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820조9000억원 규모인 내년도 예산안을 효율적 지출, 재정지출 우선, 지방 우대 등 3대 원칙에 따라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사업 2100여 개를 폐지하는 등 107조2000억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청년과 미래 성장동력에 집중 투자해 ‘모두의 성장’을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대통령은 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모든 지역과 국민이 과실을 누리는 모두의 성장으로 대전환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경기 회복의 온기를 민생 전반으로 확산하겠다며 내년도 총지출을 올해보다 12.8% 늘렸다. 총지출 규모와 증가율 모두 역대 최대다.
이 대통령은 재정 건전성 우려에 “재정 부채는 걱정할 필요가 크게 없다”며 신규 국채 발행 없이도 국가 살림이 가능해졌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정 여력을 낙관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예산의 필요성과 효과를 엄격히 검증해야 한다. 과도한 재정 지출은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물가를 자극해 오히려 민생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지역구 사업이라는 이유로 끼워 넣은 선심성 예산과 부처 간 중복·유사 사업부터 철저히 걸러내야 한다. 정책 효과가 불투명한 현금 지원 사업도 관성적으로 편성해서는 안 된다. 재정 확대가 국민 삶을 개선하는 데 쓰이지 않고 정치적 요구를 수용하거나 생색을 내는 수단으로 변질된다면 예산의 본래 목적을 잃는 것이다. 재정 운용의 성패는 지출을 얼마나 늘렸느냐가 아니라 한정된 재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해 실질적인 성과를 냈느냐에 달려 있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초과 세수로 조성하는 162조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은 이번 예산 심사의 핵심 검증 대상이다. 정부와 여당은 첨단산업과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라고 강조하지만 막대한 재원을 별도 기금으로 적립하는 방식이 재정 운용의 투명성과 국회의 통제를 약화시키지는 않는지 따져야 한다. 기금은 일단 조성되면 지출을 줄이거나 운용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 미래 투자라는 명분만으로 기금 규모와 사업 타당성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7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 보고서에서 2028년에는 57조원 수준의 추가 세수가 발생하겠지만 2029년부터는 추가 세수가 더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일시적인 초과 세수를 지속적인 재정 확대의 근거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세수 여건이 달라지면 기금 사업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재원 부족에 따른 부담은 누가 질 것인지까지 구체적인 운용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의회제도의 역사적 뿌리에는 국민의 세금을 거두고 쓰는 권력을 통제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국회의 예산 심사권도 세금이 어디에, 얼마나, 어떤 효과를 위해 쓰이는지 철저히 따져 묻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여야는 정파적 이해와 지역구 민원을 넘어 사업별 타당성을 따지고, 정부도 미래 투자라는 명분 뒤에 재정 운용의 책임을 숨겨서는 안 된다. 국민의 세금은 미래를 위해 쓰되 한 푼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미래 세대에 성장의 기회와 함께 재정 부담까지 물려주지 않는 것, 그것이 821조원 예산 심사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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