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반복되는 빚 탕감…'버티면 된다'는 인식 경계해야

AI를 활용해 그린 이미지 챗GPT
AI를 활용해 그린 이미지 [챗GPT]

정부가 코로나19 시기 빚을 내 버텼지만 장기간 채무를 갚지 못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채무조정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금융권과 공공기관이 보유한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무담보 채권 중 2023년 6월 이전에 발생해 현재까지 지속 중인 장기연체채권이 그 대상이다. 2020~2023년 코로나19 기간 실행된 개인사업자 대출은 358조7000억원 규모로, 이 가운데 미상환 잔액은 43.1%인 154조7000억원이다. 3개월 이상 연체 비율은 미상환 잔액의 4.1%인 6조3000억원 규모다. 

코로나19는 자영업자에게 유례없는 충격이었다. 정부의 영업 제한과 거리두기로 매출이 급감했고, 적지 않은 소상공인이 대출로 임대료와 인건비를 버텼다. 정상적인 영업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던 부채에 대해서까지 개인의 책임만을 요구하는 것도 현실적인 해법은 아니다. 상환 능력을 완전히 잃은 장기 연체자를 그대로 방치하면 금융기관의 추심 비용뿐 아니라 복지 지출과 사회적 비용도 커진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일정한 채무조정 제도를 두는 이유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새도약기금을 통해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장기 연체채권을 사들여 상환 능력이 없는 경우 소각하는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그 선을 어디에 긋느냐다.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갚지 않은 사람과 정말 갚을 능력을 잃은 사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채무조정은 곧바로 ‘빚 탕감’ 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원의 선의를 앞세워 원칙 없는 빚 탕감이 반복된다면 우리 사회의 신용 질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연체하고 버티면 언젠가는 정부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이다. 매출이 줄어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원금과 이자를 갚은 자영업자, 가게를 정리하고 보증금을 털어 빚을 갚은 사람도 적지 않다. 연체한 사람의 원금까지 대폭 깎아주는 정책이 반복되면 성실히 채무를 상환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이 결과적으로 손해를 봤다고 느끼는 순간 금융의 기본인 신용과 약속은 무너진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기존 새도약기금은 상환 능력 심사를 거쳐 채무 소각 여부를 결정하도록 설계돼 있고, 새출발기금 역시 소득과 재산 등을 살펴 상환 능력이 부족한 차주에게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상자산과 비상장주식 등까지 재산 심사에 포함하고, 재산을 고의로 줄이거나 허위 신고하는 사해행위 조사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만큼 정부 스스로도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지원 확대에 앞서 심사 장치부터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 반복적으로 채무조정을 받는 경우에는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채무 탕감만 하고 끝낼 게 아니라 폐업·전직·재창업 지원을 연계해 다시 빚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실 상환자에 대한 보상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정부 역시 이번 취약 차주 지원 방안에서 성실하게 빚을 갚아 온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금리와 보증료를 낮춰주는 인센티브 확대 방침을 밝혔다. 이런 장치는 보다 과감하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 채무를 갚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고, 연체한 사람에게만 지원이 집중된다면 정책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책임을 다한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인식을 없애야 채무조정 정책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얻을 수 있다. 

금융은 결국 약속과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불가피한 실패를 사회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과 갚아야 할 빚을 국가가 대신 없애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원은 절박한 사람에게 정교하게 집중하고, 심사는 엄격하게 하며, 성실 상환자는 확실히 우대해야 한다. 정부의 채무조정이 '재기의 사다리'가 아닌 '버티면 빚을 없애주는 제도'로 인식되는 순간 정책의 신뢰도와 금융 질서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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