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무엇으로 위대해지는가. 오래된 건물인가, 세계 대학 순위인가, 아니면 졸업생 가운데 대통령과 재벌 총수가 몇 명이나 나왔느냐는 것인가. 대학의 진정한 위대함은 그 대학이 길러낸 사람들이 자기 시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며, 그들이 남긴 정신이 다음 세대에 어떤 미래를 열어주었느냐에 달려 있다.
일본에는 와세다대학교와 게이오기주쿠대학교가 있다. 한국에는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가 있다. 네 대학은 각각 다른 역사와 건학 정신을 가지고 있지만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국가가 설립한 관립대학이 아니라 민간의 교육적 열망과 개척정신에서 출발했고, 오랫동안 서로 경쟁하면서 정치와 경제, 언론과 문화, 학문과 산업을 이끌어왔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와세다와 게이오의 경쟁을 '소케이전(早慶戰)'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고려대와 연세대의 경쟁을 '연고전' 또는 '고연전'이라고 부른다. 이름을 어느 대학부터 부르느냐에도 자존심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네 대학을 단순히 스포츠 라이벌이나 명문 사학의 경쟁 구도로만 바라본다면 그 속에 숨어 있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거대한 흐름을 놓치게 된다.
그 역사의 중심에는 일본 근대화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와 정치가 오쿠마 시게노부가 있고, 한국에는 민족교육의 길을 개척한 인촌 김성수와 연희전문의 발전에 헌신한 호러스 언더우드 가문이 있다. 산업의 세계로 눈을 돌리면 삼성의 창업자 호암 이병철과 이건희 회장, 그리고 이재용 회장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나타난다.
고려대와 와세다 관계자들이 도쿄서 만난 이유
지난 10월 17일 일본 도쿄에서는 고려대와 와세다대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와세다대 개교 144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열린 교류 환영 만찬이었다. 양교는 오랜 인연을 돌아보면서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과 연구, 학생 교류를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며칠 앞서 서울에서는 고려대·연세대·와세다대·게이오대가 함께하는 제22회 한일 밀레니엄 포럼도 열렸다.이어 18일 와세다대에서는 제61회 홈커밍데이 기념식이 열렸다. 한국의 고려대 관계자들을 비롯해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와세다대 교우들도 참석해 모교의 역사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했다. 학교 측은 2032년 개교 150주년을 향한 기념사업과 발전기금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약 70만 명에 이르는 교우들의 관심과 참여를 요청했다. 모교에서 받은 배움과 기회를 다음 세대에 돌려주자는 취지였다.
이날 취임 한 달을 맞은 혼마 다카유키(本間敬之) 신임 총장은 고려대와 와세다대의 관계를 특별한 인연으로 평가하면서, 양교의 협력을 고려대·연세대·와세다대·게이오대의 네 대학으로 넓히고 다시 아시아·태평양의 대학 네트워크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 장면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00여 년 전 일본에서 근대 학문을 배워 한국의 교육과 산업을 일으킨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 지성들이 함께 AI 시대의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네 대학의 역사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후쿠자와와 오쿠마, 일본 근대화의 두 갈래
일본의 근대 사학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인물이 후쿠자와 유키치다. 그는 1858년 게이오기주쿠의 뿌리가 되는 교육기관을 세웠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맞기 10년 전의 일이었다. 후쿠자와는 서양의 학문과 제도를 배우지 않고서는 일본이 근대국가로 성장할 수 없다고 보았다.그의 대표 저서 『학문의 권장』은 근대 일본의 지적 각성을 상징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신분의 높고 낮음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사상이 그 중심에 있었다. 게이오의 건학 정신인 '독립자존(獨立自尊)'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후쿠자와의 사상을 무조건 찬양할 수는 없다. 그의 문명론에는 서구 중심의 발전관이 강하게 작용했고, 아시아를 바라보는 인식에도 제국주의 시대의 한계가 나타났다. 근대화의 선구자였다는 평가와 제국주의적 역사관에 대한 비판은 함께 살펴야 한다.
게이오보다 24년 늦은 1882년, 오쿠마 시게노부는 도쿄전문학교를 설립했다. 이것이 오늘날 와세다대학교의 출발이다. 오쿠마는 정치가이자 교육자로서 학문의 독립과 실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학문,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학문이 와세다의 이상이었다.
두 대학은 근대 일본의 서로 다른 기질을 상징하게 되었다. 게이오는 독립자존과 실학,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대학으로, 와세다는 자유로운 학풍과 정치·언론·문학 분야의 활발한 참여로 명성을 쌓았다. 게이오가 경제계의 인맥과 결속으로 유명했다면 와세다는 정치와 언론, 대중문화의 역동성으로 주목받았다. 물론 이는 오랜 세월 형성된 일반적인 이미지일 뿐, 두 대학의 실제 학문과 인재를 단순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쟁의 성격이다. 두 대학은 상대를 무너뜨리기보다 서로의 존재를 통해 성장했다. 스포츠에서는 이기려고 경쟁했지만 학문과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오늘날 한국 대학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인촌 김성수, 와세다에서 민족교육의 길을 찾다
한국과 와세다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인촌 김성수다. 인촌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근대 학문을 공부했다. 와세다대에서 수학한 뒤 귀국하여 교육과 언론, 산업에 참여했다. 중앙학교를 인수해 민족교육의 기반을 확충했고, 경성방직의 설립에 참여했으며, 1920년 동아일보 창간을 주도했다. 1932년에는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해 학교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보성전문학교는 훗날 고려대학교로 발전했다.인촌의 행적을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은 교육과 경제, 언론을 통해 민족사회의 역량을 키우는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학교는 사람을 기르고, 기업은 경제적 토대를 만들며, 신문은 사회의 공론장을 형성한다. 근대국가를 지탱하는 세 가지 축이다.
그가 일본에서 배운 근대 학문을 한국의 교육기관과 산업 발전에 활용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일본의 근대교육을 접하고 돌아와 조선 사회의 발전에 참여한 것이다.
그러나 인촌의 생애를 평가할 때 공적만 기록해서는 안 된다. 일제강점기 후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역사적 판단과 그에 따른 서훈 취소 문제 역시 엄중한 사실이다. 교육과 언론에 기여한 공적은 공적대로, 식민지 말기의 잘못은 잘못대로 기록해야 한다. 역사적 인물의 공과를 함께 보는 것이야말로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언론의 자세다.
인촌과 함께 와세다에서 공부한 현상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교육자이자 사상사 연구자로서 보성전문학교와 고려대학교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 근대교육의 형성 과정에서 일본 유학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인물이다.
고려대학교의 뿌리는 1905년 이용익이 설립한 보성전문학교에 있다. 인촌이 처음부터 세운 학교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민족교육기관을 인수해 발전시켰다는 점을 정확히 기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세대의 교육자와 학생, 후원자들이 힘을 보탰다.
그렇게 형성된 고려대의 학풍에는 민족적 자존과 현실 참여의 전통이 자리 잡았다. 자유·정의·진리라는 교훈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대학이 사회 앞에서 지켜야 할 약속이다.
오늘날 고려대와 와세다대가 오랜 우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두 학교 사이에 단순한 교환학생 프로그램 이상의 역사적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의 복잡한 역사, 근대교육의 수용, 해방 이후의 교류가 겹쳐 있는 관계다. 그렇기에 양교의 우정은 과거를 미화하는 우정이 아니라 역사를 성찰하면서 미래를 함께 만드는 우정이어야 한다.
호암 이병철과 이건희, 와세다에서 세계의 삼성을 꿈꾸다
와세다와 한국의 인연은 교육과 언론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 산업화의 역사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대표적인 사례가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과 그의 아들 이건희다.
이병철은 1930년 와세다대 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했다. 다만 졸업하지는 않았다. 1934년 중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따라서 그를 와세다 졸업생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는 와세다에서 수학한 기업인이다.
이건희는 아버지와 달리 1965년 와세다대 상학부를 졸업했다. 이병철의 권유가 아들의 와세다 유학에 영향을 미쳤다는 보도도 있다. 이건희는 훗날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공로 등을 인정받아 2010년 모교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두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일본에서 배운 근대적 산업과 경영의 지식은 한국 기업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호암은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무역업에서 출발한 삼성은 식품과 섬유, 금융과 전자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그 과정에서 이병철은 인재를 중시했고, 기업의 존재 이유를 국가와 사회에 대한 기여에서 찾으려 했다. '사업보국'과 '인재제일'은 그의 경영철학을 대표하는 말이다.
이건희는 아버지가 일으킨 기업을 세계적인 기술기업으로 바꾸었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은 양적 성장에 안주하던 조직을 질적 경쟁력 중심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였다. 반도체와 전자, 디자인과 브랜드 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그는 일본 기업을 중요한 학습 대상이자 경쟁 상대로 바라보았다.
물론 삼성의 성취를 와세다 교육의 결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기술자와 연구자, 생산현장의 노동자, 전문경영인의 노력과 한국의 산업정책, 세계시장의 변화가 함께 작용했다. 그러나 이병철과 이건희가 일본에서 수학하고 일본 산업을 관찰했던 경험이 경영의 시야를 넓히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와세다에서 공부한 한국 기업인도 이들만이 아니다. 롯데의 신격호, 효성의 조석래, 코오롱의 이동찬 등 여러 기업인이 와세다에서 공부했다. 포항제철을 이끈 박태준 역시 와세다에서 수학한 이력이 있다.
이들의 삶은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근대 한국의 기업가들은 일본의 기술과 산업, 경영제도를 배우면서도 궁극적으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을 찾았다. 배움은 모방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진정한 성취는 모방을 넘어설 때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호암의 사업보국과 이건희의 신경영은 한국 산업사의 서로 다른 두 단계를 상징한다. 하나는 산업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재용은 왜 와세다가 아닌 게이오를 선택했을까
삼성가의 일본 대학 인연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3대에 이르는 유학의 흐름이다.할아버지 이병철은 와세다에서 공부했고, 아버지 이건희는 와세다를 졸업했다. 그런데 손자인 이재용은 와세다의 오랜 라이벌인 게이오대학으로 향했다.
이재용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1995년 일본 제조업의 산업공동화 문제를 다룬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에서도 수학했다.
이 선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재용의 게이오 유학에는 이건희의 권유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그 구체적인 의도와 판단 과정을 당사자의 직접적인 설명 없이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경영전략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만한 점이 있다.
와세다에서 형성된 아버지 세대의 지적·인적 기반을 이어받으면서, 게이오라는 또 다른 네트워크를 통해 일본 경제계와 산업계를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대학의 학풍과 인맥을 경험하는 일은 국제경영에서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특히 이재용이 연구한 일본 제조업의 산업공동화 문제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조업이 해외로 이동하면서 국내 산업의 기반이 약해지는 현상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역시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첨단소재 산업에서 해외투자와 국내 산업생태계의 균형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삼성 3대의 일본 대학 인연을 단순한 학벌의 역사로 볼 수 없는 이유다.
할아버지 시대에는 근대산업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 시대에는 일본 기업을 따라잡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 했다. 손자 시대에는 글로벌 공급망과 기술패권, 인공지능과 반도체 생태계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지식의 내용도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이름이 기업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명문대 졸업장이 경영능력이나 사회적 책임의 증명서가 될 수도 없다. 경영자의 진정한 평가는 기업의 경쟁력뿐 아니라 혁신과 고용, 법과 윤리, 사회적 책임을 얼마나 충실히 실천했느냐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날 이재용에게 주어진 과제 역시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을 이끄는 데 그치지 않는다. AI 시대에 기술을 인간의 삶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 성과를 사회와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일이다.
고려대와 연세대, 한국 근대교육의 두 갈래
일본에 와세다와 게이오가 있다면 한국에는 고려대와 연세대가 있다.그러나 네 대학의 역사적 성격을 단순히 일대일로 대응시킬 수는 없다. 일본의 두 대학이 메이지 시대의 근대화 과정에서 출발했다면, 한국의 두 대학은 개항과 식민지 지배, 민족교육과 기독교 선교, 해방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훨씬 복잡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는 1905년 이용익에 의해 설립되었다. 한국인이 주체가 되어 근대적 고등교육을 발전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연세대는 1885년 시작된 광혜원·제중원의 의학교육 전통과 1915년 설립된 조선기독교학교, 곧 연희전문의 교육 전통이 결합해 발전했다. 오늘날의 연세대학교는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의 통합으로 탄생했다.
두 대학은 설립 배경부터 달랐다.
고려대에는 민족교육과 자주적 근대화의 열망이 강하게 작용했다. 연세대에는 기독교적 교육이념과 서구 근대학문, 의학과 국제교류의 전통이 깊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고려대가 서구 학문에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고, 연세대가 민족적 자각과 독립운동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연희전문과 세브란스 출신 인물들 역시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과 근대학문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 대학의 역사는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했지만 한국의 근대화라는 커다란 흐름에서 만났다.
이러한 역사적 차이는 두 대학의 교풍에도 영향을 주었다.
고려대는 민족적 자존과 단결, 사회 참여의 이미지를 강하게 발전시켰다. 연세대는 개방성과 국제성, 기독교적 봉사정신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 역시 학교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어느 한 대학을 민족적이고 다른 대학을 국제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두 대학이 서로 경쟁하면서 한국의 고등교육 수준을 높여왔다는 사실이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은 그 상징이다. 운동장에서는 서로 승리를 외치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학문과 연구, 사회적 책임을 놓고 경쟁한다. 때로는 협력도 한다.
일본의 소케이전과 한국의 연고전은 바로 이런 점에서 닮았다.
명문대학의 경쟁은 상대방을 패배시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경쟁을 통해 서로 더 나은 대학이 되고, 그 성과를 사회에 돌려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네 대학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한일 관계
이제 다시 2026년 10월의 도쿄로 돌아가 보자.지난 17일 열린 고려대와 와세다대의 교류 만찬은 단순한 대학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와세다대는 이 자리에서 양교의 오랜 교류를 돌아보았고, 특히 지난해 별세한 최상영 고려대 일본교우회 명예회장의 공헌을 기렸다. 최 명예회장은 와세다대 학생들에게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로 소개됐다. 대학 간 우정이란 결국 제도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헌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욱 주목할 것은 10월 13~14일 서울에서 열린 제22회 한일 밀레니엄 포럼이다. 이 포럼에는 고려대와 연세대, 와세다대와 게이오대가 함께 참여했다. 논의의 중심에는 AI 시대에 대학이 무엇을 변화시키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혼마 다카유키 와세다대 신임 총장은 18일 인터뷰에서 이러한 네 대학의 협력을 한일 양국을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넓혀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과 호주 등의 대학이 참여하는 환태평양대학협회(APRU)와 같은 국제 네트워크도 그가 주목하는 협력의 무대다. 이는 한일 대학 간의 전통적 우정이 새로운 국제 지식공동체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네 대학의 역사적 경쟁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19세기 일본의 근대교육이 서구의 과학과 산업을 받아들이는 데 집중했다면, 20세기 한국의 근대교육은 식민지의 제약을 넘어 민족의 역량을 키우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끄는 데 기여했다.
그렇다면 21세기 AI 시대의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는 기술을 얼마나 빨리 개발하느냐만으로 대학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지는 않는지, 노동과 교육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함께 연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혼마 총장은 AI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대학이 그 기술의 올바른 활용을 가르치는 동시에 AI를 넘어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후변화와 에너지, 세계적 갈등 등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어 서로 배우고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대학의 역할을 기술교육이나 취업 준비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과 사회, 자연의 문제를 함께 탐구하는 데서 찾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은 반도체와 제조업, 디지털 인프라, 문화콘텐츠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정밀제조와 소재·부품, 로봇공학, 기초과학과 장기적인 산업기술 축적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두 나라의 대학이 이러한 강점을 연결한다면 AI 시대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어갈 수 있다.
예컨대 고려대와 연세대의 AI·의료·반도체 연구역량에 와세다와 게이오의 로봇공학·제조기술·의학·사회과학 연구역량을 결합하는 것이다. 네 대학이 공동연구와 학생 교류를 넘어 산업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증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도 있다.
고령화 사회의 돌봄 로봇,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술, 지역 의료의 혁신, 산업재해 예방, 환경과 에너지 문제 등은 한일 양국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여기에서 대학의 경쟁은 협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목적이다. 인간을 대신하는 기술보다 인간을 돕는 기술, 사회를 분열시키는 기술보다 공동체를 연결하는 기술, 자연을 파괴하는 기술보다 자연과 공존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진정한 기술 강국은 기술을 잘 만드는 나라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은 그 기술을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아는 나라다.
이 원칙은 기업에도 적용되지만 대학에는 더욱 절실하다.
인촌과 호암의 시대를 넘어, 인간과 문화와 자연의 대학으로
인촌 김성수와 호암 이병철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인촌은 교육과 언론, 산업을 통해 근대사회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참여했다. 호암은 기업을 일으켜 한국 산업화의 한 축을 형성했다. 두 사람 모두 일본의 근대교육을 경험했지만 각자의 시대에서 선택한 길은 달랐다.
이들의 공과를 역사적 사실에 따라 엄정하게 평가하면서도, 우리가 오늘날 다시 생각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배움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후쿠자와가 강조한 독립자존, 오쿠마가 추구한 학문의 독립과 사회적 활용, 고려대의 자유·정의·진리, 연세대의 진리와 자유는 서로 다른 역사에서 태어났지만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교육은 인간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자유는 책임과 떨어질 수 없다. 학문의 자유에는 진실을 탐구할 책임이 따르고, 기업의 자유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며, 대학의 자율성에는 공공에 기여해야 할 의무가 따른다.
우리는 이제 AI가 지식의 생산과 유통, 교육과 연구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학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기관에 머문다면 그 존재 이유는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미래의 대학은 지식을 가르치는 곳을 넘어 지식의 의미를 묻는 곳이어야 한다.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뿐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인간이 기계보다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가를 넘어 인간만이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탐구해야 한다.
이 점에서 네 대학은 새로운 역사적 책무를 갖는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한국 사회의 지적 양심과 미래를 이끌어야 하고, 와세다와 게이오는 일본 사회의 혁신과 성찰을 선도해야 한다. 나아가 네 대학은 한일 양국의 역사적 갈등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협력의 길을 열어야 한다.
과거를 잊지 않는 것과 미래를 함께 만드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를 정확하게 기억할 때 더욱 깊은 신뢰가 형성된다.
지난 세기의 대학들이 국가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끌었다면, 새로운 세기의 대학들은 인간과 기술, 문화와 자연이 공존하는 문명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18일 와세다대 홈커밍데이에서 소개된 2032년 개교 150주년 기념사업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학의 발전기금은 단순히 시설을 확충하거나 학교의 명성을 높이기 위한 자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미래세대의 배움을 지원하고 새로운 연구를 가능하게 하며,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혼마 총장은 개교 150주년을 대학 발전의 최종 목표로 보지 않고, 2050년까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대학으로 발전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약 70만 교우들의 경험과 지혜를 후배들에게 연결하는 일 역시 중요한 과제로 강조했다. 대학의 역사는 졸업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졸업생들이 사회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을 다시 모교와 다음 세대에 돌려줄 때 대학은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된다.
인간은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꿈을 꾸며 살아간다. 밥은 생존의 토대이고, 일은 세상에 기여하는 통로이며, 꿈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인간의 의지다.
대학은 이 세 가지를 함께 가르쳐야 한다. 밥을 벌 수 있는 능력만이 아니라 보람 있게 일하는 지혜를, 그리고 자신과 공동체의 미래를 꿈꾸는 용기를 길러야 한다.
와세다와 게이오, 고려대와 연세대
네 대학이 진정으로 경쟁해야 할 대상은 서로의 대학 순위가 아니다. 인간을 더 자유롭고 존엄하게 만들고, 문화를 더 풍요롭게 하며, 자연과 더 조화롭게 살아가는 새로운 문명을 누가 먼저 실천하느냐에 있다.인촌과 호암이 살았던 시대에는 근대교육과 산업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 절실했다. 이건희의 시대에는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 과제였다. 이제 이재용과 다음 세대가 살아갈 시대에는 기술의 세계적 경쟁력을 넘어 인간과 사회를 위한 기술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2026년 가을, 도쿄에서 이어진 고려대와 와세다의 우정은 그래서 과거의 추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고려대와 와세다의 인연이 연세대와 게이오를 아우르고, 다시 아시아·태평양의 지식공동체로 확장된다면 한일 양국은 과거의 경쟁을 미래의 협력으로 승화시키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100년의 인연은 다음 100년의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
좋은 대학은 뛰어난 인재를 길러낸다. 위대한 대학은 그 인재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도록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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