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대주단 가입 회피 3가지 이유
·퇴출 살생부-"탈락하면 시장에서 퇴출"
·신인도 하락-"부실기업 '낙인'…해외 공사 수주 차질"
·경영권 간섭-"경영비밀 공개·구조조정 강요"
건설업계 유동성 지원을 위한 대주단(채권단) 자율협약이 겉돌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 금융권이 잇달아 혼선을 빚으며 협약 가입을 주저하고 있는 건설사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엔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2일 대주단협의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까지 대주단협약에 가입신청을 낸 24개 업체에 대한 가입승인이 이번주 내에 완료될 전망이다. 대주단협의회 관계자는 "이미 몇개 업체에 대해서는 가입 승인을 마쳤다"며 "이르면 이번주 안에 서류 보완이 필요한 일부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에 대해서도 가입승인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신청한 업체들의 경우 대부분 협약에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24일이 '1차 마감 시한'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2주만에 협약 가입 여부가 결론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건설사들이 우려했던 점이 하나 둘 현실로 나타나 협약 가입 신청은 여전히 저조한 실정이다.
건설사들이 대주단 협약 가입을 꺼리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협약 가입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신인도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협약에 가입하면 자금사정이 어려운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힐 수 있어 해외 공사 입찰 등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철저한 비밀보장이 담보돼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일례로 중견건설사 A사는 최근 대주단 협약가입 신청을 낸 이후 한 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 만기가 된 100억원을 갚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대주단에서 제외된 제3금융권이 최근 협약에 가입신청을 낸 업체들을 상대로 자금 회수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대해 중견건설사 B사 관계자는 "금융권의 모럴해저드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대주단 협약 가입 신청 사실을 주채권은행밖에 알 수 없다고는 하지만 협약 자체가 자율 협약인데 비밀보장이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대주단협의회 관계자는 "협약가입 신청 사실은 주채권은행밖에 알 수 없고 협약상 일반 채권은행들은 주채권은행의 결정을 따르게 돼 있어 개별적인 자금 상환 독촉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대주단협약 가입 신청 후 승인과정에서 대출금 상환 압력이 들어오면 주채권은행에 협조를 요청하는 수밖에 뾰족한 대책은 없다"고 덧붙였다.
대주단협약에 가입 신청을 냈다 거부되면 퇴출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이에 대해 은행연합회는 대주단 협약의 목적은 재무구조 개선이지 부실기업 처리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협약에 들면 대출금의 만기가 1년간 연장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신규대출도 받을 수 있지만 협약에 들지 못하면 워크아웃으로 가거나 만기 연장이 안 돼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
특히 모호한 가입 기준 탓에 건설사들로서는 가입 신청을 내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중견건설사 C사 관계자는 "어렵더라도 조금 더 버티며 자구책을 동원하는 게 가입 신청을 했다 거부당해 손놓고 망하는 것보단 낫지 않느냐"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더 크게 우려하는 부분은 은행권이 구조조정을 강요하며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연합회는 경영권 간섭은 없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건설사들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협약에 들게 되면 인력축소와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경영 비밀이 담긴 기업 정보를 요구할 게 뻔하다는 이유에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주단협약 가입을 놓고 건설사들이 우려하는 점이 여럿있지만 결국은 명확한 기준이 없는 데서 비롯됐다"며 "대주단 협약이 강제성 없는 자율협약이라는 한계를 벗고 정부가 공개적으로 나서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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