부상한 것은 국가의 이슬람화를 의미하기보다 이슬람 문명을 세속국가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와 미래 서사 안에 다시 배치하는 작업에 가깝다.

소련 시대를 거치며 희미해졌던 역사와 문화적 기억을 복원하고, 독립 이후 되찾은 정체성을 국가 발전의 자산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타슈켄트의 거대한 돔 아래에서 3000년의 역사가 끝나는 곳에 ‘제3 르네상스’가 놓인 이유도 그래서다.
우즈베키스탄이 이슬람문명센터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찬란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만이 아니다.

한때 세계의 학문과 문명을 이끌었던 역사를 되찾아, 교육과 과학기술, 혁신으로 다시 한번 도약하겠다는 미래적 선언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이슬람문명센터는 과거를 보존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새로운 우즈베키스탄’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인 셈이다.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의 이슬람문명센터 사진이정우 기자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의 이슬람문명센터. [사진=이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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