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헤이지니 전 직원이 아직 받지 못한 것

  • 정서적 인정·분노 반추로 살펴본 피해 인정과 감정적 회복의 차이

사진유튜브 채널 헤이지니 Hey Jini 영상 캡처
[사진=유튜브 채널 '헤이지니 Hey Jini' 영상 캡처]

인기 키즈 크리에이터 헤이지니(강혜진)의 회사에서 근무했던 전 직원 A씨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A씨는 장시간 노동으로 건강이 나빠졌고, 산업재해 신청 과정에서도 회사 측과 갈등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헤이지니 측은 근무 시간 조정과 휴직, 주거비 지원 등 필요한 배려를 제공했으며 산재 신청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설명이 엇갈리는 가운데 A씨는 통화 녹취와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 등 자료를 추가로 공개했다.

사실관계는 계속 검증돼야 하지만, A씨가 반복해 강조하는 내용에는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자신이 겪은 고통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 오랜 친구가 직장 동료가 됐을 때

A씨는 헤이지니와 오랜 친구 사이였다고 밝혔다. 2016년 말 중국어 채널 크리에이터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이듬해 회사에 합류했지만, 실제로는 영상 제작과 운영에 필요한 여러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고.

하루 최대 16시간씩 일했고, 주말과 명절에도 업무를 수행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회사 측은 업무를 협의해 진행했으며 근무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었다는 입장이다.

눈여겨볼 건 두 사람의 기존 관계다. 일반적인 직장 관계에서는 서로에게 업무상 책임과 의무를 기대한다. 하지만 오랜 친구 사이에서 고용관계가 형성되면 기대의 범위도 달라질 수 있다. 업무상 책임뿐 아니라 자신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의 이해와 배려까지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런 기대가 어긋났다고 느끼면 갈등은 근로 조건의 문제를 넘어 관계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정말 아픈 사람인지 의심된다"는 말

통화 녹취는 A씨가 문제 삼는 게 근무 조건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A씨는 휴직 기간 여행을 다녀온 일을 두고 회사 측이 산재 관련 의견서에 건강 상태를 의심하는 문구를 넣었느냐고 헤이지니에게 물었다. A씨는 의사가 여행을 권고했고, 회사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헤이지니가 해당 문구를 넣었다고 답하자 A씨는 "네 생각 잘 알았다"는 말을 남기고 통화를 마쳤다.

산재 심사 과정에서 이뤄지는 회사의 의견 제출을 부당하다고 볼 순 없다. 다만 그 판단이 A씨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지 살펴볼 만하다.

아픔을 호소했는데 상대가 의심한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고통이 부정당했다는 생각을 넘어, 자신의 말이 신뢰받지 못한다는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

더구나 헤이지니와 A씨는 오랜 친구 사이였다. 낯선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의심하는 것과 가까운 사람이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건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자신이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치료 과정까지 알고 있다고 믿었던 상대라면 더욱 그렇다.

A씨에겐 해당 문구가 산재 심사를 위한 회사의 의견으로만 느껴지지 않았을 수 있다. 자신을 이해해줄 거라 믿었던 사람이 오히려 자신을 의심하는 쪽에 섰다고 느끼면, 쌓여왔던 불만이 관계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까지 번졌을 수 있다.
 
▲ 회사는 지원을, 직원은 경험을 말한다

양측의 입장을 비교하면 설명의 초점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키즈웍스는 A씨에게 연봉 인상과 상여금 지급, 휴직 허용, 주거지 임차보증금 지원 등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산재 신청과 관련해서도 외부 공인노무사를 소개하는 등 절차를 도왔다는 입장이다.

반면 A씨는 연봉 인상률이 회사 설명과 다르며, 상여금 역시 자신만을 위한 특별 지원금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재택근무를 한 적이 없다고도 밝혔다.

A씨가 회사의 모든 지원 사실을 부인한 건 아니다. 휴직과 임차보증금 지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근무 환경이나 산재 신청 과정의 문제를 해소하지는 못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여기에는 서로 다른 평가 기준이 존재한다. 회사는 어떤 조치를 했는지 설명하고, A씨는 그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차이는 정서적 인정(Emotional Validation)이라는 개념으로 살펴볼 수 있다. 상대의 경험과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이 발생한 맥락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상대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거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A씨는 "회사가 일부 편의를 제공했다는 사실과 실제로 제가 어떤 환경에서 근무했는지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택근무나 근무 시간 조정이 가능했다는 회사 측 설명뿐 아니라, 실제 근무 과정에서 제가 경험했던 상황도 함께 고려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양측이 자신의 경험과 행동만을 근거로 상대를 평가한다면,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 '좋은 사장'이라는 이미지가 불편했던 이유

A씨는 폭로 배경을 설명하면서 헤이지니가 KBS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했던 일을 언급했다. 방송에서 직원들에게 야근을 시키지 않는 사장으로 소개된 모습이 자신이 겪은 현실과 달랐다는 것이다.

 
사진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방송 캡처
[사진=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방송 캡처]

어떤 사람이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믿고 있는데, 그 일의 상대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면 어떨까. 자신이 알고 있는 모습과 대중이 받아들이는 모습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 그 간극은 또 다른 불공정으로 느껴질 수 있다.

A씨는 최초 폭로에서 특정인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근무 환경과 산재 신청 과정 등을 알리기 위해 글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적어도 그가 직접 설명한 폭로의 목적은 자신의 경험을 공적인 영역에 알리는 데 있었다. 그 행동에 어떤 감정과 기대가 함께 들어 있었는지는 별개지만.
 
▲ 산재 인정으로 끝나지 않은 이유

제도적 인정은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라 피해를 판단하는 일이다. 관계적 인정은 자신이 겪은 일을 상대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에 관한 문제다.

A씨가 산재를 인정받았어도 사내에서 받은 상처는 봉합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일에 사과가 없거나, 늦거나, 형식적이면 피해자는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내 고통이 아직 접수되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선 분노 반추가 일어날 수 있다. 억울했던 장면, 모욕당했던 말, 부당했던 순간을 계속 되씹는 과정이다. 같은 장면을 계속 되감으면 감정은 식지 않는다. 사람의 뇌는 반복해서 떠올린 일을 현재형처럼 느낀다.

 
사진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방송 캡처
[사진=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방송 캡처]

미완의 심리적 종결 문제도 겹친다. 법적 절차는 끝났지만, 피해자의 마음속에서는 사건이 아직 닫히지 않은 상태다. 설명되지 않은 이별, 사과받지 못한 상처, 정리되지 않은 배신은 머릿속에서 계속 열린 창으로 남는다. 닫히지 않은 창은 작은 바람에도 덜컹거린다. 전 사장이 대중 앞에 나오는 장면, 웃는 장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이어가는 장면은 A씨에게 아직 닫히지 않은 창문을 다시 흔드는 바람이었을 수 있다.
 
▲ 상대에게 정말 원하는 건

헤이지니 측은 "A씨의 고통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함께 일했던 분이 건강을 잃고 힘든 시간을 보내오신 것에 대해 사실관계를 떠나 진심으로 안타깝고 송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A씨의 처우 관련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원 내역을 설명하는 것과 별개로 A씨가 왜 상처받았다고 말하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상대의 고통을 이해하는 태도와 법적·사실적 책임을 판단하는 일은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A씨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다.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이번 폭로를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고 싶은지. 근무 환경에 관한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것인지, 회사의 책임을 인정받는 것인지, 아니면 오랜 친구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듣고 싶은 것인지…이 목표들은 서로 연결돼 있지만 같진 않다.

분노는 문을 부수는 힘이 있다. 침묵하던 사람을 말하게 하고, 감춰졌던 문제를 세상에 드러낸다. 하지만 부서진 문 너머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는 분노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상대의 잘못을 증명하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무엇인지 놓칠 수도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