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북한산 수묵화 이야기 | 인간·문화·자연] 북한산, 먹빛에 깃든 다석의 얼과 한 화가의 20년 정진

  • 김석환의 실경수묵화에서 만나는 인간의 수행… 겸재의 진경정신과 자연철학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산을 바라보는 인간은 끊임없이 변한다. 젊은 날의 산은 정복의 대상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사색의 대상이 되고, 인생의 깊이가 더해지면 마침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많지만 산을 읽는 사람은 드물고, 산을 그리는 사람은 있어도 산의 정신까지 화폭에 담으려는 사람은 흔치 않다. 북한산을 20여 년 동안 거의 매주 오르며 먹과 붓으로 그 산의 형상과 기운을 기록해 온 화가 김석환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과 마주한다. 인간은 왜 평생 하나의 산을 바라보며 살아가는가.

김석환(1959년생) 작가가 오는 10월 29일부터 11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전북도립미술관 서울 분관에서 ‘김석환 북한산 실경수묵화전’을 연다. 전북도립미술관의 2026년 서울관 선정작가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단순히 북한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재현한 그림 전시가 아니다. 한 인간이 오랜 세월 자연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역사와 지리를 탐구하며, 마침내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만나는 정신적 경지를 찾아온 과정의 기록이다. 특히 북한산을 동서남북 사방에서 바라본 가로 4.2m 규모의 대형 전경 작품들은 이번 전시의 중요한 성취다.
 
김석환 북한산 실경수묵화전 사진한국미술협회
김석환 북한산 실경수묵화전 [사진=한국미술협회]
 
어제 보았던 북한산과 오늘의 북한산이 다르다
김석환의 북한산은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첫째는 한 인간의 오랜 정진이고, 둘째는 겸재 정선으로 이어지는 한국 진경산수의 문화적 전통이며, 셋째는 자연을 통해 인간의 참된 자아를 발견하려는 철학적 성찰이다. 여기에 한국의 위대한 사상가 다석 류영모의 정신세계가 겹쳐진다. 북한산은 다석에게 삶과 사유의 터전이었고 김석환에게는 예술과 수행의 현장이었다. 두 사람은 시대와 표현 방식이 달랐지만 같은 산에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의 근원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김석환은 20여 년 전부터 북한산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산에 오르고 그림 도구를 펼쳐 눈앞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백두대간을 종주했고 낙동정맥을 홀로 걸었으며 일본 북알프스도 종주했다. 수많은 산을 경험한 뒤에도 그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북한산이었다. 백운대와 만경대, 인수봉의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주능선과 비봉능선, 의상능선과 상장능선이 서로 이어지며 변화무쌍한 산세를 만들어 낸다. 같은 봉우리라도 바라보는 위치와 계절, 햇빛과 구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어제 보았던 북한산과 오늘의 북한산이 다르고, 청년의 눈으로 본 산과 노년의 눈으로 본 산이 같을 수 없다.

한 번의 산행은 여행일 수 있고 열 번의 산행은 취미일 수 있지만, 20년의 산행과 사생은 이미 하나의 삶의 방식이며 인간적 정진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작가는 2021년 북한산 실경수묵화전 이후에도 거의 매주 산을 오르며 새로운 그림을 그려왔다. 같은 산을 다시 보고 다시 걸으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형상과 기운을 발견한 것이다. 예술의 완성은 특별한 재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자신이 선택한 길을 지키는 성실함, 그리고 어제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이라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김석환의 그림에는 물처럼 변화하는 붓의 움직임과 산처럼 흔들리지 않는 정진이 함께 존재한다.
 
겸재 정선의 화법을 존중하되 몸으로 체험한 필치도 가미
그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양의 산천을 바라본 겸재 정선의 눈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조선 후기 겸재는 중국의 관념적 산수화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우리 산천의 실제 모습을 자신만의 필법으로 표현해 진경산수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금강전도』와 『경교명승첩』은 우리 땅의 산과 강이 독자적인 예술의 주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성취였다. 김석환 역시 겸재의 진경정신을 자신의 작업에서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밝힌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것은 겸재의 화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이 아니다. 전통을 존중하되 자신의 눈으로 직접 관찰하고 자신의 몸으로 체험한 자연을 자신의 필치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서울의 산을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역사적 공간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연구하면서 서울의 역사와 입지, 지형구조에 관심을 기울였고, 옛 한양의 지도에 나타난 산과 물길, 풍수지리적 관념과 실제 지형의 관계를 살피면서 서울을 둘러싼 산들을 체계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북한산의 봉우리뿐 아니라 능선과 계곡, 성곽과 사찰을 함께 그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산은 자연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역사이며, 사찰은 종교적 공간이지만 자연 속에서 형성된 문화의 기록이다. 성곽은 인간이 쌓았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산의 풍경 일부가 되었다. 자연과 문화, 인간의 흔적이 하나의 화면에서 만나는 것이다.

김석환은 건축가이자 화가이며 시인이다. 건축가는 공간의 구조를 보고 시인은 사물 너머의 의미를 찾으며 화가는 그 구조와 감흥을 선과 면, 먹의 농담과 여백으로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설계도면과 같은 치밀한 구도를 바탕으로 실제 풍경의 균형감을 살리면서도 현장에서 느낀 감동을 시적 울림으로 담으려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현장 작업에 대한 고집이 남다르다. 산을 바라보는 순간의 감각을 빠른 필치로 옮기면서 전통 회화가 중시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추구한다. 그의 화면에서 먹은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다. 진한 먹은 화강암의 무게를 전하고 옅은 먹은 산을 감싸는 공기와 안개를 느끼게 한다. 붓이 힘차게 지나간 자리에서는 암벽의 기세가 살아나고 비워 둔 여백에서는 바람과 구름이 움직이는 듯하다.
 
북한산을 사랑한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사상가 다석 류영모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작품은 북한산을 사방에서 그린 가로 4.2m의 대형 전경들이다. 동쪽에서 바라본 산과 서쪽에서 바라본 산은 같은 북한산이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다. 남쪽과 북쪽에서 바라보면 봉우리의 배열과 능선의 흐름도 달라진다. 보는 위치가 달라지면 산의 형상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인간의 인식에도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누구도 하나의 시선만으로 세계 전체를 소유할 수 없으며,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바꾸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석환이 오랜 세월 북한산의 전모를 그리려 한 노력은 단순한 지형의 기록을 넘어 하나의 세계를 가능한 한 온전하게 이해하려는 지적 탐구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산을 사랑한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정신을 만나게 된다. 다석 류영모(1890~1981)다. 다석은 1935년 북한산 아래 구기동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은거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땅을 일구고 몸을 움직이며 성경과 동양의 고전을 읽고, 인간의 삶과 죽음, 하느님과 우주의 근원을 사유했다. 그에게 농사는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으로 자연의 질서를 배우고 노동을 통해 삶의 진실을 확인하는 수행이었다. 그는 구기동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며 오랜 세월 사색했고, 비봉을 비롯한 주변 산세와 자연은 그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다석과 김석환을 잇는 연결고리는 단순한 상상이나 관념이 아니다. 2020년 5월 25일 아주경제의 다석 연재 제47편에는 김석환이 그린 북한산 비봉 일대의 그림이 실렸다. 다석의 구기동 집인 뇌곡산장이 있던 자리에서 바라본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이 사실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김석환은 다석이 살았던 공간과 그가 바라보았던 산을 실제로 화폭에 옮긴 것이다. 작가 역시 이러한 역사적 인연을 알고 있으며, 다석사상의 혼이 북한산에 깃들어 있다는 인식으로 자신의 그림을 바라본다. 같은 산을 사랑한 두 인간의 삶이 한 장의 수묵화에서 만나는 셈이다.

다석은 북한산 자락에서 흙을 일구며 진리를 탐구했고, 김석환은 그 산을 오르며 먹과 붓으로 자연의 정신을 탐구했다. 한 사람은 농사와 사색을 통해, 다른 한 사람은 산행과 회화를 통해 자신을 닦았다. 다석의 사유가 철학적 언어로 표현되었다면 김석환의 사유는 산의 형상과 먹빛의 변화로 드러난다. 두 사람의 삶을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자연을 삶의 스승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깊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다석사상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얼나'다. 그는 인간이 육체적 욕망과 자기중심적 집착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라 그 너머의 참된 정신적 자아를 깨달아야 할 존재라고 보았다. 몸의 욕망에 사로잡힌 '제나'를 넘어 참된 '얼나'를 발견하는 일이 인간의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그의 얼나사상은 기독교적 영성에 뿌리를 두면서도 유교와 불교, 도가의 사유를 깊이 받아들인 독창적인 한국 철학이다.

이러한 사유를 김석환의 수묵화에 비추어 보면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산을 처음 오를 때 인간은 정상에 도달하려 한다. 얼마나 높이 올랐는지,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얼마나 많은 봉우리를 정복했는지를 따진다. 그러나 같은 산을 수십 년 동안 오르는 사람에게 정상은 더 이상 최종 목적지가 아닐 수 있다. 그는 걸음의 리듬을 느끼고 나무의 변화를 살피며 바위와 바람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산을 정복하려는 마음에서 산과 함께 존재하려는 마음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는 다석이 추구한 자기중심적 자아의 극복과도 철학적으로 통한다.

다석은 또한 '없이 계시는 하느님'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눈에 보이는 형상과 소유의 관념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를 사유했다. 수묵화의 여백과 다석의 신관을 곧바로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두 세계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 수묵화에서 여백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보이는 형상이 미처 담아내지 못한 기운과 울림이 머무는 자리다. 인간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얻었느냐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가 삶의 깊이를 결정하는 순간이 있다.
 
건축가이자 화가·시인인 김석환의 그림세계
김석환이 같은 산을 반복해서 그리는 행위는 단순한 풍경의 축적을 넘어 자기 자신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과정으로 읽힌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인간의 마음은 매번 다르다. 그래서 같은 산을 그린 수많은 그림은 서로 다른 산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서로 다른 시간 속의 자기 초상일 수 있다. 다석이 하루하루를 하나의 온전한 삶으로 여기며 성실한 수행을 강조했다면, 김석환은 한 번 한 번의 산행과 붓질을 통해 자신이 선택한 예술의 길을 걸어왔다. 철학의 언어와 회화의 언어는 다르지만 정진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김석환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1959년 태어나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건축가이자 화가, 시인이다. 도시건축 분야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1994년 터·울건축을 개설했으며, 서울산업대학교와 광주대학교, 삼육대학교 등에서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건축 작품으로는 청풍헌, 목마도서관, 도봉목재문화체험관 등이 있으며, 건축과 회화,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건축작품집 『본연성, 덤덤함』과 『한국전통건축의 좋은 느낌』, 『현장의 필치로 담아낸 북한산과 한양도성』, 『현장의 필치로 담아낸 북한산』, 시집 『삶 그리고 산책』 등을 펴냈다.

그의 회화 활동도 오랜 역사를 지닌다. 1995년 서울 청화랑에서 첫 회화전을 열었고, 2014년 서울도서관의 '북한산과 한양도성전', 2016년 삼육대학교 박물관의 '북한산전', 2020년 '북한산과 한양도성전', 2022년 '서울의 산하전', 2023년 '인왕산·백악산·북한산전' 등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2026년에는 겸재미술대전에서 입선했다. 건축가로서 공간을 설계하고 시인으로서 언어를 다듬으며 화가로서 자연의 형상을 기록해 온 삶은 어느 한 분야의 성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서로 다른 세 영역이 그의 내부에서 만나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형성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우리는 이러한 예술가의 삶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잃어버리기 쉬운 중요한 가치를 발견한다. 바로 한 가지 일을 오래도록 사랑하는 능력이다. 오늘의 세상은 빠른 성과를 요구한다. 인공지능은 순식간에 수많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디지털 기술은 자연의 모습을 정교하게 재현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한 인간이 20년 동안 같은 산을 오르며 경험한 계절의 변화와 육체의 피로, 감탄과 고독, 기다림의 시간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기술은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지만 그 이미지에 어떤 삶의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김석환의 현장 수묵화가 인공지능 시대에 오히려 새로운 의미를 갖는 이유다.

우리는 자연을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시대를 살아왔다. 산은 개발의 대상이 되고 강은 이용의 대상이 되었으며 숲은 경제적 가치로 평가되곤 했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이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고 살아가며 마침내 돌아가는 생명의 터전이다. 문화 역시 자연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산수화와 시조, 사찰과 정원, 마을과 도시에는 자연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살아온 선조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북한산의 바위와 능선이 자연이라면 그 산을 노래한 시와 그린 그림은 문화이며, 그 산을 오르며 자신을 성찰하는 존재는 인간이다.
 
먹빛의 깊은 곳에서 문화를 만나고, 마침내 인간을 만나다
인간과 문화와 자연은 따로 떨어진 세 개의 세계가 아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삶을 이루는 존재들이다. 나는 이것을 인문자의 정신이라고 부르고 싶다. 김석환의 수묵화는 바로 그 세 세계를 이어주는 예술적 통로다. 그의 산에는 자연의 형상이 있고 조선의 진경산수로 이어지는 문화의 기억이 있으며, 수십 년 동안 자신을 단련해 온 인간의 시간이 스며 있다. 여기에 다석이 북한산 자락에서 평생 추구했던 참된 인간의 길, 얼나의 정신이 하나의 철학적 울림으로 더해진다.

전북도립미술관 서울 분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러한 예술적 성취를 더 넓은 사회와 나누는 자리다. 지역의 문화예술 기반이 서울의 관객들과 만나고, 한 예술가가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자연에 대한 사랑이 새로운 공감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북한산의 웅대한 실경과 살아 숨 쉬는 현장감, 그리고 붓끝에 담긴 기운생동의 감흥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보고 느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도 함께 느끼게 하고 싶다는 소망이다.

좋은 예술은 인간을 자연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자연의 존재를 다시 발견하게 한다. 좋은 예술가는 세상을 자기 작품 속에 가두지 않는다. 작품을 통해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도록 돕는다.

북한산은 오늘도 서울의 북쪽에 서 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산을 오르내리고 계절마다 숲의 색깔이 바뀌며 화강암 봉우리에는 아침과 저녁의 빛이 다르게 내려앉는다. 한때 다석 류영모가 그 산 아래에서 흙을 일구며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했다면, 오늘의 김석환은 그 산을 오르며 먹을 갈고 붓을 든다.

그의 그림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북한산의 봉우리만이 아니다. 하나의 산을 오래 사랑한 인간의 성실함, 우리 산천을 자신의 눈으로 그려 온 문화의 정신, 그리고 자연 앞에서 자신을 비우며 더 큰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영혼의 움직임이다.

산은 말이 없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가르친다. 김석환의 북한산은 이제 단순한 풍경을 넘어 한 인간이 평생 써 내려가는 묵색의 자서전이 되고 있다.

그 먹빛의 깊은 곳에서 우리는 산을 만나고, 문화를 만나고, 마침내 인간 자신을 만난다.

그것이 인문자의 북한산 수묵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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